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Sep 29. 2022

경찰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경찰관속으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경찰서와 경찰관은 뉴스를 틀면 매번 나오고,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이자 주연으로 활약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경찰이란 너무 흔하거나 당연한 존재라고 느끼지만 실상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몰라도 너무 몰랐던 이 땅의 경찰관들이 겪고 있는 일들을 언니에게 쓰는 편지글로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경찰관속으로>는 현역경찰인 원도 작가의 첫 책이다.



작가는 경찰로 일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겪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했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살려주세요.'라며 허위신고를 한 철없는 사람, 여자 친구를 집에서 추행하려는 파렴치한, 가정폭력으로 보호 받지 못한 아이들과 이름 없이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그리고 늘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 동료 경찰들, 작가는 그 모두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경찰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상처 받은 이야기, 가슴에 묻어 둘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풀어냈다. 최근 5년간 자살한 경찰관이 통계에 기록된 것만 116명이라고 한다. 그들의 죽음이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자신도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살아 내보려고 언니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작가의 두번째 책인 <아무튼, 언니>부터 읽고, 전작이 궁금해져서 바로 이어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어제 사람이 죽어서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순찰해야 하는 경찰관"으로서 접하는 일들을 고백하고 있다. <경찰관속으로>는 경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줄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이자, 경찰관으로서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결코 지나칠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챕터는 산 사람, 죽은 사람, 남은 사람으로 나뉘는데 결국 그 모든 사람이 경찰관인 자신이 품어야 할 '내 사람들'임을 작가는 책을 다 쓴 뒤에 어렴풋이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 하나하나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죽은 사람'에 나온 내용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 일하다 순직한 경찰관들의 이야기인데, 그렇게 죽도록 일하고도 국회의원에게 사냥개나 미친개로 치부되는 게 경찰이라는 부분에 마음이 씁쓰레해진다.


- 언니,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보게 됐지만 그중에는 같은 경찰관의 죽음도 많았어. 일하다가 죽은 사람, 자살한 사람, 죽진 않았어도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크게 다친 사람까지 합하면 셀 수도 없을 거야. 작년엔 같은 지역에서 한 달 새 경찰관 3명이 자살한 적도 있었어. 최근 5년간 자살한 경찰관이 통계에 기록된 것만 116명이라고 해. 힘들지 않은 일은 없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할 필요도 없을 텐데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아.

조직폭력배들끼리 싸운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폭력배 한 명한테 뺨을 맞고 심하게 넘어졌지만 그를 공무집행방해로 조사조차 하지 못한 동기, 주취자가 휘두른 팔꿈치에 안면이 함몰된 동료, 욕을 듣고 외근 조끼에 침까지 맞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선배, 술에 취한 남자 대학생들이 달려와 순찰차를 발로 차며 짭새 새끼는 밖으로 나와 보라고 욕을 퍼부을 때도 조용히 차를 몰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던 후배까지, 우리 모두 각자의 이유로 병이 들어버렸어. 하지만 우리의 고통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 국회의원은 경찰관을 향해 “경찰은 미친개, 사냥개,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답."이라는 말로 경찰관의 수고를 대신했어.

자살 기도자를 구하기 위해 아파트 창문 밖 난간으로 이동하다 추락하여 숨진 정연호 경위,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김창호 경감, 철길 위에 누워 있던 지적장애인을 구하려다 미처 속력을 줄이지 못한 열차에 치여 숨진 이기태 경감, 피의자를 제지하려다 황산 테러를 당해 얼굴과 목에 3도 화상을 입은 어느 선배까지. 잊혔고, 잊히고 있는 수많은 현장 영웅들과 지금 이 시각에도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경찰관들, 하늘의 별을 다 헤아린대도 현장 영웅들의 숫자는 결코 헤아릴 수 없을 텐데, 그 사람들 모두 미친개였으며 몽둥이로 다스려야만 하는 존재였던 걸까.

언니,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의 '순직경찰관추모'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수많은 순직 경찰관은 무얼 위해서 죽었던 걸까. 나는, 우리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찰관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나와 내 동료, 선배, 후배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 아니길 진심으 로 바라고 있어.

-  '나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다'  중에서



이 책의 '여는 글'과 마지막 장인 '남은 사람'에서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오키로미터'라는 책방의 독립출판 제작 워크숍을 수강하기 위해  시외버스, 시내버스, 지하철, KTX, 두 다리를 이용한 달리기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10시간이 넘는 여정을 고군분투해가면서 왜 그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고, 책으로 출판해야만 했는지 나와있다.

경찰이라는 조직에 입사한 지 겨우 3년이 넘었는데 그사이 스스로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작가는 3년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봤다. 살아있는 사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있던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 옆에 남은 사람들까지. 한 사람 속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탓에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이 경찰관임을 깨달은 작가는 고민에 빠진다.  

건실하고 건강한 사람만이 존엄한 생명은 아닌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며 '저런 삶은 가치 있는 삶일까' 하는 생각이 자신을 잡아먹고 있어서 점점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한 선배에게 이 고민을 토로했더니, 선배는 네가 아직 초심이 남아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작가는 그 말을 듣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초심을 잃어가는 기록, 내가 그동안 쌓아 올린 나만의 정의감이 손바닥 속 모래알처럼 점점 흩어지는 것에 대한 관찰기, 다른 사람도 아닌 언니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양심의 자책.'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옳고 그름은 또 무엇인지, 범죄란 진정 무얼 뜻하는 말인지, 그리고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선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어느 사람의 일생,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경찰관의 일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며 법이 문지방을 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지만, 인과응보 따위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나쁜 사람일수록 더욱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는 노동이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고 정의롭지 않은 일을 고발하기 위해 많은 걸 잃으면서까지 투쟁하는 한 명의 정의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선한 영향력까지 무시하기엔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와 나누고 뒷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경찰관은, 국민들은 행동해야 한다고..., 내 일기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끝내기엔 남은 페이지가 셀 수 없이 많다고.

경찰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포순이, 포돌이는 큰 눈과 큰 귀가 특징이야. 큰 눈으론 모든 범죄를 빠짐 없이 보고, 큰 귀로는 국민의 소리를 귀기울여 듣겠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해.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언니에게 고백했으니까, 언니가 이 이야기를 기억해두었다가 나에게 종종 말 해줘. 내가 이 마음을 잃지 않도록. 부디, 오래오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원도'라는 익명으로 책을 낸 이유는, 자신이 한 명의 인물로 특정되지 않을 때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가 누구인지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동네를 지나가는 순찰차를 보면서,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경찰관을 보면서 저 사람이 이 책을 쓴게 아닐까, 하는 호기심으로 한 번 더 쳐다보도록 만들고 싶어서.

이후북스 책방지기 상냥님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순찰차를 볼 때마다 단순히 순찰차라는 사물이 아닌, 그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소감이야말로 자신이 익명으로 책을 낸 것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뒤로는 길에서 마주치는 경찰관과 경찰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대전현대아울렛 화재현장에 새벽일찍 갔을 때도 밤새 아울렛 주변을 순찰하셨을 경찰관들의 모습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8명의 사상자가 난 화재현장을 지켜야 했던 경찰관들의 노고에 마음으로나마 감사인사를 하고, 화재로 인해 고인이 되신 분들께 부디 좋은 곳 가시라고 조의를 표하고 돌아왔다.

원도 작가는 앞으로도 가능한 한 계속해서 책을 낼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안내하고 싶고,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경찰관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가해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과 마주쳤던 순간보다는 더 나은 지금을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정기적으로 절에 가서 그들을 위한 향을 피워 올린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너무도 힘이 들 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 명의 경찰관이 아직 세상에 있다는 걸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덜 무너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작은 의식은 자신이 경찰관을 그만둘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독립출판물을 입고받아 판매하고 있는 서점 '이후북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이후진프레스'에서 2019년 봄 독립출판물로 나와 입소문을 타고 단시간에 5천 부 이상이 판매되며 독자들의 추천을 연달아 받은 책 <경찰관속으로>는 개정판이 나오면서 10편의 글이 추가되었으며 변영근 작가의 일러스트가 표지에 사용되었다. 지구대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직접 겪은 일들이 생생하게 담긴 채 우리 사회의 맨얼굴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이 에세이를 집어든 순간, 당신은 읽기를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 원도 작가의 두번째 책 <아무튼, 언니>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algmi73/515

매거진의 이전글 언니 없이는 못 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