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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늙은 여자 젊은 여자

고부만사성이 뭐예요?

오늘 아침밥 먹으며 어머님과 '인간극장'을 보다가

이번 주 주인공 남자 나이가 몇 살쯤 돼 보이냐는 것으로 어머님과 의견이 갈려서

각자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가운데 목소리톤이 좀 높아졌나 보다.

출근 준비하느라 서두르던 남편이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와선 이런다.


"싸워라~ 싸워라~!!!"


"허참 이 남자가 고부간에 진짜 싸우는 꼴을 못 봐서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 이건 내 말


"야야~ 너는 우리가 사이좋은 고부지간인 거 감사해야 한다. 어떤 집은 고부간에 하두 싸워서,

남자가 법륜스님한테 와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고민 상담하더라."

- 이건 울 어머님 말씀


어머님과 나의 십자포화를 받고 장렬히 전사(?)한 남편은


"난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깨갱~ ㅠㅠ"


하고선 부리나케 출근을 했다.

여전히 이어지는 인간극장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어머님과의 대화는 다시 이어진다.


"그래서 법륜 스님이 뭐라고 하셨대요?"


"뭐라긴, 늙은 여자하고 젊은 여자하고 둘 사이에 낑겨서 힘들 땐 무조건 젊은 여자 편들라고 하더라. 젊은 여자랑 더 오래 살 거니까. 그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늙은 거를 누가 좋아하는지~ 젊은 게 더 좋지! 그러더라~ ㅎㅎㅎ"


"에이~ 그건 너무 하셨네. 곧 돌아가실지 모르는 늙은 여자를 더 위해야지."


"누가 빨리 죽을지 안대니?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단다!암튼 요새 시어머니들은 생각 잘해야 돼. 아들이 결혼한 순간, 저 애는 내 아들이 아니라 내 며느리의 남편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니까."


늘 이런 말씀으로 시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땅에 내려놓으시면서도, 의무라 여겨지는 일은 다하시는 어머님 덕분에 난 시집살이를 못 느끼고 살아왔다.

남들은 15년째 홀시어머니 모시고 산다 그러면 엄청 고생한다며 안쓰럽게 쳐다들 보시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 어머님께서 며느리살이를 하시지 않나 싶어 죄송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남편이 대단한 효자가 아니어서 감사하다.

효자남편을 두면 며느리가 아무리 시모봉양을 잘한다고 해도 이래저래 책잡힐 일 생기고, 잘해도 티도 안 나는데, 내놓고 "난 불효자야~" 하며 그냥 대충 잘하고 사는 남편 덕분에 내가 조금만 잘 해 드려도 빛을 보는 듯하다. 그러니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헛갈리네~ 거참^^;



& 고부만사성이란?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가 다 이뤄진다는 '가화만사성'을 살짝 비틀어서 '고부가 잘 지내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제가 만든 단어입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노년층 세대를 어떻게 아우를 것인지 의견들이 많은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예전처럼 자식들이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 여깁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서로 간에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겠지요. 제가 15년간 어머님과 한 지붕 아래서 지지고 볶고 살아오며 겪고 느낀 일들이 그런 가능성을 좀 더 키우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여우처럼 때로는 곰처럼 시어머님과 살아가는 '여우곰' 며느리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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