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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뭘 해도 김치국

수다도 반찬이 되는 점심

어머님과 함께 점심 먹는 시간은

어머님의 흘러간 옛이야기를 듣기에 딱 좋은 때다.


어제 만들어둔 서리태콩물이 남아서

국수 삶아 건져내고

오이 하나 차박차박 채썰어넣어서

콩국수 말고, 빨간 자두를 반찬삼아

고부간에 마주 앉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님~ 아버님이 요리는 좀 하셨어요?"


"요리? 그 냥반이 뭔 요리를 했겄냐?

나 어디 가고 없으면 된장 풀어서 국 끓여 먹는

것 하나는 하더라만... 원체 국없이는 못 먹는 사람이라~"


주거니받거니 하며 후루룩 짭짭 국수를 드시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어머님이 또 말씀을 이어가신다.


"니 시아버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웃긴지 아냐?

하얗게 무국을 만들어도, 미역국을 끓여서 올려도, 시금치된장국을 해서 바쳐도~ 간도 보기 전에 무조건 김치부터 국그릇에 푹~하니 담궈서 뭔 국이든 다 김치국을 만들어서 먹었단다."


"에에~? 그럼 국을 무슨 맛으로 먹어요?"


"낸들 아냐? 뭔 국이든 다 시뻘~건 김치국이 되었는데도 좋다고 잘만 드시더라. 내가 시집을 가서 첫날 아침에 밥하러 부엌에 들어가니, (팔로 한아름도 더 되게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보이시며) 이따만큼 커다란 솥에다 쌀뜨물을 가득 풀어서는 김치를 숭숭 썰어서 국을 끓이더라. 저걸 언제 다 먹누? 했는데, 내가 밥먹으러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형수씨 여기 국 한 사발만 더 주씨요~ ' '여기도요~ 형수씨' 함서 그 많은 국을 다 먹더라니까."


"식구가 몇이나 됐간디요?"


"어디 보자~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 두 분, 시집 안 간 고모 두 분에 큰고모 딸까지 일곱이네. 그 큰고모 딸은 어릴 때 할머니 젖 먹고 자랐단다! 큰고모가 그 옛날에 이혼을 하셔선 딸 하나 맡겨두고 서울서 직장 다녔거든."


"그럼 어머님 아버님까지 총 9명이네요. (나 어릴 때 우리집은 적어도 열 두명 이상이었다. ^^V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작은아빠네 부부, 결혼 안한 고모들 셋, 결혼 안한 삼촌들 넷 중 군입대나 멀리 유학가신 분 빼고 둘 이상 늘 상주!)

그 아홉 식구가 큰 솥단지에 든 국을 한 끼에 다 드신 거예요? 대단들 하심!"


"야야, 난 먹어보도 못 했으니까 난 빼라. 암튼 덩치들도 산만한 데다 먹기도 참 잘 먹드라~ 시댁 자손들이 할아버지 타개서 기골이 장대했지. 할아버지가 젊으실 적에 씨름대회 나가시면 송아지도 타오실 만큼 힘도 세고 키도 크셨단다. 장날에 장터 가서 할아버지 찾으려면 엄청 쉬웠어야. 남들보다 한 자는 더 키가 크셔서 사람들 머리 위로 상체가 쑤욱 올라와 계시니, 멀리서도 한눈에 딱 들어왔거든."


내가 시집와서 뵌 시할아버님은 정말 키가 크셔서, 팔순이 넘으셨는데도 어림잡아 180은 넘어 보이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우월한 유전자가 남편에겐 제대로 발현이 안 되서리, 남편 키는 보통이다. 키에 비해 팔다리가 기~~인 편이긴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간 줄 모르고 펼쳐지며

한 너댓 번 이상은 들었을 법한 어머님의 시어머님이(나한테는 시할머님) 며느리가 영암 시골 내려오면 바로 앞 월출산 너머 강진에 친정이 있는데도, 일 시키느라 친정 보낼 생각을 안 해주셔서 서럽던 이야기부터 구구절절 설움보따리가 풀려나온다. 희한한 건 그 이야길 그렇게 자주 들어도 난 질리지가 않는다는 거다. 어떤 이야기는 외울 정도로 진짜 열댓 번 들은 것도 있는데, 들을 때마다 재밌고 신기하다.


그래서 고부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삼매경에 빠져서는 가스렌지에 뭐 올려놓고 끓이고 있다가 태워먹을 뻔한 적도 있다. 우린 참 우끼는 고부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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