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차를 산 지 일주일만에 '새차가 우리 가족이 된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우리집은 차를 새로 살 때마다 늘 가족여행을 했다. 가족 모두를 태우고 다니는 귀한 임무를 부여받은 만큼 우리집은 새차에 이름도 지어주고, 애칭으로 부른다. (이번 차엔 남편이 상금 3만원을 걸고 차 이름 공모를 해서 맥스웰, 새니, 억새, 억순이, 억쌔니 등의 이름이 경쟁적으로 나왔으나 남편이 낸 은둥이가 최종낙찰되어, 남편 주머니가 굳었다.)
2006년 6월 흰둥이를 샀을 땐, 장태산으로 2013년 10월 캡돌이를 샀을 땐, 경주로 2019년 9월 재돌이를 샀을 땐, 예산으로 갔고 2022년 11월 올해 은둥이를 샀을 땐, 남해로 다녀왔다.
좀 먼 거리이긴 하지만 아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차를 사서, 어머님 모시고 여행가고 싶다고 하니 어머님께서도 흔쾌히 가시겠다고 해주셔서 어머님도 모시고 남해로 향했다.
남해는 가볼곳이 참 많지만, 우리가 정한 곳은 어머님께서 즐겨보시던 '같이 삽시다' 프로의 박원숙 집으로 나왔던 카페가 있는 원예에술촌이다.
우리 부부의 최애 드라마인 '환상의 커플'에 나온 철수네 집을 보러 2014년 처음 걸음했던 독일마을은 그 뒤로도 남해여행 갈 때마다 여러 번 갔어도, 독일마을 바로 위에 있는 원예예술촌은 한 번도 안 들어가봤다.
독일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간 들어가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번엔 어머님덕분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원예예술촌의 구석구석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는 나중에 여행에세이로 풀기로 하고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그 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부부의 대화이다.
박원숙의 카페가 있다는 곳을 향해 관람코스를 따라서 걷고 있는데, 옆을 스쳐지나가는 중년의 부부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렸다.
"저거 구기자지?"
"구기자는 무슨 구기자? 보리수라니까!"
"보리수? 구기자 같은데~~~"
"아유~ 이 양반아~ 저게 무슨 구기자여? 보리수라고 아까도 내가 말했잖여~"
남편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가고, 마누라 목소리는 점점 기세등등! 뭘 보고 그러시나~ 싶어서 그 부부가 쳐다보는 나무를 올려다 보니...
보리수는 웬 보리수? 산수유 열매구만! 목소리 크면 이기는겨? 남편 구박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하시지~
"보리수열매는요~ 6월에 빨갛게 익었다 떨어졌고요, 저 붉은 열매는 산수유랍니다." 그 아즈마이를 붙잡고 세상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었으나,
부부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이 말을 해? 말어?' 하면서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저만치 앞서서 가버렸다. 거참 날쌘돌이 부부일세~
산수유를 보리수로 철썩같이 믿은 중년부부는 이미 바람처럼 사라져버렸고, 나 혼자 산수유나무 밑에서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며 궁시렁궁시렁~ "산수유를 보리수래~ 하참~~ "하고 있는데, 띠리링~ 전화가 울린다.
"안 오냐? 어머니 벌써 박원숙 카페 들어가셨어. 빨랑 와~!"
네~ 네~~ 남편의 채근하는 소리에 후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내게는 날쌘돌이 어머님이 계셨던 것이다. (작년에 쓰러지신 뒤 분명 걸음이 느려지셨는데, 언제 거기를 가셨지??? 비록 느린 걸음이나마 확고한 목표설정으로 딴 거 안 보고 거기만 향해 가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