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력 생일 뒷자리와 아버님 기일 뒷자리가 한 달을 앞뒤로 똑같아서 사실 내 생일을 지내고 나면 아버님 기일이 이제 한 달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결혼하기 몇 년 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고,
남편과 연애시절에 살아는 계셨지만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시는 형편이어서 난 딱 한 번 일반병실에 계실 때 남편을 따라 병원에 가서 누워계신 아버님께 인사드린 게 아버님을 뵌 전부다.
그러니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라는 말을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때로 아버님께서 비록 이승에 함께 계시지는 않지만 저 세상에서나마 가족을 보살펴주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아이엠에프 직격탄으로 난리가 났던 흉흉한 시절에 결혼 날짜부터 받아놓고 백수인 상태인 아들을 지켜보느라 어머님께서 위경련을 일으키실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셨을 때, 남편이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마침맞게 취직을 한 거라든지,
연고 하나 없는 대전에 내려올 때 한 번도 뵌 적 없이 인터넷 게시판으로만 알고 지내던 분께서 남편을 직접 차에 태우고 다니며 집을 알아봐 주신 덕분에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갓난쟁이 데리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집 보러 다니지 않았어도 좋은 동네에 괜찮은 집을 얻은 거라든지,
수습하기 힘든 일로 당장 큰돈이 필요했을 때 아버님께서 남겨주신 땅을 판 돈이 요긴하게 쓰였을 때... 이게 다 아버님께서 살펴주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아버님 기일엔 일주일 전부터 장을 보기 시작해 음식재료를 준비해서 제삿날 당일엔 하루 종일 어머님과 때론 일찍 온 아가씨들과 음식을 해서 제사상을 차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엔 케이크도 상 한켠에 올려 성탄절 기분을 내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걸린 경우엔 제사 지낸 다음날 새해 일출을 온 가족이 함께 보고 떡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원래 '부모 생일은 자식들 일정에 맞춰서 날짜를 바꿔해도 제사는 제 날짜에 한다!'가 그간의 원칙이었는데 오늘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번에 제사가 애들 기말고사 기간에 딱 들었더라. 제사 다음날이 00이 시험날이던데 어쩌냐?"
"뭐 그래도 제 날짜에 해야죠~ 애들 시험은 지들 알아서 보라고 하고. 제사 지낸다고 시험 못 볼라구요~"
"그란디 말이다. 지난번에 어떤 할머니가 법륜스님한테 제사 날짜 꼭 지켜서 지내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스님 말씀이... 돌아가신 분들이 말하자면 귀신이잖아요. 제사 날짜 좀 바꿨다고 모르지 않아요. 귀신같이 알고들 찾아오시니까 자손들 편한 날짜에 맞추셔도 됩니다~ 그러시더라. 우리도 올해는 날짜를 주말로 땡겨서 할끄나?"
"하하~ 법륜 스님다우신 답변이네요. 저야 좋죠~ 주말에 하면 아무래도 평일보다 음식 하기도 편하고, 아가씨들도 내려오기 쉽잖아요~"
그래서 올부턴 제사도 자손들 편한 날짜에 맞춰서 하기로! 조만간 울집도 어디 놀러 가서 펜션에다 제사상 차리는 거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