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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미역국을 끓이며  

남편의 생일, 어머님께 바치는 미역국

남편의 생일날 새벽이었다.

남편은 음력 12월생이라 늘 해가 바뀌어서 생일을 맞는다.


사실 엄격히 따지자면 십이간지에 따른 경자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음력 설이 되기 전까진 아직 기해년인 것이다. 돼지띠에 돼지해 생일을 맞은 남편은 하마트면 미역국도 못 얻어먹을 뻔했으나 어머님과 함께 사는 덕분에 미역국을 얻어먹게 됐다.


친정아빠 생신이 남편 생일보다 이틀 뒤라 형제들 모이기 좋게 당겨서 아빠 생신모임을 갖다보면, 정작 남편 생일에 아빠 생신 축하를 하는 날들이 많았다.


"처가에 가서 더 걸판지게 잘 얻어 먹는 생일이니 얼마나 좋냐?"


어머님께서 이런 우스메소리를 하셔도, 남편은 장인어른 생신모임에 맞는 자신의 생일이 늘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마침 아빠 생신이  토요일과 겹쳐서 생신 당일 모이기로 한 덕에 오늘은 제대로 본인 생일을 집에서 맞이하는 꽤 귀한 날이다.

그럼에도 어제 출근길에 괜히 승질을 내더니, 자기 생일 안 챙겨도 된다고 소리를 빠락 지르고 나가는 바람에 난 아주 심각하게 미역국도 케잌도 맛있는 반찬도 다 생략하고 걍 평소처럼 아침상을 차려낼까? 하고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 어머님 생각에 머물렀다.

난산에 눈까지 무지막지 내려서 택시도 안 잡히고 구급차도 못 오는 상황에, 겨우겨우 제설차인가 청소차인가를 타고  병원 가셔서 힘들게 남편을 낳으셨던 어머니.

그날 가장 고생하신 어머님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였다.


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 산후조리를 해주신 분이 어머님이었다. 당시 어머님은 서울에, 난 대전에 살고 있어서 큰애 데리고 어찌 산후조리를 할까 고민하던 나에게 서울에 와서 둘째를 낳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어머님께서 먼저 하셨다.


병원과 먼 해남 친정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렇다고 친정엄마가 대전으로 올라오셔서 산후조리를 해주실 상황도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산후조리원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은 때에, 거기 들어가면 큰애 맡길 곳이 없어서 고민이던 때였다.


어머님도 직장을 다니시느라 하루종일 옆에서 챙겨주진 못하지만 마침 시집 안 간 둘째 아가씨가 한집에 살면서 틈틈이 도와줄 수 있으니 괜찮다면 서울로 올라오라셨다. 그래서 두 번 고민도 안하고 바로 날짜를 정해 짐싸서 올라갔다. 그렇게 두 달 넘게 어머님댁에서 지내며 몸풀고 둘째를 키우다, 5월 초에 분만예정이었던 큰 아가씨에게 바톤터치하고 대전에 내려왔더랬다.


둘째를 낳고 어머님댁에서 산후조리하는 동안 어머님은 하루도 빼먹지 않으시고, 매일 새벽 4시에 미역국을 가스불에 새로 끓이셨다. 소고기는 오래오래 뭉근히 끓여야 안 질기고 부드럽다며 매일 정성가득한 소고기미역국을 끓이시고, 며느리 입맛에 맞을만한 반찬들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려주셨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설거지해놓을까봐 부리나케 설거지까지 마치시곤 출근을 하셨다. 옆에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꼭 건네시곤.  


그 어머님을 생각하니 남편 밉다고, 남편이 하지 말랬다고 미역국을 안 끓일 수는 없었다. 남편은 밉지만 그날 고생하신 어머님을 위해 오늘 미역국을 끓인다. 두 시간 가까이 소고기가 뭉근히 익어가고 있다. 이제 생일상을 차릴 시간이다,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해.


* 쓰고보니... 사랑하는 남편 낳아주신 어머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미역국 끓인다고 해야 맞는 거 아녀?우찌 된 게 사랑하는 어머님을 만나게 해준 남편을 위해 미역국 끓이는 셈이 됐으니...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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