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1. 2020

죽느냐, 사느냐... 고기 앞에서

고기 알레르기라는 놈이 있지~

복숭아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 고양이 알레르기

는 흔히 들어봤겠지만 고기알레르기란 것도 있다.


"늙을수록 단백질을 잘 섭취해야 한단다~"


평소에 풀을 즐겨 드시고, 원체 소식을 하시는

편이라 고기를 잘 드시지 않았는데

저 정보를 어디 건강프로그램에서 들으신 뒤

내게 말씀하신 뒤로는 고기 요리를 하면

어머님께 많이 드시라고 권해드리는 편이다.


오늘도 표고버섯이랑 양파랑 당근 왕창 넣어서

배까지 갈아 넣어 만든 돼지불고기를

저녁 반찬으로 올리며, 텃밭에서 따온

쌈채들에다 팍팍 싸드시라고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스물네 살까진 고기를 못 먹었단다."


"아니 어쩌다가요?"


"어렸을 때 고기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갖고

죽다 산 뒤론 고기 먹으면 죽는 줄 알았으니까~"


"에~ 그럴 수도 있어요?"


"거 뭐냐 고기 알레르기라고~ 그런 게 있었지."


"고기 알레르기요?"


"대여섯 살 쯤엔가 마을에 대사 친 집에서 삶은 고기를 이바지로 보내왔는데,

 그거 한 점 집어먹고선 온몸에 두드러기가 빨갛게 나지 않았겠냐?"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옛날엔 두드러기 약도 없었을 텐데..."


"약이 뭐여? 우리 할무니가 나를 칫간으로 데려가가꼬 옷을 홀딱 벳기고는

칫간 쓰는 빗자루로 온몸을 훑어내리면서, 중도 괴기 먹는다냐? 중도 괴기 먹는다냐?

그렇게 몇 번 말씀하신 뒤에 옷 입혀 내보내니까 싹 나았지!"


이 무슨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말씀인지~

암튼 그렇게 해서 그 뒤론 고기를 일절 드시지 않다가,

24세가 되어서야 고기에 입문하신 계기가 또 어느 집에서 대사 치고 들어온 고기 덕분이었다.

그날은 바로 아래 여동생과 둘이서 그 고기를 한 점씩 먹고 뒷방에 나란히 누워선


"우리가 이 고기를 먹고 죽나, 안 죽나 보자."


그러고 있었는데 아무리 지나도 두드러기도 안 나고, 죽지도 않아서

그 뒤로부터 고기를 드시기 시작했단다.

내 친구 하나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통 먹어본 역사가 없어서

결혼해 애 둘을 낳은 뒤로도 고기를 잘 먹지 못했다.

고기 특유의 냄새가 역해서 먹을 수가 없다나? 마흔 넘은 지금에서야 겨우 조금씩 먹게 됐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자꾸 안 먹으면 못 먹게 된다는 걸 이 친구 통해서 알게 됐다.


우리 집은 남편도 딸도 아들도 고기 요리를 즐기는 편이라 덕분에 엥겔지수가 꽤 높다.

고기는 좀 덜 먹어도 잘 크고 잘 사는데, 고기 알레르기가 뒤늦게 발현하는 일은 안 생기려나?^^;



작가의 이전글 미역국을 끓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