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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옥새기? 옥쪼시!

사투리의 발견

어머님과의 점심은 있는 대로 먹는 편이다.

떡이 있으면 떡을 먹고, 빵이 있으면 빵을 먹고,

감자나 고구마가 있으면 쪄먹고, 국수를 삶기도 한다.


오늘 점심으로 삶은 옥수수를 먹다보니

옥수수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에는 옥수수 알멩이가 이렇게 꽉 차기가 힘들어서, 옥수수 심을 땐 알멩이 꽉꽉 차라고 입에다 찹쌀을 한모금 머금고 옥수수 알을 심었단다."


"왜 하필 찹쌀이래요?"


"찹쌀이 멥쌀보다 좋응께 그러겄지~"


"어머님도 그렇게 하시고 옥수수 심으셨어요?"


"아아니~, 우리 엄마가 그러셨지!"


"그럼 그렇게 찹쌀 물고 옥수수 심으면 옥수수 알멩이가 실하게 꽉꽉 찼어요?"


"무슨~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참 옛날 어르신들은 동심들이 살아 있으셨다.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어도 옛날부터 그렇게 하는 거란다~ 하면 일단 어른말씀대로 따르고 본다.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것도, 푸세식 뒷간에서 일보다 똥통에 빠진 아이가 똥독 오르지 않게 뒷간귀신에게 똥떡을 만들어서 갖다 바치는 것도, 동지에 야광귀신이 신발 가져가지 않게 채를 간짓대에 꽂아 집앞에 두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절대 통할 리 없는 비과학적이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단지 믿음만으로 묵묵히 따라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 천진한 믿음이 어떤 고생도 묵묵히 견디고 살아내신 우리 조상들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잠시 옥수수를 먹다 딴생각에 빠져있자니

어머님께서 옥수수를 한알 한알 발라 드시다

말씀을 이으신다.


"옛날에 한 번은 나라에서 옥수수 씨앗을 나눠준다고 해서 받아왔더니 그게 미국산 사료 옥수수 씨앗이더라. 크기는 일반 옥수수알보다 곱절은 큰데, 막상 심어서 키워가지고 꺾어다 먹어보니 어찌나 맛이 없던지~ 그래서 그냥은 못 먹고 가루 내가지고 먹었단다."


"그 옥수수 가루로 전 부쳐먹었겠네요?"


"전? 옛날에 후라이팬이 어디 있냐? 후라이팬이 있어야 전을 부쳐먹지! 후라이팬도 없어서 솥뚜껑 쓰던 시절이었단다. 호미에서 손잡이 자루 빼가지고 흙마당에 거꾸로 박아놓고, 응 그래 세 개는 박아야 솥이 안 자빠지지. 그 위에다 가마솥 뚜껑 뒤집어서 걸쳐놓아야 후라이팬 대용이 됐더란다.

마을에서 대사라도 칠라면, 집집마다 솥뚜껑 하나씩 들고와서 그렇게 마당에 걸쳐놓고 돼지비계로 쓱쓱 문질러서  전을 부쳤지. 그 기름냄새가 얼마나 꼬순지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는데, 요새는 어째 그런 맛도 없어야.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기름뎅이인데, 그걸 솥에다 문지르면 참 맛있는 냄새가 났어.

봄에 밀농사 지어서 나온 밀가루를 물에다 반죽해가꼬 부추잎 몇 장만 올려서 부쳐도 어찌나 향기롭고 맛났나 몰라. 지금은 그렇게 해놓으면 맛없다고 안 묵겄지?"


"어머 밀가루를 직접 농사 지은 밀로 만들었다구요? 그때는 다 수입밀가루 쓴 거 아니에요?"


"아니여~ 나 어릴 때만 해도 집집마다 자기네 먹을 밀농사는 다 지어서 추수하면, 방앗간에 가져가서 밀가루로 만들어와서 1년 내 놓고 먹었어야. 수입밀가루는 한참 뒤에나 풀렸지. 그 수입밀가루가 하두 싸서 그거때문에 밀농사 쪼만쪼만 짓던 사람들도 다 그만 뒀지. 우리 밀가루가 참 고소하니 맛났는디"


일제시대 이후 해방되면서 미국에서 푼 밀가루때문에 우리나라 밀농사는 진즉에 다 그만둔지 알았는데,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밀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디 말이다. 그렇게  대사 치고 나면, 까매진 솥뚜껑 닦는 게 얼마나 일이었는지 아냐? 지금처럼 수세미가 있길 해~ 퐁퐁이가 있길 해~ 물이 펑펑 나오길 해~ 냇갈에 솥뚜껑 들고 가서 지푸라기 뭉친 것에다 재 묻혀서 한참을 뿍뿍 문질러서 그을음들 없어질 때까지 하느라 애먹었지야."


"솥뚜껑에다 전 부쳐먹은 거 저도 어릴 때 기억나요. 우린 부뚜막에 걸쳐놓고 했던 거 같은데, 거기다 전 부치면 진짜 맛있었어요~ 근데 후라이팬이 60년대에도 없었다니 놀랍네요~ "


"후라이팬이 언제 나온지 아냐? 내가 시집 가서 얼마 안 됐을 때니까 70년쯤이었나~ 니 시아버지 자리가 시장에서 후라이팬이라고 하나 사왔더라. 근디 요새같은 스테인레스도 아니고, 그냥 쇠로 된 후라이팬을 사온 거라. 뭔 녹이 잔뜩 끼어서, 내가 그거 녹 베끼고 하얗게 광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날이면 날마다 시간 날때마다 껴안고 문질러서 후라이팬 바닥이 하얘지도록 문질렀단다"


"에고~ 그때 어머님 어깨가 나가셨구만요."


작년에 오른쪽 어깨를 거의 못 쓰시게 되어 어깨수술을 하시게 됐는데, MRI를 찍어보니 어깨를 잡아주는 근육들이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처음엔 두 개 정도 였는데, 막상 수술하려고 보니 봉합해야 할 근육들이 더 늘어나서 수술 시간도 길어지고, 회복하시는 기간도 엄청 걸렸더랬다.

그 원흉이 녹이 덕지덕지 낀 후라이팬이었다니!


여름 농번기에 영암 시골집 일손을 도와드리러 가면 시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쩌어그 밭에 가서 옥쪼시 몇 개 끊어온나!"


그렇게 옥수수 따다가 점심으로 드시곤 했단다.

전라도 사투리로 옥수수가 옥쪼시였나?

그럼 옥새기는 어디 사투리지?


지난 번 아파트 공동구매로 산 옥수수들을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슬금슬금 꺼내먹다가 오늘로  다 되서 새로 옥수수 좀 사야겠다 하던 참에 아파트 관리소장님 친구분한테서 그 옥수수를 샀다던 게 떠올라 전화를 드렸다. 언제 또 옥수수 공구 안 하시냐고~ 그랬더니 마침 오늘 그 친구네가 또 옥수수를 따서 자루에 넣고 있다니 시간 되면 같이 옥수수나 가지러 가자신다.


그래서 룰루랄라 따라나섰다가 생각지도 않게 옥수수 한 자루를 꽁으로 얻었다!

지난 번에 맛있게 먹었다니 고맙다시면서 그냥 30개들이 한 자루를 똬악 주셨다~ 와우~

올해로 38년차 농부라는 그분 덕분에 또 한동안 맛있는 옥수수로 점심을 대신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분이 찐한 믹스커피를 자판기에서 빼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이 옥새기 씨앗을 올해 처음 심어보는디,

이게 딴 종자랑 달라서

한 번 익기 시작하면 아주 순식간에 익어버리드라니께~

아침에 까만 거 한두 알 보이기 시작하면 오후에는 몽땅 다 까매져서 금방 쇠부러. 후다닥 안 따면 안 되겄드랑께. 그래두 맛은 최고로 좋을 거니께 함 드셔보셔~"


덕분에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농부님!

옥새기는 충청도 사투리

옥쪼시는 전라도 사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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