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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n 21. 2023

기대없이 읽었다가 훅 빠져든 책, 쇳밥일지

청년공 천현우가 펜을 든 이유는?

"한 개인의 내밀한 역사가 시대와 세대의 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를 떠오르게 하고, 노동자 계급에 관한 생생한 밀착 일지라는 점에서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평을 듣는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단숨에 읽었다. 어찌나 글의 흡인력이 좋은지 책을 한 번 손에 드니, 그대로 몰입해 읽게 만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믿어지지 않는 노동의 현장에서 탄생한 작가 천현우. 그는 우리 사회의 사각에서, 사양하는 산업과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주간경향』에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을 연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 『쇳밥일지』는 연재분에 전사를 더하고 이를 전면 개고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2022년 봄까지를 담아낸 <쇳밥일지>는 나와 타인을 담은 글을 잇고, 삶과 사람을 잇는 진짜 이야기이다. 비루하고 비속한 삶의 비극 속에서도 결코 자긍심과 자부심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언어예술의 한 경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작가 천현우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궁금해진다.

그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난 90년대생이다. 삶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고, 공고를 거쳐 한국폴리텍7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부터 생계를 잇기 위해, 어머님이 사기를 당해 진 빚을 갚기 위해 공장에서 쉴 틈 없이 일했다. 그렇게 현장 기술직 노동자의 팍팍한 삶을 살아오던 그가 2021년부터 주간경향, 미디어오늘, 피렌체의 식탁, 조선 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디어 스타트업 alookso(얼룩소)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의 삶에 어떻게 이런 반전이 일어나게 된 걸까?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그는 코로나로 인한 불황으로 어쩔 수 없이  두 달 일하고 한 달씩 쉬게 된다. 쉬는 동안 '용접 기능장 자격증을 준비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새 직장을 알아볼까?' 갈림길에서 계속 고민하다가, 문득 이 순간 자체가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운동하고 책 보다가 글쓰면서 잠드는 하루하루. 그간 타의로 치열한 삶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였다. 그래서 줄곧 미뤄두었던 체계적인 독서를 시도할 수 있었다. 동네카페에서 서너 시간 죽치며 유발 하라리와 댄 애리얼리의 책을 몽땅 읽었고, 행동경제학을 파다 보니, 바로 옆 동네 사회심리학에 꽂혀서 로버트 치알디니 책으로 발을 뻗쳤다.


그렇게 빙빙 돌아 어느덧 사회학까지 오게 됐는데, 그때 눈에 띈 책이 바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였다. 저자는 경남대 양승훈 교수. 페이스북을 통해 책 잘 봤다고 인사드린 게 계기가 되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던 경남대의 교수실로 양교수를 찾아가 만나면서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양교수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썼는데, 그 글을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공유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리고 2021년 4월 지방재보선때 부활한 페이스북에 부활한 이십대 개새끼론에 몹시 분노하고 화가 나서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띄웠다. 지방 현장 노동자로서 2030 공장 노동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왜 절망과 냉소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글이 주목을 받으면서 용접공의 삶이 아닌 글쟁이로서의 삶이 다가왔다. 인터뷰를 하고, 칼럼을 연재하고, 책까지 쓰게 된 것이다.



청년공으로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는 힘들되 꾸역꾸역 생존은 가능한 나날이었다. 그때의 시간들, 고뇌와 낙이 있었고, 땀과 눈물이 있었으며,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고, 꿈이 짓이겨졌다가 다시금 피어났던 과거를 문자로 남겨보고자 쓴 천현우의 <쇳밥일지>.



그의 글이 어떤 노동현장전문가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자신도 궁금해하던 그 이유를 자신을 처음 용접공으로 이끈 포터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찾아낸다. 다음은 책에 나온 대화내용이다.


-  아저씨는 지방에 박혀서 조용히 용접만 하던 놈이 갑자기 칼럼을 쓰고 방송을 타더니 급기야 언론사 취업까지 당최 어떻게 돼먹은 일이냐고 질문했으나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나라고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살았을까. 크루아상처럼 우연에 우연이 여러 겹 뭉쳐 이리된 것일 뿐.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아저씨는 벼락출세의 원인을 특이하게도 언어에서 찾았다.


"내가 니 칼럼은 전부 챙겨 보거든. 근데 그 왜 우리 판때기에서만 쓰는 말들이 있잖냐?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다 그대로 다 실을 순 없잖어.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노조 아재들이 이게 안 돼. 맨날 머리띠 매고 메가폰 잡고 소리만 치잖아. 간절한 건 이해하겠는데 촌스러워. 그림이 너무 구리잖아. 우리가 그리 욕해도 결국 가진 놈들은 먹물이잖냐? 그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이라는 게 또 따로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


근 몇 개월간 '천현우라는 사람은 귀중하다"라고 말한 사 람들은 이미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  모두가 좋은 직업과 학벌을 가진 이들이었다. 마산에서 얌전히 용접만 하고 살았다면 평생 볼 일 없었을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은 기쁘고도 불안했다. 공장 일꾼이란 정체성으로 현장의 서사를 팔아 나 혼자 비겁하게 출세하는건 아닐까. 진짜 현장 노동자들은 천현우를 기득권 앞에서 글 재롱 부리는 간신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아저씨의 고마운 덕담에 최근 들어 점점 무게를 불려나가던 걱정의 무게가 훌쩍 줄어들었다. 나는 마치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의 초짜 노가다꾼의 눈을 하고 물었다.


 "내가 잘할 수 있겠으예?"

"하모 당연하지!"



그렇게 해서 그는 쇳물 대신 먹물을 써서 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최전선을 담당하게 된다. 이 책의 부제가 "청년공, 펜을 들다"가 된 배경이다.


그가 지금 일해나가는 곳은 현장이 아닌 사무실이고, 파란 작업복은 햐얀 와이셔츠로 바뀌고, 메꿔나가야 할 공백은 철판과 철판 사이에서 지면과 지면 사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가 살아왔던 세상, 차가운 금속과 뜨거운 불꽃의 감촉이 공존하는 비지땀 흘리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천현우의 바람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그가 되돌아간 현장이 예전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분명히 달라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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