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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1. 2020

동지엔 팥죽이지~

동지도 이름이 다 달라!

작년 동짓날의 일이다.


그 전날 장 봐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열심히 김밥 말고,

내친김에 달걀 샐러드 샌드위치까지 만들고 보니 오늘이 동지!


아악~ 나 더 이상 요리 못해~~~ -ㅇ-;;

어머님 모시고 살다 보니 매년 팥죽을 쒀서 먹었는데

올해는 걍 사다 먹어야겠다 했는데... 웬걸?


아이들과 대청소하는 동안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서 압력밥솥이 칠레 칠레 돌아가며 팥 삶는 냄새가 나더니만, 청소 다 마치고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블랙 밀크티 마시며 책 읽고 있으려니 어머님께서 팥죽을 쑤신다며 주방으로 오셨다. 올해 해남 친정집 팥 농사는 쫄딱 망해서 팥을 얻어오지 못했는데, 마침 영광 시이모님이 팥 농사가 잘 됐다고 보내주셨단다.  


법륜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진다. 어머님께서 즐겨 들으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답 유튜브 영상이다. 사람들이 별별 고민들을 내놓고, 이에 쾌도난마로 답해주시는 법륜스님 이야길 고부간에 깔깔대며 듣다가, 얼쑤~ 한두 마디씩 추임새도 넣어가며 팥죽을 만든다.


푹 삶은 팥을 물과 함께 도깨비방망이로 곱게 갈아 다시 끓이는 동안, 멥쌀가루를 물반죽해서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든다. 팥물이 팔팔 끓으면 미리 씻어서 불린 찹쌀 한 바가지와 새알심을 같이 넣고 잘 익을 때까지 한소끔 더 끓이며 소금간을 한다.


문득 애동지엔 팥떡을 해 먹는다고 하시던

친정엄마 말씀이 생각나서


"어머님 올해엔 애동지가 아니에요?"하고 여쭈니


"애동지는 음력으로 10일 전에 들어야 애동지지.

이번엔 20일 넘어 들어서 노동지일 걸?"


"노동지도 있어요? 그럼 10일에서 20일 사이에 들면 뭐라고 해요?"


"중동지라고 하나~~~? 모르겠다."


해서 친절한 이웃에게 '중동지'를 찾아내라 명하니 바로 이런 내용이 뜬다.


- 동지는 대설(大雪) 15일 후 소한(小寒) 전까지의 절기로 보통 양력 12월 22일 무렵에 해당한다. 양력으로 12월 22일이 음력으로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보통 애동지에는 팥죽을 끓이지 않고 중동지나 노동지에는 팥죽을 끓인다. 경북 구미와 선산 지역에서는 팥죽을 끊일 수 있는 중순에 동지가 걸리면 온동지라고도 한다. 온동지는 중동지, 청년동지, 보통동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


여기에 더해 친정엄마께 오늘 동지인데 팥죽 드셨냐며 안부 전화하면서 얻어들은 정보 하나를 덧붙이자면 노동지는 어른동지라고도 부른단다. 애가 있으니 어른도 있고, 중간에 청년도 있는 게지~^^

옛 어른들이 동지 절기 하나에 붙인 이름이 열흘 사이로 이리 달라지다니 참 재미지다.


보글보글 잘 끓인 팥죽을 식구수대로 다섯 그릇 떠놓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경비아저씨와 관리실 직원들 몫으로 드릴 팥죽도 떠놓고, 내가 싸랑하는 텃밭 언니네 몫으로도 담아놓은 뒤 모두 둘러앉아 냠냠~ 달게 먹고 싶음 설탕은 알아서 투입~


역시 어머님표 새알 동동 팥죽 최고!

어머님 계셔서 이런 호사를 누리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오늘 우리 집을 찾을 액운들은 훠이 물러가고, 좋은 일만 가득가득하길 빌어본다.


* 동지에 왜 팥죽을 먹을까?

  (이투데이 '19.12.22. 기사 참고)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는 중국 '형초세시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중국 신화의 인물, 강을 다스리는 신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귀(전염병 퍼뜨리는 귀신)'가 됐다. 죽은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어 악귀를 쫓았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붉은색을 띤 팥을 태양, 불, 피 같은 생명의 표식으로 여겼고, 음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쒀 먹었다. 동지팥죽을 먹고 나쁜 귀신을 쫓아 액땜을 한다는 의미 역시 새해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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