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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11. 2023

디지털 키즈 책맹 탈출 프로젝트

EBS 당신의 문해력 5

2020년 코로나팬데믹 이후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는 부분은 아이가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일일이 다시 짚어주며 설명해줘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역시 아이들이 분명 수업을 할 때는 다 이해한 것 같았는데 등교 수업 때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수업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아이가 디지털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아니다. 읽기 능력, 즉 문해력에서 앞서야 디지털 시대의 진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디지털 기기가 문해력을 떨어뜨린다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기기에 과몰입해 책 읽기를 멀리할 경우 문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디지털 키즈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견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재미없는 독서가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디지털 키즈의 책맹 탈출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독서를 싫어하는 이유'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시간이 많아 상대적으로 독서를 할 시간과 의지가 부족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경북대학교 김혜정 교수 연구팀의 '책맹 실태 분석' 결과에서도 중학교 3학년 아이들 10명 중 3명이 '글을 읽고 나서 독후감 이나 독서 수행평가 등을 해야 하는 것'을 독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통해 "독서가 학업으로 느껴질 때 독서에 대한 어려움 또는 반감이 더해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독서 행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독서 자체의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 려줄 수 있을까? 초등학교 이후로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중학교 3학년생 4명과 지도교사가 함께한 '책맹 탈출 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긍정적 독서 경험을 심어주는 '내가 읽고 싶은 책 고르기'가 첫걸음이다.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게 하느 것이다.


자신이 직접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건 독서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또 무엇보다 우선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가 읽고 싶은 책, 그리고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기본적인 두 가지가 무시되기 일쑤이다. 책은 교훈을 얻거나 지식을 높이거나 권장도서여야 의미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마음 편하게 고르지도, 읽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리가 없다.


책을 펼쳐 들고 글자만 읽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자신의 어휘력이나 독해력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서점에서 직접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책맹 탈출 프로젝트'를 시작한 아이들은 과연 적극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수업에 앞서 각자 정해진 만큼 책을 읽어야 했지만 독서보다는 게임이 더 좋은 아이들, 책을 읽어본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아이들이 갑자기 책을 잘 읽을 리는 없었다. 아이들은 몇 장, 심지어 몇 줄 정도 읽고 나서 책을 덮어버리거나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가 결국 스마트폰으로 관심을 돌렸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때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 역할 바꾸기'를 한다. 교사가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니 처음에는 교사가 문제를 맞히지 못하는 모습에 재미를 느끼며 질문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끼리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하면서 꽤 진지한 토론을 하기에 이르렀다. 학교나 학원에서 매일같이 주어지는 질문에 수동적으로 대답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 되어보게 하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질문을 책을 읽고 이해한 다음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사고력은 확장되고 문해력도 향상된다.


또 독서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읽기'도 추천한다.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함께하면 즐거움이 더 커진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친구들과의 교류에 커다란 의미와 비중을 두기 때문에 함께하면 읽기 수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우관계도 더 좋아질 수 있다. 마치 게임을 할 때 팀 플레이를 하면 더 재미있고 관계도 끈끈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탓에 책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졌던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아갔다. 혼자였다면 책 읽기에 대한 약속을 그렇게 잘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고, 어쩌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함께 읽기'를 통해 책 읽기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예전에는 몰랐던 책 읽기의 즐거움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인지신경과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Maryaine Wolf)는 <책 읽는 뇌>라는 책에서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다"라고 주장했다.


'말하는 유전자'는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나지만, '읽는 유전자'를 선천적으로 지닌 사람은 없다. 인간의 뇌에는 '읽기'와 직접 관련된 영역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수 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온 데 반해 문자가 발명된 지는 기껏해야 5,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읽는 뇌'를 갖고 태어나지 않으므로 글을 읽으며 뇌의 회로를 바꾸어나감으로써 '읽기'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한편으론 읽기 능력을 습득했다 해도 지속적으로 글을 읽지 않으면 관련 뇌 기능이 퇴화해 읽기 능력도 퇴보하게 된다.


초기의 뇌과학자들은 뇌의 구조와 기능이 출생 직후에 거의 결정되며 이후에는 뇌의 크기만 확대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 뇌가 계속 변화하고 발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졌다. 이를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뇌가소성이란 뇌에 자극이 가해지면 신경이 새롭게 연결되고 강화되면서 화학적·구조적으로 변하는 성질을 말한다. 여기에서 뇌에 가해지는 자극이란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5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연구 결과도 "읽기 훈련이 이미 성숙한 뇌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독일, 인도, 네덜란드의 공동 연구진은 인도 북부의 한 마을에서 30대 여성 문맹자 21명에게 힌디어를 가르쳤다. 연구진은 대상자들에게 6개월간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 도달하도록 했으며, 한편으로는 수시로 기능성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며 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성인 문맹자들이 글자를 배우게 되면 대뇌피질이 재구성되면서 뇌의 구조가 원천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대뇌피질뿐만 아니라 더 깊은 뇌의 안쪽 부분까지 변화했다며, 특히 뇌의 중추적인 기능들이 집약해 있는 '뇌간'과 감각 및 운동 정보를 전달하는 '시상'에서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뇌가 가진 '가소성' 덕분에 우리는 학습과 훈련으로 뇌를 진화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읽기 훈련을 많이 하면 관련 뇌의 영역에 자극이 가해짐으로써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잘 읽는 뇌'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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