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Aug 24. 2023

문해력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법

EBS 당신의 문해력 4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충격적인 맞춤법 실수를 설문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 1위는 '감기 빨리 낳으세요'였다. 2위는 '어의가 없어요' 였고, 3위는 '얼마 전에 들은 예기가 있는데요'였다. 그 뒤를 이어 '저한테 일해라절해라 하지 마세요, 이 정도면 문안하죠, 구지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무리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에어컨 시래기가 고장났어요' 등이 충격적인 맞춤법 실수로 꼽혔다.

이러한 맞춤법 실수는 그저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10대 아이들이 어휘 공부가 제대로 안 된 상태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어의 표기법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유는 그 의미를 대충만 알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아이들은 일상어 구사에는 큰 문제가 없어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학습도구는 무척 어려워할 수 있다. 학습도구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수업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중·고등학교 교실의 학습 격차는 학습 도구어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10대 아이들의 어휘력 수준을 하루빨리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는 청소년기에 어휘력이 늘어나면 공부가 쉬워진다고 말한다. 어휘력은 학업성취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0주간 진행된 '어휘력 향상 프로젝트' 이후 아이들은 수업이해도는 물론 공부 자신감도 부쩍 커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1. 문해력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어휘력이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조병영 교수는 '기초 문해력'을 크게 다섯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소릿값'을 이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릿값을 '기역, 니은, 아야어여'처럼 철자와 연결하는 능력, 즉 파닉스를 익히는 것인 데이 두 가지 능력을 합쳐서 '해독 능력'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어휘력이다. 소리들이 뭉쳐서 이루어지는 단어를 이해하고 단어를 들으면 그 의미가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어휘력이다. 네 번째는 유창성이다. 문장을 적절한 속도로 매끄럽게 의미를 살려서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유창성은 앞에서 말한 소릿값 과 파닉스를 이해하는 능력에 어휘력이 더해져 완성된다. 문해력을 이루는 마지막 다섯 번째는 글의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더해서 추론한 뒤 의미를 구성해내는 과정, 즉 독해 능력이다.


문해력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어휘력'이다. 특히 어휘력은 읽기 능력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을 정확하고 빠르게 읽고 이해하려면 각 문장을 먼저 정확하고 빠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와 쓰임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력을 지니면 그만큼 읽기 학습에서 유리하다.


아이들이 긴 글을 읽고 싶어 하지 않고, 글을 읽어도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어휘력 부족이다. 모르는 어휘가 많으면 글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니 점점 홍미를 잃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이다. '고지식'을 높은 지식으로, '대관절'을 큰 절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과연 글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사회, 과학, 역사, 영어시간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단어의 뜻을 일일이 설명해주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지경이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아이들의 어휘력 부족으로 아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의 뜻을 몰라 지문을 읽어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핵심 어휘들의 이해도가 턱없이 부족한 빈어증 현상이 심각하다. 빈혈 증세가 심하면 온몸이 무기력해지듯이, 빈어증이 심각해지면 전 과목에서 학습 부진을 겪을 수밖에 없다.



2. 중학생의 어휘력을 학습도구어와 연결된다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은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신명선 교수, (주)낱말과 함께 중학교 3학년 국어·사회·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휘를 전수 분석했다. 6개 출판사에 나온 총 16권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세 과목 교과서 전체의 어휘가 총 2만 4,501개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중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데 꼭 알아야만 하는 어휘는 2,440개였다.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휘력 진단평가는 바로 이 어휘들로 이루어졌다. '어휘력 진단평가'는 아이들이 교과서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평가이기도 했다.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알아야 할 어휘를 '학습도구어'라고 한다. 학습도구어는 교과서와 같은 학술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며 일상에서 대화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어휘와는 구별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는 '나누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교과서에는 분류하다, 구분하다, 분석하다, 구별하다 등의 단어들로 표현된다.


분류, 구분, 분석, 구별은 모두 '나누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세부적인 뜻은 조금씩 다르다. 분류는 '일정한 기준을 갖고 나눌 때', 분석은 '하나의 대상을 개별 요소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눌 때' 사용하는 단어로 미세한 의미의 차이가 있다. 가령 어떤 꽃을 뿌리와 줄기, 잎사귀와 꽃 등으로 나누어 자세히 들여다보며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분석하다'이다. 그런데 '개화 시기'에 따라 꽃들을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과 같은 방식으로 나누는 것은 '분류하다'가 된다. 그냥 '나누다'라고 표현할 때보다 '분류', '분석'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좀 더 정 교하고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다.


교과서는 학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교과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해야, 즉 학습도구어를 이해해야 학습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학습도구어의 미세한 의미 차이를 세밀하게 파악하느냐 파악하지 못하느냐는 학습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가져온다. 게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교과서에는 난이도 높은 학습도구어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제 학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휘력 점수가 낮은 아이들의 경우 쉬운 어휘들로 이루어진 글은 끝까지 잘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산패'와 같은 어려운 단어가 나타나자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결국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어휘력 부족이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평소에 독서량이 많고 어휘력 점수도 높은 아이들은 '산패' 같은 어려운 단어가 등장해도 흔들림 없이 일정한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쉬운 어휘로 이루어진 글은 뭔가 설명하다 만 느낌이어서,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오히려 어려운 어휘로 이루어진 글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시선추적 관찰 결과는 아이들의 어휘력 차이가 글을 읽는 태도와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어려운 단어를 접했을 때의 태도가 많이 달랐고 비핵심어까지 세밀하게 해석하려 노력하는지 여부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어휘력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글 읽는 태도는 교과서를 읽을 때나 시험 문제를 풀 때도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즉 어휘력 수준이 낮은 아이들은 혼자서 교과서를 읽거나 시험 문제의 지문을 읽을 때 어려운 어휘가 나오면 그냥 건너뛰는 바람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어휘력 수준은 전반적인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미래의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이 문해력이라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국가 정책 차원에서 지원도 한다. 2010년에는 새로운 교육 과정을 발표하면서 모든 교과서를 어휘력 교육에 중점을 두도록 개편했다. 어휘력이 뒷받침되어 야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는 문해력도 함께 향상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사는 그날 배울 교과 내용에 나오는 단어들의 뜻을 설명하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한 단원이 끝나면 배운 어휘를 복습하도록 워크북이 첨부되어 있어 배운 어휘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런 시스템에서라면 적어도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의 뜻을 몰라 공부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사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이 아이들 중에는 약간의 도움만 받아도 금방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 어휘력 향상을 통해 교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면 금세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어휘력을 향상시킬까?

공부가 즐거워지는 어휘학습법을 알아보자.


단어의 의미와 쓰임을 정확하게 익히기 위해 문장의 빈칸에 적절한 단어 넣어보기, 배운 단어를 활용한 '한 문장 쓰기' 연습, 학습에 꼭 필요한 학습도구어부터 공부하기, 유의어/반의어를 활용해 단어 의미 파악하기와 같은 어휘 학습법을 활용할 수 있다.


3. 배운 단어를 활용한 '한 문장 쓰기' 연습


빈칸에 들어갈 단어 찾기 게임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날 배운 단어를 활용해 '한 문장 쓰기'를 해보도록 했다. 맥락에 맞게 단어를 넣어 문장을 만들고 직접 써보는 연습은 배운 단어를 복습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실제 생활에서 단어를 정확하게 활용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려면 문장 쓰기 연습을 통해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 수업을 기획한 신명선 교수는 '한 문장 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대개 단어의 뜻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 중요한 것은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 그리고 어떤 뉘앙스로 쓰이는지 아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안다고 할 수 있 다. 그러려면 실제로 문장을 쓰면서 다양한 단어를 사용해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통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때 사전에 제시된 예문들도 함께 읽어보며 이해하는 게 좋다. 그런 다음에는 단어를 넣어 문장을 써봄으로써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실하게 익혀야 한다. '나았다' 와 '낳았다'처럼 뜻이 헷갈리는 단어도 문장 속에 넣어 써보면 정확한 뜻을 알게 된다. 해당 단어를 넣어 문장을 써보거나 일 상에서 그 단어를 사용해 대화를 해보는 등 직접 활용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어휘 학습법이다.


4. 유의어·반의어를 활용해 단어 의미 파악하기


유의어·반의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어휘력 학습법이다. 예를 들어 확산, 확장, 확대라는 세 개 단어는 언뜻 보기에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확산은 '흩어져 퍼진다' 라는 뜻이고, 확장은 '범위나 세력을 늘려서 넓힌다'라는 뜻이며, 확대는 '모양이나 크기를 늘여서 크게 한다'라는 뜻이다. 같은 방법으로 지향, 지양과 같이 반대되는 의미의 단어도 비교해 본다. 지향과 지양은 많은 사람이 혼동해서 쓰는데, 그 뜻을 알면 그럴 일이 없다. 완전히 다르게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양은 '어떤 것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 지향은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간다' 라는 뜻이다.


이처럼 유의어와 반의어를 비교하면서 정확한 뜻을 파악해가다 보면 단어의 의미를 더욱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도 향상되고 단어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되어 헷갈릴 일도 없게 된다.


* 책의 끝에는 21장에 걸쳐 중학교 3학년 학습도구어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나라 청소년의 어휘력 부족 심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