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1. 2020

칠팔월 닭은 눈깔도 파먹는다고?  

닭들의 전성시대

어제 저녁 밥을 먹으며 평균 연령 80이신 순천 할머니들이 내신 그림책 내용 가운데 하나를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화난 시아버지'라는 제목의 안안심 할머니 글이다.

당목천을 잘라 시어버지 옷을 만들라고 시어머니가 시키셔서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어놓고 소죽을 끓이는 데 애기는 울고 정신이 없었단다. 소 풀을 먹이러 나가셨던 시어머니가 들어와 소여물에 닭똥을 싸놨다고 집에서 뭐 했냐고 야단을 치니, 닭똥을 들어내고 소죽을 끓이며 되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말대답을 한다고 시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쫓아나와 학자 집안에서 그 따위로 배웠냐고 난리를 쳤단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자, 그러려고 남의 집 딸을 데려왔냐고 남편이 한 마디 하자 그 뒤로는 시부모님이 정말 잘해주셨다는 내용이다.

“근데 어쩌다 소여물에 닭똥이 있었을까요?”

“달구새끼가 소여물 훔쳐먹으려고 왔다가 똥 삐직 싸고 갔겄지~ 춘삼월 봄되면 암탉들이 알을 서른 개 쯤 품거든. 그 중에서 열 개는 곯아서 곤달걀로 먹고.
그게 약으로 쓰인다고 항께.”

“곤달걀은 술안주로도 포장마차에서 팔았다던데요?”

“옛날에야 먹을 게 귀한데다가 달걀은 원체 귀한 거라서 함부로 안 버렸응께 뭐가 됐든 먹었지야.
근디 그 서른 알 중에서 스무 개 정도는 삥아리가 되서 태어나. 개나리꽃 물고 삐악삐악 오종종종 다니다가, 칠팔월 되면 중닭쯤 되야서 먹을 거 찾아 천지사방을 쫓아댕겨.”   

어릴 때 집에서 닭을 여러 마리 키워본 나도 어머님 말씀에 닭 쫓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쯤 되면 토방이고 부엌이고 돌아댕기며 여기저기 똥을 싸질러서 쫓아내고 닭똥 닦고 그러느라 바빴어요. 그러니 복날 닭 잡아먹으면 속이 시원했다니까요.”

“우리땐 복날이라고 잡아먹기나 하간? 더 키워서 장에 내다 팔았지. 명절이나 되고, 사위나 와야 닭 잡지 아무때나 안 잡았어야.
암튼지간에 중닭이면 사람으로 치믄 청소년인께 한창 클 때라 얼마나 먹어대겠냐?그래서 칠팔월 닭은 눈깔도 파먹는다는 말이 있단다. 먹을 거라면 사람 눈깔도 파먹는다고~
그렇게 먹이 찾아 돌아댕기다가 소여물 발견하면 얼씨구나 하고 가서 쪼아먹다가 누가 쫓은께 똥 삐직 싸고 도망갔겄지. 닭은 물똥이라 걸어댕김서도 싸고 도망감서도 싸고, 그냥 막 싸거든. 그뿐이게? 지금도 난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난다~”

“또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칠팔월이면 여름이라 더울 때잖냐. 부엌에선 방 뜨거울까봐 아궁이에 불도 못 지피고, 한데다 솥 걸어놓고 밥을 했단마다. 밥 다 하고, 밥을 풀라고 하믄 집안에 있는 닭들이 밥솥 주변으로 삐~잉 둘러 선다? 한 스무 마리 둘러서서 언제 솥뚜껑 열고 밥 푸나~ 하고 고개를 쫑긋쫑긋하며 치다본당께. 영물이여 고것들이~ 글고는 내가 밥그릇에 밥 퍼서 놓기가 무섭게 그거 먹겠다고 달라드는디, 못 먹게 할라고 훠이훠이 쫓을 틈도 없어서 밥주걱으로 닭등짝을 딱 때려!”

“집에 형제들도 많으셨는데, 누구 닭 쫓아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쫓아줄 때도 있지만 나 혼자일 때도 많았지야. 쫓아줄 때도 손으로는 안 돼, 막대기로 해야지. 막대기 들고 와서 지키고 섰다가 막대기로 뚜드려대면서 쫓아야지 안 그럼 도망도 안 간당께. 근디 내가 밥 푸다가 막대기가 어딨냐? 긍께 급한 마음에 밥 푸던 주걱으로 닭등을 팍 쳐서 쫓는 거지. 그라믄 이것들이 맞아서 아픈께 꼬꼬댁거리면서 저만치 도망갔다가, 얼마 안 되서 다리 한짝을 질질 끌면서 삐짝삐짝 또 온다? 그러곤 내가 다른 놈 쫓는 사이에 방금 퍼놓은 밥을 후다닥 쪼아먹고는 또 뜨겁다고 땅바닥에 부리를 비벼대면서 쌩난리를 펴싸~ 솥에서 막 푼 밥인께 엄청 뜨겁거등. 허참 기가 맥히제~ 그 꼴이 얼매나 우습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당께.”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며 어찌나 생생하게 닭들이 밥주걱으로 등짝 맞고 도망치는 모습, 다리 끌면서 다시 오는 모습, 뜨겁다고 부리 땅바닥에 비비는 모습들을 재현해주시던지 배꼽 잡고 웃었다.

“닭들 하는 짓이 완전 코미디네요~ 푸하하하”

“그랑께 말이다. 생각할수록 코미디랑께~
 옛날엔 그러구 살았니라~”

아, 이런 말씀들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면 참 좋을 텐데…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로 하는 게 더 나으려나? ^^



작가의 이전글 27종 스뎅 그릇 사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