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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2. 2020

재봉틀의 귀환

봉트리는 무서워



"이야~ 저 할아버지 눈도 좋네. 여든다섯에
맨눈으로 바늘구녘에 실을 넣고!"

무슨 말씀인가 하고 TV를 보니
6시 내 고향 '고향 노포'에 나온 할아버지 얘기다.
양복점에, 점방에, 신문지국까지 겸한 가게 한쪽
오래된 재봉틀의 바늘구멍에 실을 꿰고 있는 할아버지는 올해 85세가 되셨다는데 , 평생 양복쟁이로 살아오시며 지금도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계셨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재봉틀이 내 어릴 적 집에 있었던 'DRESS'라고 쓰여진 물건이었다. 의자에 앉아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재봉질을 해야 하는.

"어, 저 재봉틀 집에도 있었는데~"

하니, 어머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저 재봉틀이 유명했지야. 나도 저걸로 옷 많이 만들었다~" 하신다.

"그럼 어머님도 저 재봉틀로 처음 재봉질하신 거예요?"

"아니~ 저거 나오기 전에 손으로 돌리는 미싱이 있었는디, 그거 먼저 썼지. 오른손으로 돌리고, 왼손으로 밀면서 재봉질하다가 나중에 페달로 밟는 게 나온께 그걸로 바꿨지."

"그럼 지금 쓰시는 전자동 미싱은 언제 사신 거예요?"

"그건 00이(큰시누이) 시집갈 때 걔가 사주고 갔지~"

"엥? 예전엔 딸이 시집갈 때 혼수로 미싱 해서 보내주지 않았어요? 어머님은 꺼꾸로 받으셨네요?"

"그랑께 말이다. 아마 그 짝 안사돈이 집에 사놓고 안 쓰는 거 있다고 갖다 쓰라고 해서, 00이가 산 거를 나 주고 갔을 걸~"(나중에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시더니, 아가씨 결혼 전에 어머님 쓰시던 발 달린 미싱을 이사하며 버리시게 돼서 아가씨가 사줬다고 하심)

"아~ 그렇게 된 거였군요. 덕분에 우리 집에서 요긴하게 잘 쓰네요^^"

난 어릴 때 재봉틀 갖고 놀다가 재봉 바늘이 엄지손톱 가운데를 정확히 관통한 뒤로 재봉틀 무서워서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 전자동 미싱이라도 봉트리는 봉트린지라 접근 엄금이다. 그래서 재봉질할 일이 생기면 늘 어머님께 부탁하곤 한다. 이러니 내가 불량며느리지~^^;;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용품이 되면서 천으로 수제 마스크를 만들어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마스크 안에 정전기 방지용 부직포 필터를 넣으면 비말 입자 85% 차단 효과가 있다니 어지간한 KF85 마스크 정도의 역할을 하는 셈이고, 일회용과 달리 빨아서 필터만 바꿔 넣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다. 재봉틀을 쓸 수 있고, 마스크 만들 재료가 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재봉틀 만질 엄두를 못 내는 난 그저 먼산을 볼 따름이지만...

울 어머님 뼈 있는 한 말씀.

"이다음에 나민이를 바느질 가르쳐서
나민이한테 저 미싱을 물려줘야재~"

"우헤헤~ 아마 그게 더 빠를 거예요~^^"

이러며 웃는 나는 참 대책 없는 며느리.


* 덤으로 재봉틀의 역사를 살펴보실게요^^


재봉틀은 천, 가죽, 종이, 비닐 등을 실로 엮는 데 사용되는 기계이다. 영어로는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고, 일본에서는 미싱(ミシン)으로 불린다. 소잉 머신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뒷부분인 ‘머신’이 변하여 ‘미싱’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초의 실용적인 재봉틀은 1829년에 등장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두 가닥의 실로 바느질을 하는 재봉틀은 1846년에 하우에 의해 발명되었다. 1851년 싱어는 하우의 재봉틀을 개량한 후 마케팅 기법과 생산체계를 선진화하여 미국의 재봉틀 산업을 일구었다. 우리나라는 1877년에 재봉틀이 처음 도입되었으며,(당시 미국의 싱거미싱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는데, 토지를 쓰신 박경리 선생님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이 싱거미싱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되었다.

재봉용 기계가 우리나라에서 재봉기(裁縫機)가 아닌 재봉틀로 불리게 된 이유는 도입 당시 재봉용 기계의 기능이 베‘틀’과 비슷하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재봉‘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재봉틀은 오랫동안 집안의 가보처럼 사용되다가 1965년에 출시된 부라더 미싱부터 대중화되었다.(브라더미싱은 1961년 창립해 2020년인 올해 창립 6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부라더 미싱은 부산 정기 주식회사가 일본의 부라더 공업과 합작하여 생산한 재봉틀이었다. “꽃님이 시집갈 때 부라더 미싱”은 1970년대에 유행했던 광고 카피였다. 지금은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1970년대만 해도 재봉틀은 혼수품 목록 1호였다.

* 미싱 골목으로 유명한 창신동에는 미싱 박물관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5873793&cid=42856&categoryId=4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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