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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19. 2023

구하는 조사관

전작 이후 7년만의 후속작

<구하는 조사관>은 전작 <달리는 조사관> 이후 7년 만의 시리즈 신작이다. 나는 두 책이 이미 나온 뒤에 <구하는 조사관>을 먼저 발견했고, 이야기 흐름상 <달리는 조사관>이 전작이란 사실을 알고 전작부터 순서대로 읽었지만, <달리는 조사관>이 처음 나왔을 2015년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2019년 즈음에 책을 봤던 사람들이라면 후속작을 한참 기다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책을 통해 송시우 작가에 대해서도 좀더 알게 되었는데, '송시우'라는 이름은 '가뭄을 해갈하는 비'라는 필명이었다. 대전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법과 윤리, 정신의학을 둘러싼 쟁점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어쩐지 소설 속 국가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들의 활약을 정말 생생하게 잘 썼다 싶더니, 작가 자신의 삶터가 국가인권위였던 것이다.^^


프롬 제네바 / 버릴 수 없는 여자 / 감사변태 변신재

 / 끝까지 구하는 승냥이 ... 네 편의 단편집인 <구하는 조사관>에서 가장 흥미를 끈 작품은 전작 <달리는 조사관>에서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의 연쇄살인범 최철수에 의해 사라진 이하선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최철수에 의해 죽은 열한 명의 피해자 가운데  끝내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유족과 배홍태 조사관을 절망시켰던 이하선은 결국 살아있는 채로 부모님과 만난다. 그런데 8년의 세월이 지나는동안 부모도 한눈에 알아볼 수 없게, 이름도 생김새도 변한 이하선을 엄마가 결정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던 말은 엉엉 우는 엄마를 향해 그녀가 내뱉은 이 한 마디다.


"구해줄게. 내가 구해줄게, 엄마."


이 대목에서 나 역시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는데, 이 책의 제목이 <구하는 조사관>이 된 것은 아마도 이 구절에서 연유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조사관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구한다는 의미도 포함한. 전작 <달리는 조사관>에 비하면 재미가 덜했지만, 이 마지막 작품덕분에 <구하는 조사관>을 끝까지 읽은 보람이 있었다. 힘든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멋지게 풀어낸 송시우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음은 책에 대한 해설과 작가의 말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해본다.


<구하는 조사관>은 내용상으로는 전편 시점에서 약 1년쯤 지난 시기로 네 명의 조사관들은 변함이 없다. 우유부단하게 보일 정도로 신중하고(한윤서),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심술도 부리고(이달숙), 정의감은 있지만 감정에 따라 좌충우돌하고(배홍태), 세심하고 자부심이 넘친다 (부지훈). 이들 개개인을 '명탐정'의 범주에 넣기는 턱없이 부족 하고, 서로의 사이가 살갑기는커녕 앙숙 같은 관계도 있어서 의견 충돌이 다반사이지만, 서로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각각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팀워크가 발휘되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달리는 조사관>과 <구하는 조사관>을 읽어보면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다. 전작에서는 각각의 작품이 약간의 궁금증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조사관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만, 그들의 임무는 누군가의 유/무죄 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권 침해 여부의 조사이기 때문에, 사건 관계자의 운명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겼다. 그러나 <구하는 조사관>의 수록작품들은 대부분 명확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아래에 쓴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후속작에 대한 요구를 더이상 받고 싶지 않았던 작가가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전작의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사형수 최철수는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존재로 다시 등장한다. <구하는 조사관>에서 연쇄살인범 최철수의 끔찍한 과거가 세세하게 묘사된다.


또한  <달리는 조사관>이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면 <구하는 조사관>은 약간 가벼운 느낌의 이야기가 교대로 이어진다. <구하는 조사관>은 퍼즐, 미 스터리, 사회파 추리소설, 유머 미스터리, 사이코 스릴러 등으로 구성된 종합장르 추리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밌었고, 어느 편부터 읽어도 상관이 없었다면, <달리는 조사관>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더 좋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시 '인권'이다. 작가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각,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 상황에서 종교집회나 정신병원의 집단 감염 등 현재 시점의 독자들이라면 다 알만한 첨예한 이슈를 소재로 다루면서 그에 따른 인권 문제를 실감하게 한다.


ㅡㅡ 이하 작가의 말


<달리는 조사관>(2015)의 후속작을 쓰는 것을 망설인 이유는 최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애초에 시리즈로 계획하고 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시리즈에 대한 욕심이 적고, 한 권으로 그 작품이 펼친 세계가 마무리되는 스탠드 얼론을 좋아합니다.


둘째, 전작을 넘어서는 후속작을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조금이라도 더 좋은 추리소설을 쓰는 것이 저의 목표인데, 불리한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셋째, <달리는 조사관>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2019년 OCN에서 방영된 것이 뜻하지 않게 가장 큰 방해물로 작용했습니다. 원작과 드라마의 캐릭터, 스토리, 분위기가 머릿속에서 마구 엉켜버린 것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영상물의 세계에 한 번 빠졌다가 나오니 원래 제가 쓴 게 무엇이었는지 상당히 헷갈렸습니다.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달리는 조사관>의 네 번째 에피소드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의 마무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약간씩 열린 결말로 소설을 끝내는, 추리 소설가로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이 있습니다. 결말에 여운을 남기기 위한 고유한 작법이라고 변명하는 이 습관 때문에 가장 많은 질문과 질책을 받은 작품이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였습니다.

이하선은 어떻게 되었냐는 독자들의 질문에 제 대답은 항상 "저도 몰라요."였습니다. 답을 들은 분의 눈에 비친 당혹감과 은은한 비난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서서히 반성하게 됐고, 이 이야기를 끝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닫힌 결말로 써서 후환을 남기지 말자. 범죄 피해자 이하선을 구하자.죽은 연쇄살인범도 살려내서 남은 이야기를 이어가자.


무엇보다 배홍태 조사관의 집념을 불러와야 했습니다. 그 집념은 치밀한 사고(思考)가 아닌, 본능과 직관으로부터 나오는 힘입니다. 범죄 피해자의 잊힌 시신을 누군가는 끝까지 찾아내려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정말 존엄한 존재인지 회의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런 의심 따윈 집어치우고 맹목적으로 달려가 당장 뭔가를 지켜내고 구해내는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한 인간의 존엄을 위해 누군가 한없이 무모해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도 제법 희망이 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중간중간 수십 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며, 이게 슬럼프일까 싶은 나태함에 가끔 손을 들었다가 내리며 3년에 걸쳐 조금씩 쓴 것이 예상보다 너무 긴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 다. 이 이야기가 '가뭄을 해갈하는 비'라는 제 필명의 뜻처럼, 독자들이 기다렸던 반가운 이야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송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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