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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11. 2023

한국형 추리물 '달리는 조사관'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작가 송시우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이상하게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물에 끌린다. 그래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어느날 도서관 800번대 서가를 왔다갔다 하며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띈 작품이 송시우 작가의 <구하는 조사관>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리는 조사관>의 후속작이라는데, 그 책은 누군가 대출해간 상태라, 송시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라일락 붉게 피던 집>부터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상당히 몰입도가 좋은 훌륭한 추리물이었다. 오~, 송시우작가 대단한데! 게다가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여성작가이다. 나는 라일락부터 읽어서 여성작가이려니~ 했는데, 조사관부터 읽은 이들은 남성작가라고 생각했다가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2014년  출간된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2012년 일본의 미스터리 전문 월간지 「미스터리 매거진」에 데뷔작 '좋은 친구' 전문이 번역 소개되어 화제가 된 송시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미스터리 매거진》은 2014년에 700호 출간을 맞이한 유서 깊은 잡지로,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거장 시마다 소지가 중심이 되어 기획한 특집 기사 ‘아시아 미스터리로의 초대’에서 송시우 작가가 한국 미스터리의 젊은 기대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한국형 미스터리 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으며 장르소설의 문법과 한국적 리얼리즘의 성공적인 만남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한국의 1980년대와 2010년대라는 현대를 성실하게 기록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 어린 시절 주인공 현수빈의 옆방에 살던 영달오빠가 연탄가스로 죽은 줄 알았는데 실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누가 그를 죽였나'라는 의문을 풀어간 추리물이다.


다음해인 2015년 나온 <달리는 조사관>은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상의 조직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조사관들이 등장해 탐정처럼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다. 송시우 작가의 두 번째 책은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어 2019년 OCN에서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달리는 조사관> 후속작으로 2022년에는 <구하는 조사관>까지 나왔다.


송시우 작가가 이런 한국형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아마도 미스터리 마니아였나 보다. 이런 마니아가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 가운데, 그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미스터리는 언제나 작가에게 현실 너머에 있는 설레는 세계였지만, '지금 여기 한국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이 장르만이 가지는 특유의 재미와 더불어 독자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한국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목표 아래 오랜 준비를 거쳐 미스터리에 열광하는 마음과 행운, 아주 약간의 재능을 합쳐 그 희망을 이룬 첫 장편소설이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었는데, 이 책은 작가 생각에 분에 넘치는 칭찬과 기대를 받았던 것 같다고 한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뻤고, 다음에는 무엇을 써야 할까? 하는 부담감으로 다가오던 차에 경찰도 탐정도 아닌 인권위 조사관의 사건 해결기를 구상하게 됐단다.


인권위는 방대한 분야의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다루는 준사법기관으로써 한국에 실재하는 국가기관이다. 진정사건 조사를 통하여 사실의 규명과 함께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다보니 많은 기대에 둘러싸여 종종 비난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작가는 그 다툼의 과정에서 여러 가치가 충돌하기 마련이고, 여기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며 범죄 사건과도 연관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인권위를 배경으로 각자 능력과 성격이 다른 조사관들이 때론 반목하고 갈등하며, 서로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면서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딜레마는 살짝 미해결로 남겨놓으면서 1년여에 걸쳐 다섯 편의 이야기를 완성해서 나온 책이 <달리는 조사관>이다. 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상의 조직을 설정한 것으로 처리했으나, 그 역할과 기능은 현실을 최대한 참고했으며, 인물과 사건은 백퍼센트 창작이다.


나는 <라일락 붉게 피던 집>도 재밌었지만 몰입도나 작품성에 있어서는 <달리는 조사관>이 훨씬 더 좋았다.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인권위 조사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늘 고민하는 베테랑 조사관 한윤서, 피의자인 진정인에게도 엄청 공감하며 사건에 매달리는 열혈 조사관 이달숙, 거친 행동과 언사를 내뱉지만 약자의 편에서 독단과 정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배홍태,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지만 인권위에서는 영 힘을 못 쓰는 주지훈. 형사도 탐정도 아닌 인권위 조사관 4인의 성실하고 공정한 다섯 건의 사건 기록이 <달리는 조사관>안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송시우 작가의 <달리는 조사관>도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 주제인 '누가 죽였나'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당대의 사회 문제를 고전적 추리 방식으로 풀어서 보여주는 소설이다. 관련자들이 서로 엇갈려 증언을 하는 사건을 두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추리소설이 공유하는 부분이지만, <달리는 조사관>에서의 진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리가 과연 침해되었는가?'하는 문제이다. 이런 설정은 탐정에게 피해자는 선인, 가해자는 악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층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조사관들은 그런 선입관에 구해받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미스터리가 훨씬 더 풍성해진다.(박현주 작품해설 참고)


<달리는 조사관>을 덮고 나면, 다음에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22년 나온 <구하는 조사관>을 어서 읽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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