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겨지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려니 했다. 상식적으로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원인이고, 여행가면 기분이 좋아지니, 안 나아질 이유가 없질 않은가...
그 해 여자셋 남아셋이서 2주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언니랑 열살, 열한살 남자조카, 나랑 다섯살 아들, 그리고 이십대 큰조카. 이런 조합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게 무모해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아팠던 세월을 보상하는 의미로라도 가야했다. 아이들이 긴 비행시간을 잘 버틸지 걱정도 되었으나, 열시간도 지루해 하지 않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했다. 신혼여행 갈 땐 몇시간도 지루해 죽는 줄알았는데 말이다.
우린 핀란드를 경유해 로마에 늦은 밤 도착했다. 인간 네비게이션 조카덕분에 숙소를 바로 찾았고, 로마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에 압도되었다.
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
내가, 나니까, 나라서 ...
나, 나 하면서 살아온 상을 깨치는듯 했다. 평소에 알아차림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나를 삼자로 보게 되는 느낌이었다.
양자물리학에서도 말한다. 넓은 세상에 나가거나, 탁 틔인곳에 가면 진짜 '나'가 커진다고, 화나면 답답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도 이와 같다한다.
밖으로 나가면 나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도 힘들지 않았다. 언니가 가져온 미니 밥솥 덕분이었다. .
적어도 한끼는 꼭 밥을 먹었으니 말이다. 밀가루가 버거운 우리를 위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많은걸 느끼고 경험했지만, 그 중에서도 피렌체에 갔을 때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아침을 먹고, 피렌체 대성당을 향해 강변을 걸었고, 지도를 봐가며 찾아갔다. 천천히 도심쪽으로 걸어가는데 조카와 아들이 빨리와보라고 소리지른다. 달음박질을 했다.
그러다 순간, 내 시야에 거대한 무언가가 스쳤다. 내 눈을 의심했다.
그자리에 얼어 붙었다. 충격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 생애 처음 보는 풍경에 압도당했다. 미로같은 도심 사이에 숨은 성당의 일부분인데도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 였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 었다. 건물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어쩜 우린 문명이 발달해 생활은 편리해 졌어도, 옛날 사람들보다도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로 만든 아파트만 보고 살았던 난 적잖이 놀랐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성당은 백여년동안 지어졌다한다.
지붕은 돔이라는 반구형구조다. 414개의 좁은 계단을 걸어오르면 종탑에 오를 수 있다. 다섯살아이가 오르자 외국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벽에 기대어섰다. 아이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옆사람에게 넘겨주었다. 뒤에서는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다. 꼭대기에 오르자 아이를 안아 올려주고 내려주었다.
'We are the world'의 순간이었다. 외국사람들의 인정에 훈훈했다.
종탑에 오르니 주황색 건물과 언덕이 펼쳐진 전경이 아름다웠다. 그곳에 붙박이가 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여행을 추억하다 보면 그날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웃고 떠들고, 들여다보고, 감상하다보니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어느새 가벼워져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일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몸이 좀 나아짐을 느꼈다. 건강을 위해 무언가 따로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의사선생님이 괜한 말을 한게 아니었다.
요즘 아들이 아프다.
양.한방을 전전하며,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