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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Nov 04. 2021

남의 잘못을 나에게 묻는 이유

내가 만만한 거니? 아님 편한 거니?

아침 매니저 회의 시간에 영업 부서의 매니저가 고객의 불만사항을 전달한다.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나서 물고기가 죽었다는 양식장이 있다는 얘기였다.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제품을 먹고 어떻게 물고기가 죽는다는 건지 좀 황당한 느낌이 들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R&D 매니저가 우리 제품 탓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처음 얘기를 꺼낸 영업 부서의 매니저도 역시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거래처가 그렇게 주장하고는 있지만, 우리 제품 때문에 물고기가 죽은 것이 아니니까 제품 탓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물고기가 다 죽었다면서? 우리 탓이 아니라니까 다행이지만, 왜 죽은 건데?" 테이블에 앉은 매니저들에게 물었다. "그 강 상류에서 댐을 방류해서 많은 양식장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매니저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그래? 그런데 왜 우리 제품이 나빠서 죽었다고 하는 거야?" 영업 매니저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다시 물었다. "아마 정부에서 보상이 없을 것 같으니까, 혹시 회사에 얘기하면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벌써 2년 정도 지난 일이다. 물론 그 거래처가 괘씸하긴 했지만, 역시 확인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 보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이때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역시 매니저 회의 시간에 얘기가 나왔다. 


강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베트남 사람들


"OO 지역의 댐에서 방류가 있어서 하류에 있는 양식장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달 해당 지역의 매출 하락이 예상됩니다." 영업 매니저가 말을 꺼냈다. OO 지역이라고 하면 2년 전의 그 지역이다. 


"아니, 또 거기서 댐을 방류했어? 이번에 태풍 때문에 비가 많이 오니까 했나 보네. 그런데, 이번에도 사전에 고지 안 했대?" 영업 매니저에게 물었다.


"네, 발전소가 댐 방류하는 동시에 공지해서 어민들만 빠져나오고, 물고기는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래? 미리미리 공지할 수 없는 건가? 그리고 피해를 입었으면 보상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 다들 대답이 없다.


"알겠어. 그래도 이번엔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 안 해서 다행이네."


"이번에는 우리 영업사원들이 미리 가서 피해 상황을 확인했는데,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외상 대금 상환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한번 방문해서 구호품을 전달해 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번 방문에는 신문 기자도 함께 동행시키기로 했다. 아무래도 언론에 이런 피해 상황이 보도되고 해야지 다음에 댐 방류할 때는 조금 더 조심해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시골 카페의 연유 커피


양식장이 있는 시골 동네의 한 카페에서 회사의 영업사원들과 신문 기자를 만났다. 커피가 연유 위로 똑똑 떨어지는 베트남 연유 커피를 바라보면서, 현재 상황에 대한 영업 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업사원들은 신문 기자에게도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신문 기자인데 수첩도 없이 A4용지를 두 번 접어서 4 등분된 종이 쪼가리에 우리의 대화를 적고 있다. '뭔가 신뢰가 안 가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통역 직원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나 보다. "신문 기자 차림이 그냥 동네 아저씨 같습니다. 근데 베트남 신문 기자는 보통 이런 모습이에요."라고 말한다. '하하'웃으면서 같이 차를 타고 양식장으로 이동했다.


양식장에 도착하니 강가에 죽은 물고기의 썩은 냄새가 가득하다. 그중 우리 제품을 사용하던 양식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근처 양식장의 사장들 여럿도 함께 모여있었다. 신문 기자가 온다고 하니까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과 인사하고 우리 거래처의 피해 상황을 들었는데, 모든 물고기가 죽었다고 한다. 여기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의 양식장과 이 강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수십 가구의 상황이 모두 같다고 했다. 댐 방류 얘기를 듣고 나서는 그저 몸만 대피해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와 보니 양식장의 물고기들은 모두 죽었고, 그물과 같은 양식 도구와 물품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양식장 사장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신문기자는 이 상황을 들으며 4 등분한 A4용지에 적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진지한 인터뷰를 할 때는 스마트폰으로 녹취를 하며 동영상을 찍었다.


서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문기자와 양식장 사장


'열심히 얘기 많이 하시네. 할 얘기가 많으시겠지.' 하면서 뒤에 앉아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통역 직원이 나에게 묻는다. 


"한국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한국이었으면 미리 통지했겠지. 이런 상황 생기면 신문에 나오고 시위도 하고 난리 날 거다."


"그렇습니까? 미리 통지를 합니까?"


"그렇지, 하다못해 북한도 댐 방류하기 전에 남쪽에다 알려주는데, 또 만약에 갑자기 댐 방류해야 되는 상황이면 피해 보상이라도 해줬겠지."


"아! 그렇군요."




우리 회사의 거래처 사장과 한참 동안 인터뷰를 하던 신문 기자는 대화를 마친 뒤, 다른 양식장 사장들과도 인터뷰를 하며 여러 기록을 남겼다. 또 강의 유속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기고, 현장의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이렇게 양식장 사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2년 전에 회사에 보상을 요구했던 거래처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우리 회사를 만만하게 보고 말도 안 되는 보상을 요구했다고 괘씸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어쩌면 얘기를 들어줄 리 만무한 상대보다는 얘기가 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우리 회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렇게 거래처에 찾아와서 얘기 들어줄 생각을 못했었는데, 이제는 거래처에도 조금 여유 있게 다가설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찾아온다고 해서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줄 수는 없지만, 얘기를 들어주고 아주 조금이라도 해결의 실마리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며칠 후에 회사 직원이 신문기사 링크를 보내주었다. 허름해 보이던 베트남 신문 기자는 그날 우리와 인터뷰를 한 이후에 정부 기관과 발전소에 추가로 취재를 한 모양이다. 지방 정부는 피해 어민에게 피해를 보상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아래는 베트남의 신문기사 링크입니다.

https://kinhtedothi.vn/cac-ben-lien-quan-noi-ve-nguyen-nhan-750-tan-ca-be-o-dong-nai-bi-chet-438204.html?fbclid=IwAR2ESAgqZvnijbCG_-sMGcmCw67jV4rsSTUZhK4uSRRGJ3-tAR3PdTlgc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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