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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Dec 15. 2021

왜 집이 없는 이유를 설명할까?

값없이 받는 선물

4년 전,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지역에서 우리 회사의 대리점을 하고 있는 어느 베트남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시골 지역에 가난해서 제대로 된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회사와 함께 도울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같이 집을 지어주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물론 나도 가능하면 돕고 싶다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집이 얼만데? 그걸 지어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점 사장이 설명하는 내용에 따르면, 집 한 채에 한국돈으로 300~400만 원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대리점과 회사가 반반씩 부담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엥? 집이 7천만 동(약 350만 원)밖에 안 해?" 회사의 총무 매니저에게 물었다.


"그건 자재값만 얘기하는 겁니다. 회사가 집 지을 수 있는 자재를 사주면, 짓는 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그러면 건축비용은 생각 안 해도 되나?"


"건축은 본인들이 직접 합니다. 또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이 와서 도와줄 거예요."


'본인들이 짓는다고?' 고개가 갸우뚱거렸지만, 그냥 벽돌로 착착 쌓아 올리면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회사는 그 지역에서 적은 돈으로 홍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홍보를 통해서 누군가를 도와주면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그 대리점과 함께 시골 지역에 집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가 돕기로 한 세 곳의 집이 다 지어졌기 때문에 기증식을 할 예정이라는 연락이 왔다. 


새로 지어진 집을 집주인에게 넘겨주는 기증식 사진


기증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찌민에서 메콩지역까지 자동차로 2시간 정도를 달린 뒤에, 해당 지역의 시청/군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민위원회에 먼저 들렀다. 집을 지어준 곳은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라서 여기에 차를 주차하고 인민위원회 직원인 공무원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각자 공무원들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탔고, 나도 역시 대리점 사장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좁은 시골 흙길을 달려갔다. 그렇게 20분가량 황토로 된 흙길을 달리다가 멈춰 선 곳에는 붉은 벽돌 된 집이 한 채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다 지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주변의 공무원들과 우리 직원들의 분위기를 보니 다 지어졌다고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뭐야? 이게 새로 지어진 집이야?" 통역 직원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일단 여기 하나 있고, 여기서 행사를 마치면 또 다음 집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통역 직원이 대답한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집 지어진 상태가 이게 완료된 거냐고. 벽돌만 쌓아놨잖아. 시멘트도 바르고 바닥도 정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다시 통역 직원에게 말했다.


"아! 그건 집주인이 살면서 할 거예요. 그건 어려운 거 아니니까 일단 집만 지어놓고 살면서 천천히 보수할 겁니다." 통역 직원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다시 대꾸해준다.


"그럼 여기서 그냥 사는 거야?"


"그렇죠. 이미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아...... 그... 그래."


집이 지어졌다는 개념이 내 생각과 다른 것 같긴 했지만, 집 안쪽을 들여다보니 부엌에는 이미 온갖 그릇과 조리 기구들이 다 들어있고, 미로 찾기 하는 것처럼 벽돌로만 나눠져 있는 집 내부의 벽을 따라 가면 문이 달려있지 않은 방들이 두 개 있었다. 그리고 바닥엔 아직 흙먼지가 뿌옇게 있는데도 한 아저씨가 누워있었다. 그렇게 집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계속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 통역 직원을 불러서 통역을 부탁했다.


"집을 지어주셔서 고맙다고 말을 하십니다." 통역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아~ 집주인 아주머니 시구나. 나도 아주머니한테 좋은 집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해줘. 그리고 여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다고 전해줘." 통역 직원에게 대신 말을 부탁했다.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얘기를 하시는데, 남편이 있는데 예전에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통역 직원이 다시 아주머니의 얘기를 전한다.


"그렇구나. 힘드셨겠네. 아까 방에 누워계시던 분인가?"


"네, 10년 전쯤 남편이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좁은 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치료를 잘 못 받아서 그다음부터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갑자기 날 처음 보자마자 왜 남편 다친 얘기를 하는가 싶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더 얘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자기가 시장에서 일을 했는데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아이들 키우느라 돈 쓸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통역 직원이 전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안쓰러운 맘이 든다. 자기가 지금까지 집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를 나에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 대가 없이 집을 그냥 받는다는 느낌이 부담스러우신 모양이다. '나에게 설명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 행사는 그 지역 인민위원회 공무원들의 추천으로 대상자를 선정하여 회사가 돕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공무원들 역시 각 지역에서 추천받은 어려운 사람들을 다시 회사에 추천해 준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살고 있는 친척들과 이웃들은 이 아주머니가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워있는 남편과 자식들을 어떻게 돌보아 왔는지, 그래서 성실히 일해도 제대로 된 집 하나 없이 나무를 세워 만든 판잣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돕고 싶지만 역시 넉넉지 않은 그들의 미안함이 이 아주머니의 집값을 대신 치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의 홍보 목적으로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 우리 회사는 매년 한 차례씩 베트남 시골지역 집 지어주기 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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