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한국 제품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 문화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거래처도 종종 있는 편이다. 간단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조금씩 베트남어로 하기도 하지만, 거래처와 사업상 상담을 하러 가게 되면, 통역을 할 수 있는 직원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통역 직원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단어를 선택해야 해서 베트남에 오래 살 수록 한국어 어휘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는 머리가 희끗한 한 베트남 거래처 사장과 사업이야기를 하는데, 우기가 시작되어 비가 계속 쏟아지는 호수 위의 정자에서 맥주를 몇 잔 마시더니 한국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경험이 너무 좋아서 스마트폰도 삼성이고, 가전제품도 다 한국 것으로 바꿨다고 하는 자랑 같은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그 사장과는 베트남 시골의 호수 위에 코코넛 잎으로 지붕을 만든 정자에서 함께 만났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쳐서 코코넛 잎 사이로 빗물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자 안쪽으로는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고 코코넛 잎과 호수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시원하기만 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지 이 거래처 사장과 사업 이야기는 진작에 잘 마무리되고 계속 한국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사장은 5년 전쯤에 와이프와 함께 단체 관광으로 한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눈 구경을 하고 싶어서 추운 겨울에 다녀왔는데, 베트남에서 샀던 겨울 파카보다 한국 시장에서 산 파카가 더 싸서 신기했다고 하며 말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무슨 음식이 맛있었어요?"
"여러 가지 먹었지만, 그때 먹은 굴이 너무 맛있어서 가끔씩 다시 생각난다고 합니다." 통역하는 직원이 거래처 사장의 말을 대신 전해줬다.
"그렇죠, 베트남에도 있지만, 한국 굴이 훨씬 맛있죠." 베트남에서 먹는 굴은 한국 굴에 비해 좀 흐물흐물하고, 신선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종종 배탈이 나기도 해서 조심하고 먹어야 한다.
"네, 너무 신선했고, 새콤한 맛이 베트남 하고 다르다고 합니다." 통역 직원이 얘기한다.
아마 상큼하다 또는 신선하다는 말을 새콤하다고 했을 것 같다. 통역하는 직원도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에 통역된 말을 알아서 다시 해석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데 한국에서 쓰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단어 앞뒤를 바꿔 말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 관광객이 다낭에 많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한국 관광자가 다낭에 많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 제품의 기호성이 좋습니다."라는 말을 "우리 제품의 호기성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알아서 살펴 들으면 되는 경우다.
외국에서 일하면서 통역 직원과 이런 정도는 서로 감안하고 일해야 한다. 조금 더 심각한 경우로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아예 단어를 베트남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베트남어도 중국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아서 한국과 비슷하지만 아예 다른 단어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베트남어로는 '위임장'을 '소개장'이라고 한다. 그러면 직원이 나한테 와서 이렇게 얘기한다.
"사장님 소개장에 서명 하나 해주세요."
"소개장? 소개장이 뭐야?"
"네? 여기 소개장 있습니다. 사장님이 저보고 대신 가라고 하셨으니까 소개장 필요합니다."
"아! 위임장!"
어쨌든, 내 앞에서 맥주잔을 들고 있는 이 거래처 사장은 한국 굴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
"베트남에 와서도 한국 굴이 가끔 생각납니다."
"네, 맞아요. 저도 겨울에 한국에 가면 굴을 꼭 먹고 옵니다."
"한국은 겨울에 굴을 엄청 많이 먹더라고요."
"그럼요. 한국에서는 바가지로 쌓아놓고 먹어요." 손으로 산더미 모양을 만들며 얘기하자 베트남 사장이 크게 웃는다.
"하하하. 그러네요. 베트남에선 몇 개만 먹고 마는데, 한국에서는 다들 엄청 많이씩 먹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이 싸고,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많이 놀라더라고요." 한동안 유튜브에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굴 쌓아놓고 먹는 콘텐츠가 많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제주도에서 나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하던데 맞나요?"
"바닷가에서는 다 나오는데, 겨울에 제일 맛있죠. 저는 구워 먹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렇게 먹어보셨어요?"
"구워서도 먹을 수 있어요?"이건 거래처 사장이 한 말이 아니라 통역을 하던 직원이 놀라서 물어본 말이다.
"응, 구워서도 먹을 수 있지. 그래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굴을요?" 다시 통역 직원이 의아해하며 되묻는다.
"베트남에서도 굴에 치즈 올려서 구워 먹잖아?"
"아...... 사장님, 지금 굴이 아니라 뀰을 얘기하는 겁니다." 통역 직원은 얼굴을 구겨가면서 어렵게 발음을 해본다.
"뀰이 뭐야? 꿀인가?" '나는 지금까지 꿀 얘기를 한 건가?' 싶어서 통역 직원에게 되물었다.
"발음이 이게 아닌가요? 뀨울을 얘기합니다."
"꿀? 뀰? 지금 우리 무슨 얘기하고 있는 거야? 꿀이야? 아니면, 우리 귤 얘기하는 거야?"
"아, 네 뀨울, 뀰, 귤, 그거 얘기하는 거 맞습니다. 오렌지. 뀰."
그렇다. 베트남에도 귤과 비슷한 과일이 있는데, 한국보다는 새콤하지 않고 달면서 조금 떨떠름한 맛이 있다. 그렇게 나는 베트남 사람과 5분 넘게 굴 같은 귤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도 신기하게 말이 이어서 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