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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n 12. 2023

고궁에서 자는 게 가능하다고?

베트남의 궁궐 같은 호텔에서 지내기

"와! 여기 진짜 궁궐에 들어온 것 같다. 대박이네." 공항에서부터 구불구불한 도로를 2시간가량 달려온 뒤, 초등학생 아들이 차에서 내리며 감탄을 했다. 나와 와이프도 처음 와 본 이곳에 적잖이 놀라긴 했다. 우리 부부는 '베트남에서 수년간 지냈으면서도 이런 장소가 있었는지 왜 이제 알았을까?'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호텔 건물 안쪽의 리셉션으로 이동했다. 입구에 서있던 푸른색의 베트남 전통 복장을 입은 남자직원이 우리를 리셉션의 데스크로 안내했고, 또 다른 남자 직원은 우리 가방을 나르고 있었다.


리셉션은 약간 어두운 느낌이다. 어둡지만 강렬한 색감들, 특히 붉고 푸른 대조적인 색깔, 또 금색과 초록색의 뭔가 상징적일 것 같은 강렬한 빛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이 아니라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리셉션이 있는 공간은 베트남 왕이 외국 사신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전시한 느낌으로 채워두었다고 한다.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받은 것이니까 선물보다는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호텔이 너무 멋있어서 여기에 머무는 이틀의 시간 동안 틈틈이 호텔 직원에게 각 장소의 컨셉을 물어보았고, 직원은 친절하고 또 자랑스럽게 응대해 주었다. 실제로 그 직원은 나를 데리고 호텔 구석구석 투어를 시켜주기도 하였다. 키가 작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베트남 여자 직원이었는데, 이곳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내 생일에 축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레거시 옌뜨 엠갤러리의 리셉션(출처: 호텔의 페이스북)
왕의 보물 컨셉으로 장식된 리셉션 뒤편의 공간(이 중에 딱 한 가지는 진짜 베트남의 유물이라고 한다.)


여기는 베트남 북부지역의 옌뜨(Yen Tu)산에 위치한 '레거시 옌뜨 엠갤러리(Lagacy Yen Tu Mgallery)' 호텔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사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만 방문하기에는 위치가 살짝 애매하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Ha Noi)와 하롱(Ha Long) 베이의 중간 지점 정도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있었고, 둘 중에는 하롱베이에 더 가까운 곳이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한국 사람은 우리 가족만 있었다. 우리는 호치민(Ho Chi Minh)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이퐁(Hai Phong) 공항으로 내려 이동했다. 하이퐁 공항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는데, 오늘 길에 계속해서 산이 보인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에 신기해하며 또 감탄하고 있다.


호텔은 옌뜨산의 한복판에 있다. 국립공원 안에 호텔이 있는 것인데, 진짜 예전 궁궐을 보수해서 만든 호텔인 줄 알았다. 사실 지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일부러 오래된 느낌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들었다. 일부러 페인트도 예스럽게 칠하고, 벽에 균열이 있는 것 같은 효과도 내었다고 호텔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형은 안 따라와서 후회하겠다." 내가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 형은 집에서 뭐 하고 있으려나? 왜 안 따라오는 건지 모르겠네." 둘째가 무심히 대답한다.


이 날 두 명의 아들 중 중학생인 첫째는 학원에 가야 한다고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사춘기이기도 해서 같이 가자고 끝까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생인 둘째만 데리고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 없어질까 봐 졸졸 따라다니던 첫째였는데, 이제 같이 다니기가 너무 어렵다. 사춘기가 끝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만 할 뿐이다.


리셉션에서 웰컴드링크를 마시는 동안, 체크인을 마친 우리 가족은 호텔의 컨셉처럼 예스러운 복도들을 지나 우리 방으로 안내되었다. 예스러운 것뿐 아니라 어떤 작품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며 열심히 걸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우리를 안내하는 호텔 직원도 우리에게 천천히 각 위치들을 설명해 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며 이동했다.


호텔의 복도들(출처: 호텔 페이스북)


이 날 우리 가족은 운 좋게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직 비수기라서 비어있는 방이 좀 있다고 한다. 디럭스룸으로 예약했는데, 그보다 한 단계 위인 주니어 스위트룸으로 배정되었다. 아들이 계속해서 감탄사를 날리고 있지만, 사실 나와 와이프가 더 좋아했다. 방에는 예쁘게 장식된 침대 커버와 웰컴 과일이 놓여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나랑 와이프가 침대 하나를 쓰고, 둘째 녀석이 나머지 하나의 침대를 쓰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방 사진을 찍으려고 둘째한테 좀 뒤로 나와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웰컴 과일과 함께 있던 케이크, 초콜릿들은 사진 찍기도 전에 아들 녀석이 다 망가뜨려놨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주니어 스위트룸과 욕조


방에는 토기로 만든 항아리들이 장식되어 있고, 항아리 안에 있는 은은한 조명이 더 조용한 분위기를 만든다. 과거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 난다. 외부 공간으로 연결되는 창문조차 나무로 되어있다. 커다란 나무 창문을 양손으로 힘줘 열어야 밖의 햇볕이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방과 나무 창문 사이에 있는 공간에는 커다란 구리 색깔의 욕조가 놓여있고, 욕조를 사이에 둔 양쪽 벽으로 패브릭 소파가 놓여있어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저기 앉아서 책 읽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호텔에 TV가 없다. 안내해 준 직원에게 물었다. 호텔의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직원은 언제 물어볼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며 한국어로 대답한다. "호텔에 계시는 동안에는 정말 과거의 베트남 궁궐에 들어온 것 같이 지내셔야 합니다. 그래서 TV도 없습니다. 모든 방에 TV가 없고, 심지어 직원들이 지내는 방에도 없습니다. 하하하. 느긋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즐기세요." 호텔 직원 얘기처럼 과거로 여행을 온 것 같다. 저녁이 되면 산속의 호텔에서는 별이 보이고, 방에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과 물소리만 들리는 공간이 된다. 아!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개구리 소리도 마찬가지다.


방에서 짐을 풀고 잠깐 누웠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호텔이 깊은 산속에 있어서 근처에는 별다른 식당도 없다. 모든 것을 호텔에서 해결해야 한다. 직원 얘기로는 여기서 반년씩 머무는 유럽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이틀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호텔 식당(출처: 호텔 페이스북)


방에서 식당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5분 정도 걸렸다. 약간 늦은 점심이었기 때문에 식당까지 후다닥 뛰듯이 걸어갔다. 나무로 된 길고 예쁜 복도를 지나야 하고, 사진 찍기 예쁜 카페와 패션 잡지사에서 종종 와서 촬영한다는 계단들을 지나야 한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호텔을 구경하면서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고 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별로 보지도 않는데, 다신 못 올 곳인 것처럼 번갈아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진들은 그저 내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 지우기도 아까운데, 다시 보지도 않는다.


식당가는길에 있는 포토 스팟과 카페(출처: 호텔 페이스북)


밥도 먹었고, 이제 배부르니까 수영장도 가봐야지. 같이 따라온 아들 녀석은 아까부터 계속 수영장 얘기만 한다. 수영장은 실내가 아니라 실외 수영장이다. 오후가 되니까 수영장에 들어가기가 조금 쌀쌀한 것 같다. 아마 산속에 있는 호텔이라 그런가 보다. 엄청 넓은 정사각형 모양의 수영장이다. 호텔에 있는 수영장이라기보다는 산속의 넓은 계곡 같은 느낌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호텔의 실외수영장(출처: 호텔 페이스북)


짧은 수영을 마치고 나서, 우리 가족은 넓은 호텔을 다시 한 바퀴 둘러보았다. 호텔 안에 말도 있다. 돈을 내면 탈 수 있다고 하는데, 내일 한번 타보기로 했다. 이제 날이 어둑해진다. 저녁에 사진을 찍으니 느낌이 또 다르다.


"어때? 여기 너무 예쁘지? 다음엔 형이랑 같이 와야 되겠다." 잠 자기 전, 욕조 옆에 있는 소파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으며 둘째 아들에게 물었다.


"엉. 여기 대박 좋네. 근데 형은 다음에도 안 올걸?"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아놓고 욕조와 소파를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이 신라면 큰사발 뚜껑을 따며 대답한다.


"형 없어서 심심하지 않아? 여기 TV도 없잖아?"


"아니, 와이파이 되니까 괜찮아."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내일은 산에 갈 거니까 라면 먹고 일찍 자야 돼." 아들에게 말했다.


"산에 가면 뭐 있어? 오랜만에 등산하는 거라 완전 좋다." 아들이 등산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에 갈 때마다 산에 꼭 간다. 내일 등산에 대한 기대로 들떠서 묻는 것 같다.


"아니, 근데...... 그 산이 여기서 케이블카 타고 가는 거야. 케이블카 타면 정상까지 30분 정도 걸린다던데."


"아! 케이블카야?" 조금 실망하는 말투다.


아들 녀석을 재우고, 나는 와이프와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미리 식당에서 와인도 공수받아 놓았다. 웰컴 과일도 조금 남겨 두었고, 아까 잠깐 나가서 과자도 좀 사 두었다.


'다음엔 첫째도 같이 오면 좋겠다.'


출처: 호텔 페이스북


*당시에 호텔에서 찍었던 사진들에는 거의 가족들이 나와있어서 호텔 페이스북에 있는 사진들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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