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을 웃음으로
<돈 워리>는 미국의 유명 카툰 작가인 존 캘러한(John Callahan)에 대한 영화다. 존 캘러한을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가 시작하며 스스로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자신은 생모에 대해 세 가지밖에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생모에 대해 알고 있는 세 가지를 설명한다. 생모에 대해 ‘아일랜드계 미국인’, ‘빨간 머리’, ‘학교 교사’라고 설명한 뒤, 그는 다시 번복하며 생모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하나를 옅은 실소와 함께 설명한다.
‘나를 원치 않았어요.’
13살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존은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술을 사러 뛰쳐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파티에 간 존은 그곳에서 만난 덱스터(잭 블랙)와 함께 끊임없이 술을 들이켠다. 잔뜩 취한 그 둘은 다른 파티로 이동하기 위해 핸들을 잡고야 만다. 덱스터가 술에 취해 운전하는 차는 이상하리만치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존의 목소리로 이후를 설명한다. “가로등을 출구로 잘못 보고 시속 140km로 가로등과 충돌했어요.” 그리고 존은 가슴 아래로 모두 마비가 되어버리게 된다.
암담한 상황에 놓인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다시 술을 들이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고 알코올 중독 치료소로 향한다. <돈 워리>는 집단 치료를 받고 있는 존과 사고 이후로도 처지를 비관하며 술을 들이켜는 존을 교차로 보여준다. 이는 마치 번개를 맞는 것처럼 극적인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도니의 대사를 그대로 반영한 것처럼 존이 단숨에 개과천선하게 되도록 하지 않는다. <돈 워리>는 존이 단숨에 변화하기보다는 삶은 매 순간의 고통에 맞서 이겨내려는 것이라는 대사를 따라간다. 영화는 교차편집을 통해 존의 결핍과 치료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재생시킨다. 그리고 존의 삶은 교차되고 반복되는 결핍과 치료 속에서 매 순간 투쟁한다. 사람은 단숨에 바뀌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싸움의 승리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임을 영화는 말한다. 비록 그 성장이 아주 보잘것없는 성장이라도 말이다.
<돈 워리>는 극적인 변화라는 신파적 요소를 포기하고 대신 다양한 결을 지닌 인물들을 통해 존의 유머가 지닌 희화성의 매력을 말하고자 한다. 존이 다니는 알코올 중독 집단 치료소에는 동성애자인 도니와 더불어 흑인 동성애자 시인, 동성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호모포비아,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과 심장병을 가진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사회적으로 소수자 혹은 가해자로 표현되곤 하는 이들은 존 캘러한의 만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존 캘러한의 만화는 동성애, 종교, 인종, 장애처럼 예민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면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드러내 이를 희화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kkk단이 서로 건조되고 뽀송뽀송한 침대 시트가 좋지 않으냐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장님이 점자로 벽에 낙서를 하고, 버려진 휠체어를 보고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카우보이들처럼 사회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상들을 다루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유머를 외친다. 그리고 <돈 워리>는 자칫 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적인 유머처럼 보일 수 있는 그의 만화에 대해 변호를 시도한다.
존이 자신의 알코올 중독의 시작에 대해서 다른 동료들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불구가 되어버려서라는 그의 말은 핑계라는 대답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자신의 과거가 불우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가 술에 중독되고, 술에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는 다른 동료들의 말이 날카롭게 그를 찌른다. 동료들은 그의 태도가 그의 불우했던 과거를 방패로 일종의 자기 연민이고, 그것은 중독을 멈추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기 방어를 위한 자기 연민은 결코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만화가 직설적이고 거칠게 묘사되는 것은 이처럼 자기 연민을 피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존의 만화에 존은 자신이 휠체어에 탄 장애인임을 숨기지도, 그것으로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그의 만화에서 그는 오롯이 휠체어에 탄 장애인으로 떳떳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결핍을 숨기지 않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태도는 용감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