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어>였다. 5시부터 7시까지 파리에서의 2시간 동안 클레어라는 인물이 겪는 일상을 담아낸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어>와의 첫 만남은 다른 누벨바그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어떤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그 외에도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 히피 문화, 흑인 운동, 일상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룸과 동시에 보고 있는 이에게 건네는 따스한 온기가 있었다. 그것이 그의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줄곳 함께하는 고양이의 평온함과 사랑스러움을 닮았다. 자신이 바라본 영감의 소재에게 따듯한 시선으로 다듬는 그의 예술방식은 자신에게 뻗어나간다. 그리고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만들어졌다.
예술은 일상에 자신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곳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분노하는 자, 버려진 자, 사랑하는 자 등 다양한 결을 가진 자들이 그를 걸쳐가고 이후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미소는 아녜스 바르다의 미소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영감에게 미소를 담아내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자신을 창작자가 아닌 영감의 원천으로 위치를 바꾼다.
그는 영화를 시작함에 있어 간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자신에 말에 부응하듯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 자신의 과거 작품들과 행보를 복기하며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예술의 과정을 영감-창작-공유라고 설명하는 그의 말처럼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자신의 과거에게 영감을 받고 다큐멘터리로 창작해 나간다. 바르다라는 영감을 아녜스가 창작해나간다.
영화의 시작, 바르다는 무대에 앉아있고 그를 많은 관객들이 보고 있다. 마치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그 장면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보는 관객을 그곳에 함께하도록 한다. 스크린에 바르다가 앉아있고 아녜스는 앉아있는 바르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관객석에 앉아 바르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아녜스는 조용히 물러간다. 자신을 열어보면 해변이 보일 것이라고 말한 그의 말처럼 그는 해변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이제 바르다를 이야기해줄 아녜스를 볼 수 없지만 아녜스가 말한 바르다는 영화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