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안 Nov 03. 2019

사랑의 영화

낭트의 자코

 스크린에 바다가 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바다 옆으로 한 남자가 누워있다. 카메라는 찬찬히 바다에서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다가간다. 그의 이름은 자크 드미로 누벨바그의 거장 중 한 명이자 아녜스 바르다의 연인이다. 카메라는 그의 굴곡진 살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다가간다. 아녜스 바르다는 사랑에 대한 시를 읊으며 아주 가깝고 가깝게 피부의 결이 자세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다. 카메라는 희끗해진 머리칼, 깊은 골이 생긴 주름들, 푸른색의 그의 눈까지 아주 자세히, 그리고 찬찬히 훑어간다. 영화 내내 따듯한 기운이 사랑하는 사람이 부르는 사랑의 시처럼 아름답게 드리운다.


아이

 자크 드미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영감의 원천이라 설명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의 풍경은 <쉘부르의 우산>에서 남자 주인공의 직장으로 등장하고, 자신이 좋아했던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쓴 공주의 인형극 이야기는 <당나귀 공주>로 재탄생된다. 그리고 <낭트의 자코>는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이 영화로 창조되는 과정을 실재 자크 드미의 영화를 인용하며 기억과 작품을 교차로 보여준다.



 어머니는 자크를 자코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자주 자코와 그의 동생을 데리고 영화관이나 인형극을 보았다. 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고 자코는 영화와 노래를 들으며 점차 성장해나갔다. 그런 자코의 어린 시절은 훗날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까닭이 되었다.


소년

 자코가 소년 즈음이 되었을 때는 세계 2차 대전의 기운이 점차 올라오다 자코의 일상을 뒤엎어버리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진격해오는 독일군을 피해 도망을 갔고, 어느새 동네를 점령한 독일군들이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게 된다. 또한 연합군이 독일을 제압하기 위해 낭트에 쏟아낸 폭탄의 처참함은 자코에게 폭력의 끔찍함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자코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에게 구한 영사기와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필름을 통해 자코는 혼자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필름을 물로 씻어 투명해진 필름에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려 탄생한 그의 첫 작품은 핑크색 비행기가 떨어뜨리는 폭탄이었다. 자코는 집에 서랍장 한쪽을 개조해 만든 작은 영화관을 통해 가족들 앞에서 자신이 만든 그림 영화를 상영한다. <낭트의 자코>는 영사기 옆에서 상영되는 자신의 영화를 설렘과 행복감이 담긴 자코의 눈을 보여준다. 자코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했는지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자코는 집에 있던 잡동사니를 팔아 겨우 구한 아마추어용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어가기 시작한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영화 입문서로 전문용어들에 대해서 혼자 배워가기 시작하고 친구들을 포섭해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완성된 영화의 필름은 조리개를 조절할 줄 몰랐던 탓에 하얗게 나와 못쓰게 되었지만, 이를 통해 자코는 자신의 부족함을 체감하고 전문적으로 배워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영화를 배우길 반대했고, 어쩔 수 없이 기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청년

 기술학교에 들어간 자코는 멀어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작은 다락방에서 키워나가고 있었다. 다락방에서 자신이 만든 종이 인형을 통해 스탑모션 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렇게 자코는 점차 다락방이라는 작은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사랑받지 못한 애칭은 더 이상 애칭이 아니기에 자코는 점차 자크가 되어갔다.



 자크는 기술학교에서 기술을 배웠지만 신경은 온통 영화에 빠져있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고, 영화 기술에 대한 지식도 많이 풍부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꿈을 반대했고, 그럴수록 점차 자크는 다락방으로 자신을 숨겼다. 하지만 다락방에서 만든 그의 영화가 우연히 사람과 사람을 건너서 유명 영화감독의 귀에까지 닿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크 드미는 영화를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재



 카메라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자크 드미의 늙은 주름의 결을 따라 훑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영화로 만든 <낭트의 자코>의 카메라는 언제나 자크 드미의 삶을 응시한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저편으로 가기 전 그의 삶을 필름의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아녜스 바르다는 카메라를 들고 그의 얼굴을 찍어간다. <낭트의 자코>가 이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자크 드미의 삶이 아름다운 것 이전에 그의 삶을 찍기 위해 움직이는 카메라에 있다. 누군가가 <낭트의 자코>를 가리켜 로맨스 영화라 말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증표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과 시선, 위로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