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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자 Apr 06. 2022

11. 잠시 죽어있으면 안 될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상용비자 만료 기간까지 열흘 정도 남기고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분하지만 그렇다고 면접을 보러 다니기에는 코로나 때문에 그랩 택시 운행도 안 해서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내 인생 진짜 어떡하지.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을 만났다. 유학 컨설팅을 하시는 분이라 내 사정을 듣고 기본급 없이 인센티브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한국이라면 어떤 업무인지 자세히 물어라도 봤을 텐데, 비자 만료일을 코앞에 두고 거처도 없이 딸랑 케리어 하나만 가지고 있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베트남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코로나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외국인을 받아주는 숙박시설을 구하기 어려웠고, 비자발급도 중단된 상태였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베트남에서 어떻게 요리조리 알아보고 편법을 쓴다면 뭐라도 하겠지만, 타지에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온갖 더러운 상황을 마주하기 싫어서 한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비행 편이 적어서 항공편 가격도 몇 배로 뛴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지불해줬다. 하지만 밖에는 가게 영업도 택시 운행도 다 정지되었기 때문에 혼자서 공항까지 갈 방법이 없었다. 회사에서도 나몰라라 했다. 여행사와 픽업 업체에 아무리 연락해봐도 베트남 정부 지침으로 아무것도 운영을 할 수 없어서 직원들마저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대답뿐이었다. 정말 되는 것 하나 없는 베트남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지고 이대로 비자 없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먼 곳까지 일하러 와서 이런 처참한 상황을 겪으니 서글펐다. 일은 무슨 빨리 집에 가서 엄마가 차려준 밥이나 먹고 싶었다. 


회사에서 준 비행기표를 날리고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공항으로 가는 차량을 구해야 했다. 진짜 정 안 되면 30킬로짜리 캐리어를 안고 오토바이 타고 갈 생각도 했다. 그전에 우선 격리했던 호텔로 찾아가 리셉션 직원에게 부탁해보았다. 다행히 공항까지 가는 택시비 5배를 불러 흥정에 성공했다. 그대... 나의 구원이시여...


한국으로 가는 비행 편은 일주일에 딱 2개 있었다. 다른 국가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공항에는 사람들이 끝을 모르게 줄지어 서있었다. 다들 무슨 이유로 이 시국에 비행기에 오르는 것일까. 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일까.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인지 혼자서 이름도 모를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보딩 후 기내에는 한국인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 정말 그들이 한국으로 가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다문화 가정인 걸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방호복을 입은 사람도 마스크를 두 장 겹쳐 쓴 사람도 있어서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느껴졌다. 마스크를 벗기 싫어서 기내식은 안 먹으려고 했는데 음식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서 허겁지겁 먹었다. 지난번 공항에서 쫄쫄 굶으며 하루 종일 대기했던 것이 생각나 배가 불러도 일단 음식을 배어 넣어 두자 싶었지. 


자정에 출발한 비행기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베트남 해외 입국자의 수속 절차와 상당히 비교되는 한국의 빠른 시스템에 감동을 느끼며 뽕이 차올랐다. 인천공항에서 해외 입국자 전용 버스를 타고.. 또 전용 KTX를 타고, 코로나 검사도 하며, 오빠가 차 타고 데리러 와서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아, 집이 천국이구나.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8첩 반찬으로 밥을 차려 주었다. 그 많은 반찬을 양념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짐을 풀지도 않을 채 16시간을 죽은 듯이 잤다. 그냥 이대로 편하게 며칠 죽어있다 깨어나면 안 될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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