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도약
저의 베트남 취업기가 끝난 줄 아셨나요?
지금은 힘도 열정도 다 빠진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지만, 이때만 해도 객기 넘치는 20대 중반이었기에 또다시 베트남에 갔습니다. 예, 또 지옥의 구렁텅이로 들어간 거죠. 지금 생각해 봐도 거기에 꿀이라도 발라났나 싶을 정도로 왜 자꾸 덤벼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마지막 글 업로드 후 이후의 베트남 경험담을 쓸지 말지 고민을 오랜 기간 했었어요. 베트남을 추억하는 일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고,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사람들과 얽힌 불화를 글감으로 삼는 게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제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추억이 미화됐기에 다시 용기 내어 끄적여봅니다. 필력은 예전만 못하겠지만 부디 형편없는 글이라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꾸벅).
2번째 자가격리
베트남에서 돌아와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했다. 자가격리자를 위한 구호물품을 한 아름 받았는데 이런 선물과 휴식을 또 받을 수만 있다면 격리는 두 팔 벌려 환영이다. 너무나 긴 여정을 거치고 집에 돌아온 터라 며칠 동안 잠만 자야지 싶었는데, 젊어서 그런가 16시간만 자도 활력이 돋았다. 귀여운 강아지와 가족들, 웹툰과 넷플릭스가 끊김 없이 나올 만큼 빠른 인터넷 속도, 버튼 한 번에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커피머신,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까지- 베트남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21세기 문명을 누리는 것에 정말이지 황홀했다. 베트남에 가기 전까지는 내가 매일 누리던 것들인데 이전에는 이 감사함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따뜻하고, 안락하고, 포근하고, 편리하고, 감사하고, 황홀하기까지 하며 일상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 행복한 2주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오빠의 권유로 컴활 공부를 시작했다. 컴퓨터에 관해 잘 몰라서 필기시험공부가 좀 어렵긴 했지만 기출 5개를 달달 외우고 합격. 어쩌구저쩌구(시험썰은 생략) 아무튼 코로나 때문에 시험이 연달아 취소되었던 탓에 실기시험은 티켓팅도 장난 아니어서 합격을 못했다는 결론.
그렇게 공부하다 격리 기간은 끝이 나고 어디로 취업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토익 스피킹 학원에 다니며 목표도 없이 남들 하는 건 다 따라 하려고 했다. 그러다 집 근처 구청에서 청년 인력을 구한다는 공고에 바로 지원했다. 면접도 없이 붙었다. 집에서 취업하라 닦달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쉬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했는데, 3개월짜리 단기 불안해소제를 얻은 느낌이었다. 내가 얻은 일자리는 재활용 단가 조사 및 홍보를 하는 일이었다. 관할 구의 모든 아파트를 방문해 재활용 단가를 파악하고, 올바른 재활용 분리배출을 홍보하는 것이다. 팀원은 총 다섯 명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베트남에서 늘 아저씨들과 일하다가 또래들과 일하게 되니 사기가 올랐다.
또래 팀원 중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나뿐이어서 자연스럽게 기사 겸 팀장이 되었다. 외향적이고 어른들과 넉살 좋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라 내가 팀장으로서 주도해서 일하는 것도 꽤나 재밌었다. 우리는 주무관님에게 오늘 일정이 많아서 오후에 복귀한다고 말씀드리고 아침부터 나가서 오전에 일을 빨리 해치웠고, 오후에는 맛집탐방을 하고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놀았다. 그러고는 복귀해서 주무관님에게 일을 너무 잘해서 든든하다는 말을 들었고 팀원들도 외근을 즐거워했다. 내 기름값과 외식비를 밖에서 다 쓰고 오면 사실 받을 월급보다 더 썼지만, 나름 보람 있었고 즐거웠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가 나는 또 저질러버렸다. 베트남행 면접을 또 본 것이다. 지난번 베트남 연수 과정에 있을 때 어학원 원장이 그랬다. 대우 재단에서 하는 연수가 아닌 다른 소속 연수생들은 영어랑 베트남어를 못하고 형편없다고. 그런 말을 들으니 대우 연수생들은 스펙이 출중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서 취업이 잘 되는 거라 생각을 했다. 베트남 취업 성공 루트는 "대우(GYBM) 프로그램"이라고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대우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을 하고 서류 합격을 했을 땐 나름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이게 뭣이라고). 구청에는 미리 말씀을 드리고 면접에 가기 위해 정장과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갔다. 아침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전날 숙소를 잡고 올라갔다. 잠들기 전, 내가 여태 이 고생까지 했는데 베트남에서 꼭 취업하고 말 거라고 다짐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옳은 결정을 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다음날, 면접은 아침부터 저녁이 되기 전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