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 = ‘나도 고발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고발하며,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 간 연대를 위해 진행된 운동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하비 와이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확산됐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참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그들의 용기를 지지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사회가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청 내부 성추문 사건 폭로로 확산된 우리나라 미투 운동은 여전히 핫한 이슈다. 검찰청 내부의 폭로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이후 예술계와 종교계, 정치권까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문화를 여실히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마을온예술은 미투 운동에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조합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경순 : 최근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다들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혜강 : 사람마다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죠. 여자가 모텔을 따라 갔다면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많이 놀랐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권력 관계가 얽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지요.
현숙 : 그 문제는 당사자 둘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문제 아닐까요.
가희 : 누군가가 모텔에 가자고 했을 때, 정말로 회의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숙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텔이 상징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혜강 : 자기표현에 미숙한 사람들이 있어요. 거절을 못하거나 수동적인 사람도 있고요. 자기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예요.
경순 : 우리나라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비춰지곤 하는데 사회 분위기가 ‘피해자 스스로 내가 잘못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막상 위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잖아요. 권력 관계가 얽혀 있을 수도 있고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우선적으로 공감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현숙 : 여성들이 모텔을 따라갔다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그 여자 역시도 어느 정도의 목적성이 있지 않았냐는 거죠.
혜강 : 서지현 검사가 장례식장에서 상사가 엉덩이를 더듬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은 그 분이 판단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 거예요. 왜 가만히 있어야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거죠. 나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 상황을 견딜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죠. 사실 그런 것들을 거부했을 때 그 사람의 내일을 보장받을 수가 없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예전에 국악계 안에서도 스승이 어린 후배, 제자들을 예뻐한다고 몸을 만지고 더듬는데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 이후 활동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현숙 : 스승들이 오라고 했을 때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 그 순간 따라가는 사람은 선택을 하게 되는 거죠. 알고 간 거잖아요.
경순 :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온전하고 정당한 선택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숨겨진 힘과 상황들이 있었고 개인이 그것들을 깨기는 어렵지 않을까 해요.
가희 : 대학교 같은 경우 피해 사례를 알면서도 서로 모른 척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같은 교수끼리도 그렇고요. 학교 내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를 원하지도 않고 조용하게 처리하기를 원하잖아요. 또 피해자들을 이해하기보다 ‘이유가 있으니 그랬겠지.’라는 시선, 피해자에게 원인이 있다는 시선도 문제인 것 같아요.
경순 : 기사를 보면서 결국 방관했던 사람들도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 또한 피해자들의 소리를 의심 없이 듣기보다 의심부터 했던 적이 더 많지 않았나싶어요.
현숙 : 최근 이윤택 연출가 문제가 커지면서 연극계가 들썩거리잖아요. 그 이후 주변 사람들이 연극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도 피해자가 아닐까’ 그렇게들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경순 : 네, 연극뿐 아니라 예술계 안에서 성범죄가 유독 심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데 사실 부당한 성범죄는 정치, 대학, 회사 어느 곳에서도 만연하지 않을까요. 다만 연극계에서 미투 운동이 빨리 일어난 거죠. 그렇게 보면 예술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내서 말하고 미투 운동에 참여하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지요.
경순 : 미투 운동이 서지현 검사에 이어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이어지면서 문단, 연극, 영화, 이제 정치권까지 확산되고 있어요. 어떤 경우는 아주 구체적인 사례까지 보도가 되니깐 ‘더 이상 듣기 싫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차’ 싶었어요. 듣기 싫은 이야기, 보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도 직면해야겠구나. 이걸 견뎌야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혜강 :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 탓인지 여성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기 보다는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한 것 같아요. 그런 탓에 수동적인 여성이 많고요. 80년대 악기 연주를 전수받으러 가면 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을 가르칠 때 몸을 만지는 등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후배들 가운데 불쾌함을 말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사회적으로 이름이 나 있으니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현숙 : 저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자도 남자와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생기면 남자들도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요.
가희 : 얼마 전 대학가에서도 문제가 많았잖아요. 높은 수능 점수로 이름 난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두고 성적 대상으로 삼아 대화를 했죠. 그 내용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남자는 다 그래’라고 그것이 마치 남성의 속성, 천성인 것처럼 말하는데 저는 우리나라가 더 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남자들의 그런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 문화가 문제인 것 같아요.
현숙 : 얼마 전에 딸 초등학교 엄마들 모임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요. 딸 친구 커플 중 하나가 헤어졌대요. 우연히 남자 친구 핸드폰에서 톡을 보게 됐는데 자기를 두고 다른 남자친구들과 성적인 농담을 한 거예요. 헤어지자고 하니까 ‘남자들끼리는 그런 대화에 동조하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 면서 울더라는 거예요. 막상 딸의 친구는 헤어졌는데, 엄마들은 “아직 얘니까 그렇지 뭐” 하고 간단하게 넘기더라구요. 그게 더 충격이었어요.
가희 : 어릴 때부터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어서 그게 문제인지조차 의식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경순 : 미투 운동이 잘 진행된다며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의 경우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겠죠.
혜강 : 남자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여성을 동료로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성들 또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미투 운동을 통해 그런 것들을 배우게 되는 거예요. 미투 운동이 이런 생각의 변화의 기회가 되면 좋겠네요.
경순 : 맞아요. 자기표현에 서툴고 수동적인 여성,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 스스로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례와 사회적 경험들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사실 미투 운동은 몇 해 전에도 있었는데 이렇게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어요. 저는 이번 기회가 미투 운동에 그칠까봐 걱정돼요.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숙 : 법적인 체제도 만들어져야하죠.
가희 : 회식문화가 줄어들거나 달라지면 좋겠어요.
혜강 : 그렇죠. 우리나라는 2차로 노래방에 가는 것은 기본이고 단란주점도 쉽게 가니까요. 지금은 적응을 했지만 오랜 시간 해외에 있다고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내가 왜 이상한 사람들과 춤을 춰야하지 그랬어요. 요즘도 그 문화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요.
현숙 : 변화는 서서히 이뤄지는 것 같아요. 저희 형부는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 술보다는 뮤지컬, 연극 관람을 하고 있는데 회사 내 사람들 중 일부는 조직문화가 술도 마시고 하면서 좋아지는 건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의 제기를 하기도 한대요.
가희 : 회식을 하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도 하게 되잖아요.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니깐 빠지기도 어려워요.
혜강 : 요즘에는 벌써 달라진 게 느껴져요. 남자 동료들도 만나면 예전 같지가 않아요. 농담도 조심하고요.
현숙 :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술자리 문화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가희 : 남성연대 같은 사례를 보면 남성들이 그 동안 남성으로서 누려왔던 권위가 흔들릴까봐 역차별 논리를 내세우면서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인정하지 안잖아요. 잘못된 피해의식이나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등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것도 큰 문제에요. 나만 피해보고 손해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즉 스스로 피해자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의 정의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가 심각한 것 같아요.
현숙 : 아들 녀석이 학교 교복을 입기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되면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불쑥 ‘나는 하기 싫어도 참고 했는데 왜 후배들은 편해야 해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가희 : 저도 며칠 전에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요. 고대부중이 교복을 바꾼대요. 그런데 아이들이 새 교복 후보 중에서 본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교복에다가 투표를 했다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후배들이 본인들 보다 예쁜 교복을 입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런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아요. 후배인데, 후배가 나보다 좋은 혜택을 받는 게 싫다는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혜강 :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많잖아요. 학습을 통해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넓은 세계를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조금씩 타인을 인정을 하는 걸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희 :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현숙 : 저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좋더라고요. 너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지지와 표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위드유로 미투가 더욱 의미가 있어지는 것 같아요.
혜강 : 학교에서는 대학원생 사이에서 피해자가 많아요. 논문 통과를 해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깐 대학 교수와 대학원생들 간의 권력구조는 아주 완고하죠.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피해 사례가 있으면 실명이라도 좋으니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보이지 않게 위드유를 하겠다는 입장이에요. 학교 대자보를 통해 알리고, 그런 사례를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거죠.
현숙 : 위드유가 중요한 것은 이런 것 까지 이야기해도 되나하는 애매한 사례가 있잖아요. 피해자 스스로 판단을 유보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들이요. 그런 사례를 공유하면서 ‘나도 이야기할 수 있구나. 이런 경험도 미투 운동에 해당이 되는 구나’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희 : 이야기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나한테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막연할 것 같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연대했던 사례들이 많고 함께할 수 있는 단체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위드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성단체들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성북구 내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한다면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혜강 : 위드유하는 모임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겠죠. 직접 참여하는 것만큼 강력한 표현은 없는 것 같아요. 페이스북, 카카오톡처럼 SNS를 활용할 수도 있고요.
경순 : 네, 사실 저는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라서 뭔가 미투 운동에 관련해서는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깐 내가 피해자를 인식하는 방식에서부터 나도 모르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는 각자가 스스로 의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 같고요. 나아가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표현을 하는 거예요.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용기와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지금의 행동이 아주 멋지고 위대한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가희 : 네, 개인적으로 SNS를 잘 안하다 보니까 참여가 한정적인 것 같아서 가능한 직접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관련 행사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누기도 하고요.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현숙 : 내가 직접 집회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참여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족, 지인들과 미투 운동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위드유의 시작이라고 봐요. 참여의 방식과 형태는 다양하고, 참여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니깐 미안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혜강 :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얼마나 강해요. 그 에너지를 건강하게 사용하면 좋겠어요.
날짜 : 3월 1일 호박이넝쿨책(아리랑시장 부근 서점)
참석자 : 김가희, 남경순, 황현숙, 혜강
정리 : 남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