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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을온예술 Mar 25. 2018

덴마크 에프터스콜레를 다녀와서

진로 교육,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

지난 20여 년 동안 ‘삶을 위한 교육’을 시도했던 대안교육의 성과와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려는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의 의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오디세이학교. 2015년부터 3년간의 시범사업 기간을 거쳐, 2018년 정식 학교로 개교하였습니다. 올 겨울, 오디세이 학교의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와 국제교류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학생 8명 그리고 교사 2명과 함께 국제교류를 만들어 가는 첫 멤버로 합류하였습니다. 2018년 1월 29일부터 2월 8일까지 12일간의 덴마크 교류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과 나눠보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덴마크의 비결     


덴마크를 보통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걱정이 없는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전 세계 국가들의 행복도 조사를 하면 거의 매번 1~5등을 하는 나라거든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얘기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를 직접 보고 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강력한 복지시스템과 그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사회문화에 있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료여서 큰돈이 들어가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 심지어 성인이 되면 직장을 갖기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살면 30만 원 내외, 부모에게서 독립했으면 100만 원 내외(부모에 수입에 따라 달라집니다)의 용돈을 국가에서 줍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20대들은 거의 다 독립을 합니다. 일을 하다가 실직을 하게 되더라도(덴마크는 해고가 쉬운 나라입니다) 계속해서 다른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만 하면 국가에서 전에 받던 월급의 70~90%를 2년간 지원해 줍니다. 이런 복지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돈을 버는 일과 큰돈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이 살더라고요.


국가가 개인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습니다. 또한 농부를 하든, 변호사를 하든, 택시운전사를 하든, 공무원을 하든 직업의 좋고 나쁨이 없어요.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1~2년 동안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에프터스콜레), 고등학교를 마치고 1~2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갭이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언제든 4~10개월 동안 자신의 향후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성인학교(폴케호이스콜레)가 있습니다. 진로를 정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걸쳐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전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을 만든 핵심가치 'Togetherness'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라니! 덴마크의 복지시스템과 사회문화가 하루아침에 짠~ 하고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복지 시스템이 정착되기까지 약 15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주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수입의 평균 50% 가까이를 세금으로 냅니다(한국은 평균 약 25%). 둘째, 인구가 적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10분의 1 정도(약 570만 명)입니다. 셋째, 덴마크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Togetherness’(연대감 또는 공동체성)입니다.


덴마크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Togetherness’라고 대답합니다. 내가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쉽게 말하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 나가는 것’입니다. 덴마크는 아주 긴 시간에 걸쳐서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을 늘려 나갔고, 최종적으로 전 국민을 위해 내 월급의 절반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게 된 거죠.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이해득실에 얽매이지 않고 나, 우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보다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해온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내는 세금과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을 마트에서 물건 사듯이 비교하고 쟀다면, 덴마크의 복지시스템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 “너 세금 두 배로 내고 복지시스템 잘 되는 게 좋아? 아니면 복지는 부족하더라도 세금 적게 내는 게 좋아?” 이런 질문을 한다면 150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어리석은 질문인 것이죠.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청소년 진로교육의 방향     


덴마크와 달리, 한국사회는 돈의 소유 여부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청소년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혹은 안정적으로 버는 길을 찾아 ‘좋은 대학-대기업’, ‘전문직’, ‘장사 대박’, ‘공무원’ 등을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길은 소수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의 의도는 그렇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이 결국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다”로 바뀌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거든요.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청소년 시기 때 꼭 갖춰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덴마크 사회의 핵심 가치인 ‘togetherness’에서 얘기하듯이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나와 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위한 지성, 나를 표현하고 다른 것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 각자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갈등을 잘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사회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성, 감성, 사회성을 키우는 활동이라면 그 활동이 무엇이든 진로 교육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2020년까지 향후 5년 동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총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반면 로봇을 비롯한 신규 기술이 새롭게 만들어낼 일자리는 200만 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직업을 찾는 일은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써 ‘직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하는, 살아있는 진로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꿈꿉니다.     




글. 김준한 jurari312@gmail.com

대학생 때 반값등록금 운동을 하며 보다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교육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 비영리 민간단체 교육공간 민들레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음. (www.flyingmindle.or.kr)

-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진 서울시교육청 고교자유학년제 ‘오디세이학교’를 2016년부터 담당하고 있음.


*에프터스콜레

덴마크의 기숙학교이다. 9, 10학년 학생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선택에 따라 2년) 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의 학교를 선택하여, 여유를 가지고 삶과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약 20%의 덴마크 청소년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매년 학생의 수가 증가하기도 했다. 2017년 현재 전국에서 2만 8천 명의 학생들을 유치하며 총 245개의 학교가 있다. 에프터스콜레의 규모는 35명에서 500명으로 다양하지만 평균 100~120명이다. 대부분 학교는 시골 지역이나 지방 도시 근처에 위치하여 있으며 소수의 학교만이 도시에 있다.



*오디세이학교

서울시의 일반고 1학년 학생들이 1년 동안 삶의 방향과 가치를 찾는 배움을 하는 교육과정으로, 교육청과 3개의 대안교육기관이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8년 현재 90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고1 학력이 인정이 되는 과정으로, 1년을 마친 뒤 원래 일반학교의 2학년으로 복교할 수 있다.(선택에 따라 1학년을 다시 다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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