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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Oct 15. 2021

순간을 간직하는 방법

[LIFE]

이미지와 영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감각은 시각인듯하다.

사진으로 남겨야만 기억되는 것처럼

순간순간 참 많이도 찍는다.

-

사실 인생의 모든 장면을 다 남길 필요는 없는데.

-

사진을 참 쉽게 많이 찍다 보니

소중한 한 장면만을 뽑아 간직하기란

귀찮고 어려운 일이 되었고,

사진 찍기가 어려웠던 시대보다

뽑아 간직하는 사진 수는 더 적어졌다.

-

어느 날 꺼져버린 핸드폰이 켜지질 않았다.

그 안에 갇힌 수없이 많은 나의 사진과 메모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

내게 남은 건 허무함 뿐이었다.

-

소중한 것들은 소중한만큼 시간을 들여 지키면 어떨까.

시간을 들여 사진을 고르고

시간을 들여 사진을 뽑고

펜을 들어 메모를 적어둔다면

-

그 소중한 장면들의 여운이

조금은 더 오래, 내 곁에 머물지 않을까.



핸드폰을 바꾸러 갔다가 새로 나오는 핸드폰들의 저장용량들이 이전보다 배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점점 저장용량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많은 사진을 찍고, 많은 앱들을 다운로드한다. 핸드폰 용량이 커졌음에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었고,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클라우드의 사용자가 되었다.


메모리 대용량 시대, 우리의 기록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진을 정리할 새 없이 매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우리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다. 사실 찍힌 사진 중 나중에 다시 볼만큼 의미 있는 사진은 별로 없는데 한 편에서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린피스 ClickClean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들의 데이터 저장을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 센터가 필요하며, 그 전력 생산을 위해 석탄이 사용되어 지구온난화 가속화를 초래하고 있다.)


매 순간을 기록할 마냥 찍어대는 인증샷들과 이제는 음식을 먹기 전 치루어야 하는 의식처럼 돼버린 음식 사진 찍기.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해온 습관들이 우리가 순간을 향유할 여유를 없애고, 우리 삶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나의 행동이 온 지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말은 당장 습관을 바꿀 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나 또한 이런 사실을 듣고 각성하나 했다가도 다시금 지내던 대로 돌아가곤 했으니.


그러다 어느 날 핸드폰이 꺼진 후 켜지지 않았다.


그 순간 몰려오는 허무함이란. ‘모든 순간을 저장해두려다 소중한 것들까지 다 잃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기록들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며, 우리가 소중한 순간을 향유할 기회를 잃게 한다. 환경을 위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위해서도 좋지만, 조금 더 오래 소중한 장면들의 여운을 곱씹을 수 있도록 우리는 기록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다음 돌아올 계절에 입기 위해 서랍장에 잘 개어 넣는 좋은 옷들처럼 말이다.


시간을 들여 사진을 골라 저장하고,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은 뽑아두기도 하며 소중한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할 우리만의 방법들을 찾아나가면 좋겠다.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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