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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03. 2020

0 of 185, 아 둘 아빠,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사회에서의 어떤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무게

육아휴직.


엄마들이 쓰는 것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는 것도 아직은 일반적이고 당연하다기보다는 이제야 막 대중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가는 정도일 따름인데, 아빠의 육아휴직이란 그야말로 일부 선구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개척 해 가고 있는 수준인 것이 맞고,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말은 많이 해 왔지만, 솔직히 설마 내가 진짜로 육휴를 하게 될 거라고는, 회사에 얘기하던 그 순간에도 고민이랄까 믿지 못한달까 그런 상태였다.


사실 육휴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결혼과 출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변화와 어려움, 무엇보다도 집약적이고 집중적인 노동력을 요구하는 아기라는 존재 외에도 내 인생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많은 이벤트들이 너무나도 내 삶을 힘들게 만든 것이 컸다.

첫째를 얻고 나서 알게 된 아버지의 병환은 이제 2년 반의 시간을 지나 주변에서 그간 잘 버텨오셨다… 라는 말을 하는 안 좋은 상태인 데다, 아버지를 돌보느라 홀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어머니의 건강상태는 원래 있었던 간경화와 당뇨, 뇌종양 수술 후에 찾아와 점차 심해져가던 전반적인 체력 저하가 한층 더 악화되어 몇 년 사이 너무 더욱 많이 상해버린, 그런 상태다. 나와 내 와이프가 힘들까 봐 혼자서 어떻게든 해 내겠다며 입퇴원 까지도 직접 운전 혹은 고모부의 신세를 져 가면서도 내게는 끝까지 말씀 않고 버티고 계신 어머니께는, 정말이지 매번 뜨악하고 황당하며 화가 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솔직히, 그저 감사할 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회사 쪽을 보자면, 애초에 이런 구조의 산업에 있는 회사를 들어온 내가 잘못이고 그간 많았던 기회들을 제대로 성공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내가 잘못이고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이직도 안 하고 버텨 오히려 경력을 꼬아놓은 내가 잘못이지만, 그건 다 차치하고 회사 일의 질이랄까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수긴 해도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부분인 회사에서의 삶이 어떤지만을 놓고 보더라도 음... 그냥 난 정말 일복은 많고 인복은 적은 것 같다.라고만 써야겠다.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고 적어봐도, 결국 내 선택이고 내가 원한 일이다. 일이냐 가족이냐 사이에서 선택을 했다는 건데, 일은 곧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뜻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내 상황에서 휴직을 망설일 이유가 되는 '일'의 의미란 역시 '이 회사에서의 성공'이 아쉬웠다는 얘기가 되겠지. 근데,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서 내가 1~3%가량의 특히 성공하는 사람에 들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 방식이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내 위치와 이미지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 기성세대 (아 이젠 나도 이쪽일 텐데...)가 원하고 해 왔듯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며 회사에 더 맞추는 삶으로 이제야 들어간다면, 거기서 얼마나 더 달라질까? 이런 걸 정량화할 방법은 없겠다만, 가능하다 해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다지 유의미한 숫자로 나타나진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의 내 평판이나 신뢰도는, 이 휴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 아니었다 이거다.


반면 이 쪽에 있는 것들은 어떤가. 첫 번째로 2년 반을 고생한 와이프가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생했는지, 이제 며칠 조금 비슷하게 해 보면서 비로소 추측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정말이지 나의 너무한 처사였다. 예전 하나뿐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인데 이걸 쭉 혼자에게 맡겨오다시피 했으니,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는지. 약속대로 작년에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내가 휴직을 하고 둘째는 내가 키웠어야, 그나마 공평한 체험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번째로는 두 아들이 있겠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엄마가 회사에 가서 엄마와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점 빼고는. 물론 엄마가 제공하던 서비스에 비해서 좀 많이 서툴고, 애정을 바라는 것에 대해 좀 냉정하고 스스로 할 것을 요구하는 게 많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무한정의 희생과 계속되는 육아의 짐을 지울 것이 아닌 이상에야, 남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가족의 힘 그중에서도 아빠의 노력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고 두 아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는, 이제야 챙기지만 나 자신의 자존감이 있겠다. 사회의 성공을 포기하고 가족에 더 시간을 쏟는 것이 과연 자존감에 도움이 되는 일일지는 사람마다 그리고 경우마다 다르겠다만 (아들만 둘인 내 경우엔 불과 10년도 가지 않아 찾아올 것이 뻔한 대화의 단절과 아버지를 향한 적대감의 향연에 빠져, 지금의 이 선택을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란 얘기다), 그래도 지금의 내 머리로 생각하기엔 이게 더 이득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 이틀과 휴직이 시작된 사흘을 포함해 오일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저런 많은 생각과 계산과 판단과 무관하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은 떠나질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힌 잘 한 선택이 된 것은 맞다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는 참 중요한 것인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 말이다.

정답은 없을 터다. 그저 내 선택에 충실하게 노력하고, 나중에 가서 꼴사납게 후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가정을 돌보고 아들들을 돌보고 부모님을 돌보고 나를 돌보는 것만이 해야 할 일이다. 잠깐씩이라도 공부를 좀 해서 기사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게 하다니, 코로나 정말... 씡난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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