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게임하는데 도움이 안 돼!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3

너무 억울했다.

대회에서 떨어진 나는 내 실력이 아닌 환경을 탓하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오후 4시는 넘어야 끝나는 학교. 같은 클랜의 형은 자퇴를 하고 프로게이머가 되었고 나는 그만큼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대회에서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실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위안 삼을 수 있었다.


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면이 TV에 나와서 부모님,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까지 모두 보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무시하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두 대회에서 모두 떨어지고 나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게임에 도움도 안 되는 학교 따위 때려치우고 나도 자퇴생 프로게이머가 되어야겠다. 내 인생은 오직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뿐!!!!


결국 부모님께 자퇴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고, 부모님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물어보셨다.


"자퇴하면 어떻게 할 계획인데?"


나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하루 종일 게임을 연습하고 실력을 쌓아서 다시 정정당당하게(?) 대회에서 실력으로 겨뤄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나간 대회에서 떨어지고 이렇게 포기하기는 싫었다. 이런 심정을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계셨지만, 사실 자녀가 자퇴라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큰 선택을 바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셨다.


"엄마는 솔직히 걱정이야. 네가 커서 우리에게 왜 게임에 빠져 있던 어렸을 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냐고 원망을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보고 느낄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을 것에 대해서 원망하지는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는데 (역시 학창 시절에 남자는 게임으로 친해진다) 이런 친구 관계도 자연스레 끊길 가능성이 높았다. 고등학교를 게임한다고 자퇴한 친구랑 놀라고 할 엄마들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친구들도 소원해지다가 멀어질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동안 아빠가 일하느라 많이 바빠서 아들이랑 제대로 이런 얘기도 나누지 못했는데, 오늘 아빠랑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할까?"


그 날, 아빠와 둘이서 새벽까지 남자 대 남자로 나눴던 이야기들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인생을 살지, 과연 게임이 인생의 전부인지, 게임 밖의 현실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일들은 없는지, 꿈과 비전을 가진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부모님의 학창 시절 얘기들과, 나의 미래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깊은 새벽이 돼서야 대화를 끝내며 부모님과 아래와 같이 합의를 했다.


1. 한 달 동안 프로게이머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2. 프로게이머 선배들에게 진로 상담해보기




그리고 나는 한 달 동안 학교를 다니며 정말 진지하게,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 옆에서 마냥 같이 놀고 있던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꿈이 뭔지 물어봤고, 같은 클랜의 프로게이머 형들에게 연락하며 이러한 내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내가 그렇게 존경하고, 되고 싶은 선망의 꿈을 이룬 프로게이머 형들 대부분이 나의 자퇴를 극구 만류했다는 것이다.


"내가 벌써 스물일곱인데, 네가 프로게이머가 된다면 미래의 모습이 지금의 내가 아니겠냐? 군대 갔다 오니 젊은 애들을 따라갈 수가 없네. 추천할 직업은 아니야"

"한 게임에 인생을 쏟아부은 것 치고 얻은 게 크게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이 게임 (워크래프트 3) 인기도 그렇게 많은 게 아니라서 대회에서 이 종목이 사라지면 그날부터 백수 되는 거야"

"얌마, 게임도 직업이 되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 게임은 아마추어로 즐기면서 하는 게 최고야!"


내가 꿈을 꾸던 프로게이머란 직업을 먼저 이룬 사람들이 했던 말들은, 17세 소년에게 큰 충격으로 와 닿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가족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자퇴는 안 할래요"


내색은 안 하셨지만 부모님의 얼굴이 굉장히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입에서 혹여나 자퇴하겠다는 말이 나올까 봐 내심 부모님도 많이 긴장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형들이 그러는데 프로게이머는 직업이 되는 순간 이겨야 돈을 벌고 지면 스트레스받고 돈도 못 번대요. 그래서 게임을 재밌게 즐길 수 없다네요. 저는 게임을 즐기고 싶거든요"


게임은 즐기면서 하는 게 최고라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명언인 것 같다. (롤하면서 스트레스받지 말자)


나의 결정에, 부모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면 이제부터 뭐 할래?"


"음...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공부를 한번 해볼게요"


하루 종일 집에서 게임하고 피시방을 넘나들어도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해본 적 없는 부모님이시지만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내 입에서 스스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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