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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Apr 18. 2021

학교도 공부도 뒷전, 게임에 빠져 엄마 지갑 돈까지..

멀고도 험난한 자녀 교육이라는 여행

성호의 학창 시절을 말할 때, 게임 이야기가 빠질 수 있을까? 

앙꼬 없는 찐빵일 수밖에! 


처음 공부를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전까지, 성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잡아먹은 게임…… 내가 자녀 교육법에 관심을 가지고 발 벗고 나서 공부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성호의 게임 중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성호가 게임에 빠진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우연히 친구들을 따라 오락실에 간 성호는 게임에 빠져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매일 오락실로 출근해 밤늦게 집에 오는 게 일과였다.

“아드님 탓에 장사가 안 됩니다. 달랑 몇 백 원으로 종일 게임을 하니 제발 그만 좀 오게 하세요.”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성호를 찾으러 온 나를 붙잡고는 하소연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성호가 게임기를 잡으면 끝이 나질 않아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호가 게임에 유별난 재능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튼 동네 분들도 애를 밖으로 내돌리지만 말고 신경 좀 쓰라고 나를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매일 오락실에서 사는 아이를 보니 남의 자식이라도 걱정이 되셨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게임에 빠진 아이를 둔 엄마라면 한두 번 꼭 겪게 되는 일을 나도 겪게 되었다. 성호가 몰래 내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 들켰던 것이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다 들켜 안절부절못한 채 벌벌 떠는 성호를 보는 순간, 처음에는 울컥 화가 났다.


‘고작 천 원 한 장 훔치려고 부모 지갑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


수많은 밤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자식을 올바르게 키울까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구나 싶었다. 자식은 금이야 옥이야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크면 저 잘나서 큰 줄 알 뿐, 부모 속 썩이고 살기 마련이라던 시속의 말처럼 배신감마저 들었다. 다시는 나쁜 짓 못하게 따끔하게 매를 들고 싶었다.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성호를 보니 무언가 울컥 치솟는 기분이었다. 나는 목구멍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울음을 애써 삼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울컥하던 기분이 진정되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맞아, 나도 엄마 지갑에 손을 댄 적이 있었지…….’


잊고 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엄마 몰래 훔친 돈으로 어묵 사 먹고, 고무줄 사서 친구들이랑 놀고, 남은 돈을 집 돌담 사이에 숨겨 놓고는 두고두고 꺼내 쓰던, 그러면서도 엄마에게 들킬까봐 몇 날 며칠 가슴 졸이던 기억…….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컥했던 기분이 어느새 누그러져 있었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내가 돈을 훔치다 걸리면 엄마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랐었지?’


나는 성호를 보며 어릴 적의 나를 떠올렸다. 그러자 답이 나왔다. 나는 성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성호와 눈을 맞추고는 차근차근 말했다.


“돈 없으면 엄마한테 달라고 하면 되잖아. 엄마가 안 줄 것 같았어?”

“그, 그게 아니라…….”

“내일부터 엄마가 2,000원씩 줄 테니까 1,000원은 게임하고 1,000원은 맛있는 거 사 먹어. 대신 저녁 6시까지는 꼭 집에 들어오기다. 알았지?”

“엄마, 미안해요…….”


큰 벌을 받을 줄 알았던 성호는 의외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성호는 오히려 용돈을 쥐어주는 엄마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용돈 2,000원을 더 주기 시작하고 며칠이나 되었을까. 성호가 오락실이 지겹다며 발길을 끊은 것이다.


“이제 게임 다 외워서 재미없어요.”


다시는 오락실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성호의 목소리에서 나는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아이의 작지만 단호한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는가 싶어 성호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게임에 대한 내 근심 걱정은 끝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밤낮을 잊은 채 살게 하는 <스타크래프트>가 성호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이 처음으로 컴퓨터를 장만한 게 성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1998년 초였다. 다른 집에 비하면 꽤 일찍 컴퓨터를 장만했는데, 남편도 업무 용도로 필요하고 내게도 큰 쓸모가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컴퓨터를 독차지한 것은 남편도 나도 아닌, 성호였다. 하필이면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출시된 게 바로 1998년 초였던 것이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게임 CD


호기심에 접속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성호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용어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에 아이가 즐거워하고 재밌어하는 모습에 나와 남편은 흐뭇하기까지 했다. 

<슈퍼마리오>나 <버블버블>, <겔러그> 같은 오락실 게임과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아 아이의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장난감 하나를 선물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성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몰두하던 어린 성호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껏 접한 적 없던 사이버 세계에서 자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임 속 캐릭터들에 열광하며 빠져들던 모습…… 도대체 어른들은 어쩜 이렇게 아이들 혼을 쏙 빼놓는 게임들을 잘 만들어내는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몰랐다. 현실 세계에서 성호는 11살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직은 미숙한 존재였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에서는 전혀 달랐다. 성호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였다. 자기 마음대로 한 종족을 선택해 이런저런 미션을 수행해 힘을 키우고 다른 유저가 이끄는 종족과 신나는 대결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성호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이 선물하는 그 마약과도 같은 짜릿한 경험에서 벗어나기에 11살 어린아이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게임에 빠진 성호는 원래부터 등한시하던 공부를 아예 작파했다. 어느 날인가는 학교에서 돌아온 성호가 신나게 자랑을 했다.


“엄마, 나 전교 1등 먹었어!”

“네가?”


공부 한 자 안 하는 녀석이 전교 1등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자 성호가 말했다.


“반별로 게임 붙었는데 내가 다 이기고 전교 1등 했어! 내가 최고야!”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자랑스러워하던 성호.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게임 왕이라니!’

성호 앞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컴퓨터 게임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한 성호, 비례해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는 성적, 하루하루 깊어져만 가는 나와 남편의 고민…… 우리가 무조건 공부만 잘하는, 만인이 인정하는 모범생을 성호에게 욕심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 우리가 성호에게 바란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공부 좀 못하면 어때?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하지만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삶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상의 게임 밖에도 재미난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성호가 깨닫기를 바랐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중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게임에 중독된 현재의 성호를 어떻게든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게임이 성호를 붙잡고 있지만, 언제까지 게임에 지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또한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큰 소리로 몇 번을 불러도 듣지 못하는 대단한 집중력과 밤새 게임을 해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다른 곳에 쏟는다면 무언가 크게 이루어내지 않을까, 하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고군분투 자녀 교육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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