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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May 17. 2021

아침부터 힙합 춤추는 가족, TV에 출연하다

카메라 앞의 어색함은 생각 못한채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은 단계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종종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애벌레가 탈피의 과정을 지나 아름다운 나비가 돼 하늘을 훨훨 날 듯, 전혀 뜻밖의 ‘변혁’을 이루기도 한다.




백화점 오픈 공연 뒤로 울산 비홍산방 광장에서 울산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는 등 우리 가족의 힙합 공연은 계속됐다. 심지어 일본 분과 홈스테이를 맺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고 힘들어하던 성호도 어느새 공연 자체를 신나게 즐길 만큼 내성적인 성격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컴퓨터 게임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성호의 게임 중독을 완전히 없앴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여전히 성호는 틈만 나면 쪼르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성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게 게임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결과였다.


‘그래, 조금씩 천천히 성호를 변화시키는 거야! 단번에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무리수일 뿐이야!’


느리게 느껴질지 몰라도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성호와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성호에게 멋진 변화의 기회가 찾아올 거라 나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믿음은 오래지 않아 낯선 전화 한 통으로 작은 결실을 맺었다.




“혹시 그 댁이 아침부터 힙합 춤을 추는 가족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니 울산 MBC 구성작가인데 아침부터 힙합 춤을 추는 가족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취재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재미있겠는데! 성호, 성준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게 분명해!’

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촬영을 허락했다. 우리 가족의 신나는 이야기를 다른 가족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약속한 다음 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여니 담당 PD에 FD, 구성작가, 카메라맨, 조명기사 등등 방송국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져버렸다.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댄 탓에 잠이 덜 깬 아이들이 바짝 얼어붙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몇 번을 찍어도 아이들의 어색한 춤에 제대로 그림이 안 나오자 PD가 급기야 연출을 강요했지만, 그마저도 무리였다.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송 촬영에 익숙한 연예인들이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겠지만 일반인이 어디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 신나고 활기차게 하루를 보내자는 의미로 가족끼리 음악 틀고 춤을 췄는데, 느닷없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평소대로 춤을 추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억지로 찍을 수도 없고, 철수해야 할 것 같네요.”


몇 번의 재촬영에도 아이들이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하자 결국 담당 PD가 촬영을 중단했다.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는 촬영 팀의 얼굴에는 아침부터 괜한 헛고생을 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아침 일찍 집까지 찾아온 손님들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어 차를 대접했다. 그러고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 가족들이 힙합 춤을 추게 된 사연부터, 평소 아이들을 키우는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배꼽 빠지는 아이들의 실수담에 웃고 떠드는 동안 어색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지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힙합 댄서가 아니라 딱딱한 로봇처럼 경직돼 있던 아이들이 직접 촬영을 부탁했던 것이다.


“이제는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낯선 환경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번에는 제대로 춤을 춰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 집 식구들의 가족회의까지 녹화를 하며 화기애애하게 촬영을 끝냈을 때였다. PD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방송국에서 따로 어머님을 인터뷰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방금 말씀하셨던 이야기만 해도 재밌는 프로그램이 될 것 같습니다.”


PD의 제안에 나는 흔쾌히 다음 날 방송국을 찾아 두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주고, 평소 부끄러워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없애기 위해 함께 힙합 춤을 추게 된 일, 종종 떠나는 가족 여행 등등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담당 PD가 슬쩍 물어왔다.


“어머님, 평소에 인터뷰 연습하십니까?”

“연습이라뇨? 방송 나가면 아는 분들이 모두 볼 테고, 저희 가족의 일상생활이니 몇 번이고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입니까? 허, 방송 체질이시네요. 체질!”

내 말에 PD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방송이 나간 뒤 온 동네방네에 소문이 쫙 퍼졌다. 우리 집 가족이 방송에 나와 한바탕 춤을 췄다고 난리가 나 집 밖에 나가면 어느새 우리 집 아이들은 또래 사이에 영웅이 되어 있었다.


TV에 출연한 이후로 성호의 장래 희망이, 불과 며칠 동안이었지만, 개그맨이 되기도 했다. TV에 나왔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니 우쭐해져서 매일매일 TV에 나오는 개그맨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와, 성호가 개그맨이 되면 힘들고 지친 사람들한테 웃음을 줄 수 있으니까 정말 좋겠다.”

나는 아이가 꾸는 꿈을 힘차게 응원하며, 이번 경험이 성호에게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노출된 상황에 따라, 외부 환경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멋진 경험을 하면 멋진 꿈을 꾼다. 만날 똑같은 일상의 반복만을 제공하는 부모가 제 아이는 세계를 발로 뛰는 멋진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것만큼 허황된 꿈이 어디 있을까? 빌 게이츠의 부모가 당시에는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고가의 컴퓨터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빌 게이츠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게이츠야 왜그랬니) 아이에게 멋진 경험을 선물하자.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의 꿈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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