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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May 01. 2021

엄마도 할 수 있다!

'엄마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도 자신감을 얻는다

우리의 뇌에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존재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누군가가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하품을 따라 하는 경험, 누구나 있지 않던가. 왜 그럴까? 바로 거울 뉴런 때문이다. 상대방의 피곤한 감정 표현을 공유하는 순간, 나도 따라서 하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상대방이 웃고 있으면 나도 자연스레 따라 웃게 되곤 하는데, 이 모든 게 외부 환경에 공감하고 공명하는 능력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표현했던가? 이렇듯 우리는 거울에 반사되듯 상대방과 동일시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 고민한답시고 아이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쓴다면, 아이는 우리의 찌푸린 인상을 따라 할 뿐이다. 아이를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의 거울 뉴런을 작동시켜야 한다. 우리 부모가 먼저 활기차게 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열심히 힙합을 배웠다. 하지만 엄마인 내가 잘하면 얼마나 잘했겠는가! 정말 쉽지 않았다. 마음은 청춘인데 어느새 몸에는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하하하, 엄마 너무 웃겨! 꼭 개그우먼 같아.”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엉거주춤 힙합 춤을 따라 할 때마다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똑같은 동작을 배워도 아이들은 곧잘 따라 하지만, 나를 포함한 엄마들은 쉽게 따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할 말이 없잖아!’


처음에는 성호의 수줍은 성격을 고치고, 건강 관리도 하고, 무엇보다 게임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힙합 춤을 함께 배우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는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는 일부러 머리도 노랗게 물들이고, 엉덩이가 푹 꺼지는 힙합 바지도 장만해 입었다. 이왕 할 바에야 힙합이라는 세계에, 아이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천 번을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일어나 다시 춤을 췄다. 오로지 아이들과 함께하고, 내 노력을 보며 아이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또한 힙합 춤을 배우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려운 춤 동작도 두세 번이면 쉽게 따라 배우고, 뚝뚝 땀을 흘리면서도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 내면에 깃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저 잠재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열심히 힙합을 배우던 어느 날 멋진 기회가 찾아왔다. 신규 오픈하는 부산 롯데 백화점 기념 무대에 우리 가족이 포함된 힙합 팀의 공연이 예정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들뜬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으로 우리 가족은 뻘뻘 땀을 흘리며 멋진 공연 준비를 했다.

물론 공연 당일, 작은 소란이 있었다. 성호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깜짝 놀라 찾아보니 공중 화장실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엄, 엄마, 나 떨려 죽겠어. 실수하면 어떡해?”


난생처음 대중 앞에서의 공연에 내성적이었던 성호가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지질린 성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성호, 네가 흘린 땀이 얼마나 되지?”

“엄청 많지.”


성호는 그동안의 고된 연습을 떠올렸다. 뚱뚱한 몸으로 힘들게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던 지난 몇 달의 기억.


“땀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아. 나는 성호를 믿어! 우리 성호가 제일 열심히 연습했으니 제일 잘할 거야. 

그리고 실수하면 어때? 우리 가족이 매일 외치는 구호 있지. 실수, 실패를?”

“두려워 말자!”


우리는 우리 가족만의 슬로건을 외치고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제야 성호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깃드는 것 같았다.


마침내 오픈 공연이 시작됐다. 성호는 처음에는 어색한 듯 종종 박자를 틀렸지만, 이내 신나는 음악에 맞춰 그동안 갈고닦은 춤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말 최고의 퍼포먼스였다.(내 춤은 상상에 맞길 수밖에!) 그리고 내친김에 우리는 더 열심히 노력해 힙합 강사 자격까지 땄다.




나는 지금도 두 아이와 열심히 춤을 추던 날들을 우리 가족이 함께한 최고의 기억 중에 하나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갈릴레오 시대의 사람들은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다. 그것은 지극히 자명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결코 진실은 아니었다. 진실이자 원칙은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상식이란 언제나 깨질 수 있는 유리잔과 같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상식 이전에 원칙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갈릴레오 시대의 사람들처럼, 가려진 원칙을 믿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눈앞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그릇된 길로 나가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아이를 믿어줄 수 있냐고 반문하는 부모들…….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믿어주는 것은 상식이 아닌 원칙이다. 아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상식을 뒤집어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이를 믿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변할 때 아이도 함께 바뀌어 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이들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힙합을 배우며 우리의 가족애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자녀와 함께 신나게 놀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만들어 보자. 

엄마가 흥이 나면 아이는 신명이 난다.




칭찬 Tip


“엄마, 제발 칭찬 좀 그만해! 내가 못할 때도 왜 엄마는 잘한다고만 해?”

힙합을 배우던 성호가 내게 불퉁거렸다. 뚱뚱한 몸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성호를 볼 때마다 

“어머, 우리 성호 너무 잘한다.”, “우와, 성호 최고야!”를 연발하는 내가 창피했던 것이다. 

나는 힙합인지 브레이크댄스인지 모를 정체불명 춤을 추며 말했다.

“엄마 눈에는 성호가 최고로 잘하는데 어쩌라고?”

성호가 ‘우리 엄마는 만날 저래!’ 하는 얼굴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못하는 데도 엄마만 칭찬하잖아. 다른 엄마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쪽팔려 죽겠단 말이야.”

그러나 잘하면 칭찬, 못해도 격려하는 내 바보 같은(!) 칭찬 릴레이 교육법에 대해 성호는 커서 말한다. 

엄마의 끊임없는 칭찬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아이는 질책이 아닌 칭찬이라는 이슬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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