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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Jun 04. 2021

엄마들은 왜 아이의 말을 듣지 않을까?

경청과 눈높이

초등학교 저학년 딸의 손을 꼭 잡고 한 엄마가 내 코칭 수업에 문을 두드렸다.

아이는 무척 예쁘게 생겼는데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그 또래라면 부산할 정도로 활발하거나 낯선 환경에 수줍어하는 게 보통인데, 아이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반쯤 입을 벌린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쉬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애가 원래 말수가 적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거의 말을 안 해요. 전에 없던 이상한 버릇도 생기고…… 병원에서는 틱 장애라고 하는데…….”


엄마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대학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은 아이는 틱(Tic) 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틱 장애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근육 움직임을 보이거나 소리를 내는 장애 현상을 말하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 유전적 요인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장애로 여겨지는 증세다. 아이 엄마는 틱 장애를 고치고자 이곳저곳을 헤매다 내 코칭 수업에까지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부모에게 말을 하지 않는, 부모가 무슨 말을 하면 간단히 “응.” 하고 로봇처럼 대답만 할 뿐, 자기 생각이라고는 일체 말하지 않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 멍하니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상 행동을 하는 아이…… 눈앞의 이 예쁘고 어린 소녀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의외로 어렵지 않게 문제의 출발점을 찾게 된 것은 작은 단서 하나 때문이었다. 한창 상담을 진행하던 중에 아이 엄마가 두툼한 다이어리를 꺼내 체크하더니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라 다음에 상담을 계속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다이어리를 살펴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던 내 예상에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다이어리에는 아이의 하루 시간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아침 먹고 공부, 점심 먹고 공부, 저녁 먹고 공부하겠다며 짜는 재밌는(?) 시간표를 보는 듯했다. 그만큼 아이의 하루 일과는 쉴 틈도 없이 꽉 짜여 있었다. 심지어 간식 먹을 시간까지 세분화되어 있을 정도였다. 내가 판단한 문제의 출발점은 아이가 아닌 부모였다.


나는 아이를 다시 보았다. 그제야 무관심한 표정 속에 꼭꼭 숨겨둔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는 자유롭지 못했다.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오직 엄마의 뜻만 좇을 수밖에 없는, 아이는 억압된 현실에 절망해 감정 표현의 문을 닫아걸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상담은 몇 번 더 이뤄졌다. 나는 상담 내내 아이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 어떤 과자를 먹을지, 음료수는 무엇을 마실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예상처럼 아이는 과자를 고르는 사소한 선택조차 어색해했다. 그러나 아이는 쉽게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하지만, 쉽게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는(선물하는) 내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에게는 비밀이라며 속마음을 살짝 털어놓았다. 아이의 말을 요약하면 이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말해도 듣지를 않아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말하고 싶은데, 말을 들어줄 이가 아무도 없을 때 받게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잘 보여주는 동화다. 동화에서 한밤중에 갈대숲으로 나가 임금님의 비밀을 외치지 않았다면 재단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히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 아이의 상황이 꼭 그 재단사와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기’가 자신의 교육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아이의 키 높이로 몸을 낮추고 이야기할 때, 교육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는 ‘제대로 된 경청’만으로도 훌륭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경청傾聽은 코칭 리더십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이다.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그런데 왜 엄마들은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을까? 우선 엄마는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입장에 더 가깝다.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거나, 아이의 말에 별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은 유능한 엄마답지 못하다고 착각하는 엄마들도 많다. 사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부모들은 거의 다 그랬다. 항상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부모상. 부모만 그런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랬고, 사회생활에서의 상사 또한 그랬다. 게다가 우리는 듣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웅변학원은 다녀봤어도 경청 학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과 스킬은 넘쳐나는데 잘 듣는 훈련을 하는 곳은 없다. 그러나 아이에게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면, 부모에게는 제대로 들을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조건 입 다물고 상대방의 말만 듣는 게 경청이라는 착각은 그만하자.


첫 번째는 제대로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먼저다.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일단 멈춰야 한다. 아이가 말을 하는데 할 일 다 하면서 엄마들은 듣는다. 설거지하면서 뒤통수로 아이의 말을 듣는다. 아니면 위에서 내려다보며 아이의 말을 듣는다. 부모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 익숙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지만, 아이는 다르다.

꽃 박람회에서 예쁜 장미꽃을 보고도 좋아하지 않고 계속 우는 아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우는 까닭을 도통 알 수 없던 부모는 쪼그려 앉은 뒤에야 알았다. 아이의 작은 키에서는 꽃이 보이는 게 아니라 날카로운 가시와 진딧물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처럼 대화의 첫걸음은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입으로 내뱉는 말보다 눈으로 하는 말이 훨씬 더 많다. 따라서 말하는 아이와 마주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는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옆에서 텔레비전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면 우리의 귀는 아이의 말과 텔레비전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밖에 없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내 생각을 잠시 접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힘든 부분이 이것이다. 아이의 말을 듣는 중에도 내 생각을 한다. 시시각각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 때문에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세 번째는 들을 때는 최대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벽에다 이야기하는 기분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전화 통화라고 가정해보자. 아무 반응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으면 “여보세요? 지금 듣고 있어요?” 하고 상대방이 묻게 된다.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사를 섞어 반응하며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한마디로 판소리처럼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명창이라도 추임새가 없는 소리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아이가 두서없이 말을 하면, 엄마는 아이의 말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다른 말로 요약해 되물을 필요도 있다.


네 번째는 아이의 말이 아닌, 아이의 기분에 공감해야 한다. 

경청은 비단 말을 들어주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아이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를 사려 깊고 자상한 부모라고 판단케 하는 최고의 지름길이 바로 경청인 것이다.




나와 상담을 한 아이의 장애가 부모의 일방통행식 교육법 하나에만 원인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의 심리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했다. 실제 아이가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난 뒤, 아이 엄마에 대한 코칭을 통해 두 모녀는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고 말한 순간, 아이의 뺨에 흐르던 눈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부터 바꾸자.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말을 경청하자. 아이도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놀라운 기적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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