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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Jul 03. 2021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면 매를 들어도 상관없다?

엄마의 결심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

우리 부모들이 무턱대고 신봉하는 자녀 교육법 중에 가장 나쁜 게 이것 아닐까. 몇몇을 빼고 우리 모두는 참 많이도 맞고 자랐다. 엄한 아버지께 맞고, 어머니한테도 매를 맞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는 또 얼마나 많이 맞았던가? 성적 떨어졌다고, 떠들었다고, 숙제 안 했다고…… 맞는 게 하루 일과 같던 지난 시절. 단원 김홍도의 그림 <서당>을 보며 친근해하는 것도 훈장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훌쩍이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체벌에 익숙해진 탓에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성적’에 관해서만큼은 체벌에 대해 관대하다.


나도 성호에게 매를 든 기억이 있다. 성호가 어렸을 때 하도 말썽을 부려 잘못하면 매를 맞기로 약속을 했고, 물건을 함부로 다뤄 부수거나 또래 친구와 싸우거나 하면 약속대로 매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성호의 일기장을 보다가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엄마한테 매를 맞았다. 아파 죽겠다. 잘못하면 맞기로 약속했지만……

욕이 나오는 걸 꾹 참았다.”


매를 드는 까닭은 잘못한 점을 깨우치고 반성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함인데, 성호의 일기장에는 반성도 있었지만, 맞았다는 미움이 더 많았다. 내 앞에서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지만, 성호의 속마음을 읽으며 나는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잘못하면 매를 맞고, 성적 떨어지면 매를 때리던 아빠, 엄마가 정말 무섭고 싫었는데 내가 똑같이 따라 하다니…… 좋은 교육이든 나쁜 교육이든 어려서부터 체험한 교육이 정말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날로 매를 버리게 되었다.


매를 버리고 난 뒤, 한동안 나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말썽을 피우고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밖에 되지 않기에 마땅한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책에 나온 이런저런 방법을 써 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러다 찾은 게 바로 ‘반성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의 반성문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잘못을 저지른 이유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와 생각까지 모두 적게 했다. 자신의 행동에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게 하고, 더해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이와 약속을 지키는 거였다. 용서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반성문이 맘에 안 들어 속으로 울컥해도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반성문의 마지막은 그날 읽은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췌해 필사하는 것을 시켰다. 그러자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연습이 저절로 되었다. 아이는 나중에는 반성문에 동요도 쓰고, 시도 쓰고, 자기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썼다. 오히려 반성문이 아이에게 좋은 학습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두 아이를 항상 꽃에 비유한다. 그리고 아이를 때리는 행동은 꽃의 목을 따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오히려 아이를 더욱 존중하자. 꼭 반성문을 쓰게 할 필요는 없다. 매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단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힘쓰는 게 바로 부모의 역할이다. 엄마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순간 아이의 변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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