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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홍대리 Mar 29. 2021

최고급 호텔 vs 싸구려 여인숙

비교체험 극과 극

성호가 중학생이었을 때 같은 학급 학부형이었던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다. 반갑게 안부인사가 오가고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호의 근황을 말했는데,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 성호가 연세대학교 4년 장학생이라고요?"


나는 그녀의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 어릴 적의 성호를 기억하는 분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성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중학교 때는 꼴찌 성적표를 받아온 적도 있었다. 꼴찌 성적표를 받고서도 당당히 내밀던 모습이라니!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성적이 바닥을 기어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질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실업계를 갈까 고민하다가 간신히 인문계에 입학할 정도였다. 그러니 어릴 적의 성호를 기억하는 분은 으레 성호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그저 성적에 맞춘 적당한 대학에 다니고 있을 거라 짐작하는 게 당연했다.


"성호 툭하면 학교 안 가고 그러지 않았나요?"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맞다. 성호는 툭하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단지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나와 성호가 나눈 수많은 추억들 중에 기억 속에 또렷한 사건이 하나 있다. 성호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뒤였다.


"엄마, 나 학교 안 갈 거야!"


책가방을 매고 현관문을 나서던 성호가 허깨비처럼 풀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을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반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나?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한참을 훌쩍거리던 성호가 그동안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놓았던 불만을 터뜨렸다.


"어떻게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 게임할 시간도 없잖아!"

'이 녀석.....!'


성호의 말은 게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공부는 뒷전, 컴퓨터 게임에 목을 매고 있던 성호에게 중학교 생활은 버겁기만 했던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현관문 앞에 주저앉은 성호를 보며, 나는 이대로 아이를 윽박질러 학교에 보내는 게 옳은 일인가 싶었다. 억지로 등교시켜봤자 부작용만 생기지 않을까? 나는 고민 끝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성호를 일주일간 등교시키지 않기로 했다.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학교에 대한 성호의 반감을 누그러뜨릴 생각이었다. 일주일쯤이라면 용기를 내 투자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일주일 결석했다고 지구가 망하겠는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다'


학생에게 일주일이란 천금 같은 시간이겠지만, 공부할 마음이 없다면 지옥 같은 시간을 뿐이다. 반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놀아도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종일 딱딱한 책상 앞에 앉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을 들으며 따분함과 지루함에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일 테니.


성호를 일주일 동안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뒤, 나는 성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여행 가자! 어디 갈까? 음...... 제주도 어때?"


아픈 환자는 말로도, 집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나는 판단했다.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은 병이 곪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픈 환자를 말로 치료할 수 있나? 특히 아이는 말 몇 마디로 고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다는 엄마들 푸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아이의 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치료해야 한다. 단, 매를 들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또한 아이가 탈이 나면 병원에 데려가듯 집이나 학교가 아닌, 자주 접해 보지 않은 낯선 공간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우와, 제주도다! 엄마, 저기 좀 봐. 나무가 야자수야!"

비행기에서 내린 성호는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경에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엄마, 그런데 우리 어디서 자?"

"이 엄마만 믿으라고!"


제주도 여행 첫날, 우리는 최고급 롯데호텔에 묵었다. 집보다도 더 좋은 호텔 방을 보며 성호가 어찌나 기뻐하던지.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제주도 투어에 나선 우리는 조랑말도 타고, 박물관, 민속촌도 들르고, 서커스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해녀들이 파는 싱싱한 전복도 먹고, 오르막길이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신기한 도깨비길을 걷는 등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화창한 봄날, 또래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평일에 제주도를 여행하는 성호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얘, 너는 학교 안 가니?"


그럴 때마다 성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학교 쉬고 엄마랑 여행 왔어요."


성호의 말에는 멋진 모험을 떠난 소년의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풀이 죽어 있던 성호는 어느새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다. 낯설고 신기한 풍경과 문물을 접할 때마다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는 성호를 보며 나는 학교 공부 대신 선택한 일주일간의 낯선 경험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늘이 힘들다면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푹 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체크아웃 시간까지 쿨쿨 자고 있던 성호를 흔들어 깨웠다.


"빨리빨리 짐 싸자!”

“응? 우리 계속 여기서 머무는 거 아니었어?"

성호가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물었다.


나는 나가기 싫다는 듯 온몸을 배배 꼬는 성호를 끌고 나와 예약한 택시에 올라탔다. 둘째 날은 택시를 이용해 제주도를 돌며 관광을 했는데, 관광가이드 역할을 맡은 택시기사 분도 엄마와 아이의 평일 여행을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둘째 날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기사 분에게 부탁했다.


“제주도에서 제일 저렴한 여인숙으로 가주세요!"


어떠한 삶을 살지, 선택은 결국 너의 몫이란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과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그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 레프 톨스토이




아이가 어떤 인생을 살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고, 노력해야 할 것은, 아이에게 멋지고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뿐이다. 많은 부모님들, 이제껏 정말 잘해왔다. 아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좋은 학군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일념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는 아빠, 번듯한 직장 가진 남편 두고 고액 학원비 충당하려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엄마..... 


안타까운 것은 이제껏 잘해왔는데, 마지막에 실수를 저지른다. 선택지를 아이가 아닌, 부모 스스로 고르려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아이와 부모의 대립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택시는 여인숙 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여인숙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누가 숙박을 할까 싶을 만큼 허름한, 내가 상상하던 딱 그대로였다. 내 성화에 억지로 짐을 풀었지만 성호는 불만이 한가득했다. 나는 성호를 밖으로 불러내 오붓하게 모래사장을 거닐며 물었다.


"어때, 어제랑 오늘?”


성호가 울상을 지으며 매달렸다.


“호텔로 돌아가면 안 될까? 이상한 냄새난단 말이야.”


나는 성호와 함께 바위에 앉았다.


“성호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어떨까? 어쩌면 어제처럼 살 수도 있고, 오늘처럼 살 수도 있을 거야. 성호는 어떻게 살고 싶니?"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성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듯 물었다.


“왕처럼 살려면 꼭 학교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꼭 학교 다니고 공부 잘해야 할 필요는 없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신나고 재미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거든. 엄마는 성호에게 멋진 꿈이 있다면 당장 학교 그만둔다고 해도 응원할 거야. 하지만 게임할 시간이 부족해서 학교 그만둔다는 건 조금 그렇잖아."


“응, 내가 생각해도 창피하기는 해."


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멋진 꿈이 없으면, 학교는 아주 유용한 곳이야. 공부를 많이 하면 이것저것 아는 게 많아지잖아. 그러면 앞으로 네가 찾게 될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잘할 수 있게 돼. 어때? 너는 왕처럼 살고 싶니, 가난한 사람처럼 살고 싶니?"


골똘히 고민하는 성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슬며시 일어났다.


"아휴, 바람이 차네. 들어갈까?"


"나는 조금 더 있다가 갈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성호를 보며 나는 발길을 돌렸다. 그 밤,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는 밤바다에 앉아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한 작은 소년이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개근상은 우등상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다. 공부 못지않게 근면, 성실이 최고의 덕목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결석을 곱지 않게 바라보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해외 연수를 떠나고, 부모와 함께 들로 산으로, 박물관과 박람회로 체험학습을 떠나는 아이들을 학교는 무조건 붙잡지 않는다. 학교 수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학습 효과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 때문이다.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손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렸을 적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가 이유도 묻지 않고 곧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스필버그가 학교에 가는 대신 박물관에 놀러 가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함께 외출을 했다. 그녀는 학교에서는 채울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학교 밖에서 채울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한 최고의 코치였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딱딱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스필버그는 박물관을 뛰어다니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고, 그 경험이 그를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게 한 힘이었다.


학교는 웬만해서는 출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출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은 틀에 박힌 '죽은 생각'이 된다. 


오늘 내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면,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아이와 함께 맛있는 도시락을 싸서 배낭을 메고, 근처에 있어도 자주 찾지 못했던 박물관, 미술관, 고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학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멋진 경험을 찾아 길을 나서 보자. 

손을 맞잡은 아이의 얼굴이 밝게 변하리라 확신한다.




* 위 글은 전지적 어머니 시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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