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1

by 사회중년생 홍대리

10대 시절 내 꿈은 프로게이머였다.

종목은 블리자드사의 워크래프트3 라는 게임. (이하 워3)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또래 친구들보다 좀 더 컴퓨터를 일찍 접했고, 덕분에 컴퓨터 게임에 엄청난 속도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삼국지, 스타크래프트, C&C 등 각종 CD게임을 비롯해 바람의 나라, 디아블로, 포트리스 등 그 당시 핫한 게임은 다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인생의 관심사는 오로지 게임밖에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워크래프트3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준 동생과 함께 피시방에서 같이 하루 종일 게임을 했으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것 같다. 이후로는 다른 게임이 아닌 이 게임만 하며 중학교 시절을 다 보냈고, 어느 정도 실력과 레벨이 쌓인 후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해보라.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하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걸 넘어서서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의 공략을 보고,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시뮬레이션하며 학교 수업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그렇게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ASIA서버에서 약 100위권에 들게 되었고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겨울방학 때 당시 프로게이머들이 많이 속해있던 ‘WeRRa(웨라)’ 클랜에 입단 Test 후 들어가게 되었다. 가입하자마자 Coffee.WeRRa라는 아이디를 만들었고,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정말 열심히 실력을 쌓았다.


고등학생이 되었더니 이게 웬걸.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전교생 모두 강제로 시키더라. 나는 공부엔 전혀 관심 없고 꿈이 프로게이머인데, 학교에서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있으라고? 오 마이 갓. 부모님께 SOS를 청했다.

다행히 일반적인 부모가 아닌(?) 나의 부모님은 직접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하여 ‘우리 아들 프로게이머가 꿈인데 대회 나가기 위해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직접 말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합법적(?)으로 야자를 빠지며 당시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었다.


고1 4월에 있을 온게임넷 워3 대회와, 5월에 있을 MBC 게임 워3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당시 래더(랭크 게임) 아시아 100위 안에 들었어야 참가자격이 주어졌고, 야자를 빠진 시간에 열심히 게임을 했더니 어느새 30위권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 출전한 온게임넷 대회는 지역별 예선이 있었고, 울산에 살았던 나는 부산에서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부산 예선 참가자 64명 중 4명만 서울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고, 첫 두 경기는 부전승, 세 번째는 2:0 (vs 언데드) 그리고 마지막은 승패승으로 이기며 (vs 휴먼, 홍** 선수)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쥐었다. 이때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노력으로 직접 얻은 성취감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부산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한 총 4명 중 2명은 당시 현직 프로게이머였다.


20210328_205449.jpg 부산 지역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


이때 부산 대회를 위해 부모님께서 차로 대회 PC방까지 데려다주셨으며, 같은 반 친한 친구들 및 친동생과 함께 갔었다. 대회 마지막 경기를 할 때에는 당시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게임을 하던 내 옆자리에서 다들 내 이름을 부르며 얼굴 바로 옆까지 다가왔는데도 내가 게임에 집중하느라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부산 예선 대회를 통과한 나는 학교에서 더욱더 당당하게 야자를 빠질 수 있었고, 약 한 달간 연습을 더 한 후 마침내 4월 말,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17살의 남자아이는 처음으로 혼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속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던 부모님이 용돈을 수만 원씩 주시며 ‘아들 잘하고 와, 이기고 와! 파이팅!’라고 응원해주셨던 장면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게임으로 인생의 진로를 정하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자식을 응원해주는 부모가 얼마나 있었을까.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 당당하게 서울로 가는 심야 고속버스를 탈 때에 내 가방 속에 들어있던 것들은 대회날 사용할 마우스(로지텍 MX300)와 마우스패드(펠로우즈), 그리고 프로게이머 선수들을 직접 만나면 싸인을 받기 위한 다이어리와 펜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 도착한 나는, 같은 클랜의 프로게이머 형들이 알려준 대로 압구정에 위치한 '삼성 칸' 프로게이머 연습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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