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의 떡집

1. 새벽이슬 맺힐 무렵(1)

by 신성화

'오늘은 쉽니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투명한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불 꺼진 1층 건물은 가로등 불빛에 언뜻 안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주홍빛으로 물든 거리.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굳게 닫힌 유리문 앞에서 고개를 하늘 위로 들고 서 있었다.


"이 봄날의 떡집... 그냥 이 봄날에로 할 걸 그랬나."


상호가 적힌 간판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여자가 고개를 가로 젓고는 시선을 문 앞에 붙은 종이로 옮겼다. 여자가 종이 위아래에 붙여둔 테이프를 떼자 조용한 길에 소리가 유달리 크게 울렸다.


"아니야. 그래도 이 봄날의 떡집으로 하길 잘했지. 이게 더 좋지? 잘한 거지?"


여자가 혼잣말 같기도, 넋두리 같기도 한 말을 중얼거리고 잠긴 문을 열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딸랑 거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가게 문이 닫히자 거리는 다시 고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한 마리가 어둠을 가르며 날았고,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달리던 속도를 늦추더니 머뭇거리며 멀어졌다. 그 후로 거리는 닭이 우는 새벽까지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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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심방 어르신."


건너편 골목길 입구에서 떡집 앞에 있는 여자를 응시하던 남자가 곁에 다가온 사람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래, 은조야. 오랜만이구나."


느긋한 걸음으로 골목길 입구에 다다른 이는 머리를 단정하게 쪽진 노파였다. 잠시 은조의 손에 든 부채에 눈길을 줬던 심방이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 이봄나래가 맞는 게야?"


심방은 비스듬히 보이는 간판 아래 선 여자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물었다. 심방의 어깨에 앉아있던 자그마한 새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날개를 포드닥거렸다. 그때마다 연초록색 깃털아래 감춰졌던 하얀 깃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그렇구나."


밤의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와 심방이 입은 녹색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비록 주홍 불빛에 물들어 있어 색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봄나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심방의 눈가에 고운 주름이 짙어졌다. 귀여운 새가 부리를 심방의 볼에 연신 비비적거렸다.


"얼른 가고 싶은 게야? 오냐. 오늘 밤은 너의 역할이 중요하겠구나. 내가 만난 동박새들은 다 영리했는데 너 또한 그래 보이니, 잘 할 수 있겠지?"


심방이 동박새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쓰다듬었다. 동박새는 문제없다는 듯 작게 지저귀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씩씩해서 마음에 드는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기회를 다시 놓쳐서는 안 돼. 너의 일을 잘 끝내고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알겠느냐?"


동박새가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짧게 울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심방의 시선이 은조에게 향했다.


"이 일로 네가 곤란해지겠구나."


"괜찮습니다. 어르신을 돕는 일이면 가벼운 징계 정도로 끝나겠지요."


"시간이 많이 지났음이야. 이제 그런 농도 건넬 줄 알고."


심방은 이 일로 은조가 치를 뒷일이 결코 가볍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은조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뿐이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심방이 동박새에게 말했다.


"자, 가거라."


심방의 말을 신호로 삼아 동박새가 날아올랐다.


은조가 손에 쥐고 있던 접선을 펼쳐 가볍게 바람을 일으켰다. 부채 끝에 매달린 패철선추가 흔들렸고, 주홍빛을 머금은 하얀 도포 소매가 펄럭였다. 바람을 탄 동박새는 떡집 건물 위쪽으로 날아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상에서 마쳐야 할 일들은 잘 마무리 지어야지. 이만 가야겠네."


"어디로 가십니까."


"글쎄. 나를 부르는 곳으로 가야겠지. 나를 찾는 이가 없다면 좋겠네만."


심방이 걸음을 옮겨 골목길을 되돌아갔다. 은조는 심방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은조가 몸을 바로 세웠을 때 심방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자취는 사라지고 여운만 남은 빈 골목길. 은조는 동박새가 날아간 곳을 다시 한 번 응시하고 패철선추에 손을 올렸다. 바로 그 순간, 골목길에는 가로등 불빛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