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참을 거울 앞에 앉아 있다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핸드폰의 불빛이 반짝였다. 희정이였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거 들어봐.’
희정이가 보내준 건 음악파일이었다. 가수 이름은 H, 노래 제목은 Moon.
노래를 플레이했다. 잔잔하면서 낮게 흐르는 선율. 말을 거는 듯 읊조리는, 약간 쓸쓸한 목소리. 낮은 음색으로 이야기를 건네 오는 낯선 사람.
밤샘에 취약하지만 잠을 포기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목소리를 지녔다. 밤을 지새운 새벽에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노래다. 새벽이더라도 그때 일어난 새벽이 아니라 하루를 꼬박 넘겨서 만난 새벽이어야만 더 공감할 수 있는 가사, 그리고 음색.
달에게 편지를 썼단다. 블타바강 위로 뜬 달에게. 아직도 나처럼 달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니, 하는 의아함이 먼저였다. 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달에게 전하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그가 부르는 가사에 담담히 귀를 기울였다.
노래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을 서성였다. 몇 번이고 노래를 재생했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의 손가락들로 이불 위를 반복적으로 두드렸다.
이십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이어폰을 귀에서 내려놓았다. 흘러나오던 노래는 그쳤으나 귓가를 스쳐간 음들은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
언젠가 희정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어떤 노래에 완전히 빠진 적이 있지. 처음 들은 건 라디오에서였어. 내가 진행하던 작업이 물먹은 날이었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힘이 다 빠지는 거야. 뭐하고 있는 건가 싶고. 다 그만두고 싶고. 버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이 되게 초라하더라. 그때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왔어. 내 취향은 전혀 아닌 노래가. 근데, 나…… 버스에서 울었잖아. 진짜 창피한데, 난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몰래 훌쩍이면서 울던 내 모습을. 너 상상이 돼? 내가 버스에서 노래 듣다가 울었다는 게? 집에 돌아와서 노래 제목을 알아내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울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다른 노래들도 듣게 되고. 결국 콘서트까지 다녀왔잖아. 그러다 알았어. 아, 내가 힘들었구나. 난 위로받고 있었구나. 그제야 알았어. 노래에 위로받는다는 말이 뭔지. 위로를 받고 있었으면서도 몰랐거든. 바보 같지?’
희정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도 같은 상황을 만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 번 듣고 기억에서 사라질 노래가 아니라 내게 건네진 위로로 남을 음악. 누군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말없이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손길이 닿진 않지만 멀리서 다가온 감정이 선율을 타고 나를 감싼다.
음악이 마음에 와 닿을 때. 그 순간은 하나의 만남이다. 가수와의 대화일 때도 있고, 작곡가 혹은 작사가와의 조우일 때도 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인연.
H라는 가수에 대해 검색하려다 그만두고, 대신 노래가사만 찾아 읽었다.
블타바강. 가사에 나오는 낯선 이름의 강을 검색했다. 체코 프라하를 흐르는 강이란다. 프라하. 낭만적인 도시로 알려져 언젠가 한 번쯤 가보고 싶던 곳. 체코, 프라하, 블타바강. 단어를 차례대로 입에서 굴려본다. 이국적인 언어가 발음을 따라 맴돈다.
머리맡에 있던 가방에서 편지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편지지를 넘겼다. 낙서로 끼적인 편지지도 지나쳤다. 남아있는 편지지를 뒤적였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편지지가 없어 아쉬웠지만 다른 종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정말 답장을 하는 기분이 들 테니까.
하늘색 바탕에 몇 개의 줄이 그어진 편지지를 골랐다. 편지지 끝부분 색이 바래있으니 누군가 이 편지를 받게 된다면, 먼 옛날로부터 온 편지로 착각할지도.
펼쳐놓은 편지지를 눈대중으로 반을 나누고, 왼쪽 부분에 가사를 옮겨 적었다. 오른쪽 반으로 펜을 옮기다, 멈칫했다. 노래 가사에 답장이라니. 내가 뭐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과 아무렴 어때, 라는 호기가 번갈아 지나갔다. 오늘의 선택은 후자. 어차피 지금의 나는 여러모로 이상하니까.
노래가사를 받아 적는 것도, 그 가사에 답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우연한 만남이 가져온 생소한 경험은 사춘기를 앓는 청소년기를 떠오르게 했다. 당시에 또래들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일을 이제 와서 하고 있다. 전혀 관심 없던 일이었는데. 지금에야 이러는 걸 보면 남들보다 더디게 자라고 있는 건지. 이게 내가 지닌 속도라면 어쩔 수 없었다.
편지지에 펜을 꾹꾹 눌렀다. 오늘은 내가 달이 되어보기로 하며. 뜬금없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다. 편지를 받은 달의 입장이 되어 내가 받지 못한 달의 답장을, 내가 기다려왔던 달의 답장을, 혹 그 사람도 기다리고 있을 달의 답장을 내가 대신 쓰고 싶었다.
문득 생각이 스쳐 편지지를 꺼냈을 때처럼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적어내려 갔다.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일종의 영감이라는 거창한 말도 붙여봤다. 실상은 어떤 커다란 의미보단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거였지만.
오래전부터 달에게 수없이 말을 걸어봤지만 언제나 나만의 외침이었다.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때로는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하는 심정도 있었다. 답장 없는 편지는 가슴 한 켠을 휑하니 베어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답장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달에게 편지를 보낸 누군가가 마치 나 같아서.
누군가의 고통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어떤 공감을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아픔을 공유하고 그 아픔을 서로 다독인다. 한 줄의 글이, 한 줄기의 눈물이 되어 흐르고, 다시 하나의 약이 되어 스며든다. 나는 편지를 쓰며 울었나 보다. 편지지 위로 떨어진 눈물방울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행히 글씨가 번지진 않았다.
답장을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처음에 썼던 단어를 두어 개 바꾼 것 말고는 고친 부분도 없었다. 이불 위에서 들썩이며 쓴 삐뚤빼뚤한 글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원래의 노래 가사와 내가 답장으로 보낸 가사가 나란히 적힌 편지를 쭉 읽어 내렸다. 전하고 싶은 말들을 편지에 적고 나니, 글자 수만큼 옮겨간 내 감정의 빈자리에 쑥스러움이 채워졌다. 이걸 어쩌나. 괜히 부끄러웠다. 연애편지도 아닌데.
내 답장이 언제, 어떤 식으로 전해지게 될까. 아니면 이대로 혼자만의 답장으로 머물게 될까.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내가 답장을 받은 것 같아서. 오래 기다려왔던 그 답장을.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이면서, 내가 누군지 모를 그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니.
편지를 반으로 접어 다 읽은 책 1권 사이에 끼워두고, 아직 다 읽지 못한 2권을 꺼내 읽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걸까. 한 뼘 한 뼘 자라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나는, 삶을 이어가는 우리 모두는 자라나야 한다.
이어폰을 통해, 밤새 음악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