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얼굴에 핀 꽃

2.

by 신성화

어두워진 방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 걸음을 옮겼다. 불을 키려고 전등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는데, 옆에 있는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울 속 내 얼굴에 붉은 꽃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내 모든 것이 까맸다. 어둠에 가려진 꽃은 보이지 않았고, 흐릿한 윤곽의 내 얼굴은 꽃이 피기 전의 얼굴과 같았다.


나는 스위치를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두어 얼굴을 더듬었다. 꽃은 제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까맣다. 검정 속으로 사라졌다. 더 어두운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멀어지고 있다. 그림자마저 사라질 어둠 속으로.


가만히 거울 앞에 앉아 나를 응시했다. 지난 십년 간 거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나와 내가 너무 멀었다. 나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나에게 가혹했다. 괜찮았던 날들과 괜찮지 않았던 날들의 혼재 안에서, 나는 대부분의 날들을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포장한 채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괜찮았다거나, 괜찮지 않다는 말을 모두 거부한 말이었다.


모든 판단의 보류. 모든 감정의 외면. 결국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


나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던져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면서 이제야 그 사실을 인지하다니. 평생 동안 이렇게 내가 멍청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시험을 망친다던가, 놓고 간 물건이 생각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멍청함이었다.


지난 십 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꽃이 피었던 그 날 이후의 삶들을. 완벽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다만 평범함을 바랐을 뿐. 내 기준에서 평범함을 누리고 싶었다. 동네 슈퍼에 갈 때, 가볍게 산책을 나갈 때, 떡볶이를 사먹으러 나갈 때와 같은 일상의 평범한 생활을 편하게 하는 것. 평범한 척 생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평범하게 보낼 나날들이 필요했다.


나는 지난 시간동안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냥 처참하다고. 차라리 죽을병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위험을 감지할 만큼 거창한 병이라면. 차라리 나 너무 힘들다고, 병에 걸려서 무섭고 괴롭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얼굴에 핀 붉은 꽃 한 송이는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뭐라고. 통증도 없고, 피가 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내 얼굴에 대한 이야기들은 몇 번이고 들었을지 모른다. 풀리지 못한 채 잊은 듯 쌓여있던 그 말들이 우연한 계기로 슬며시 터져 나온 것이다. 내가 만든 ‘꽃’이라는 암호를 서점을 찾았던 손님이 ‘꽃이 피었네.’라는 비밀번호로 풀어낸 걸지도.


나는 인정해야했다. 마트에서 엄마와 내가 겪었던 일을, 이미 몇 번이고 겪었었다는 걸. 그때마다 나는 나이 먹은 어린 아이처럼 숨었고, 엄마는(어느 날은 아빠) 더욱 단단히 그 말들을 이겨내야 했음을.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래?”라며 묻던 엄마의 말. 말없이 내 볼에 피어난 꽃을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 그것이 나로 인해 부모님이 버텨내던 시간이었단 걸 알았다.


사회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부모에게 아픈 자녀는 죄처럼 여겨진다. 어느 누구도 네가 잘못한 거라는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아픈 일이,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는 일이, 죄는 아니니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부모님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내색하지 않지만 감내하고 있는 감정들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모님이 티를 내지 않는다고 모르는 건 아니다. 되레 더 끈끈하게 내게 달라붙는다. 왜 내 얼굴에 핀 꽃으로 부모님이 고통 받아야 하는 걸까.


긴 병에 효도하는 자녀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긴 병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게 할 수도 있다. 나는 혹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이겨낼 거란 다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만이었고, 오만이었다. 어떤 아픔이건 쉽게 치유되는 건 없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아저씨가 건넨 말처럼 나는 언제고 그런 일들을 겪어왔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나를 보호했다. 매일, 매시간 조금씩. 그런 말들을 막아낼 다이아몬드로 나만의 성을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내가 아는 광물 중 가장 단단했으니, 모래성처럼 흩어지거나 바위성처럼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


흔히 떠올리는 보석으로서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했으려나. 겉으로 보기에 엘사 공주가 만든 얼음 성처럼 반짝이기를 바랐던 건가. 모르겠다.


나는 얼마의 시간동안 성을 쌓은 걸까. 오늘? 어제? 1년 전? 5년 전? 아니면 처음 얼굴에 꽃이 피었던 순간부터?


나의 감정은 무뎌지는 게 아니라 차갑게 얼어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얼굴에 핀 꽃이 붉고 뜨거워질수록, 온 몸을 타고 도는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잃어가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보다 빨리 소진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괴롭힌 건 아니었을까.


나는, 왜 나는…….


이렇게 살아오고 있었던 걸까.


나를 잃었다던가, 나 자신을 찾는다, 는 어감이 주는 모순. 나는 나인데. 혼란스럽다.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어디서 나를 찾아야할까. 나는 나를 언제부터 잃어버렸던 건가.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나는 나였던 때가 있었나.


거울 위에 비친 내 얼굴에서 꽃의 윤곽이 드러났다. 까맣고, 까만 속에서, 까맣고, 까만 나. 십년 전 처음 꽃이 피었을 때처럼 나는 내 얼굴에 피어난 꽃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둠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거울 속 기억의 오래전 내 모습은, 거울 앞에 앉은 지금의 나와 만나고 있었다. 십 년의 세월은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꽃은 피어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피어있는 꽃이었다. 꽃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나간 시간대로 쌓여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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