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도 프롤로그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들을 글로 써보겠다 하니 울 신랑은 ‘피식~’ 웃고만 만다.


"잉? 그 반응 뭐야? 혹, 비웃는 거야? "


“설마 비웃다니요? 괜찮겠는데? 한번 써봐~” 난 그의 대답을 용기 삼아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유들을 덧붙여 본다.

몇 해 전 TV에서 방영됐던 ‘눈이 부시게’ 드라마는 정말 감동적 이여서 내 인생드라마가 되기 충분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이 점차 사라져 가는 기억을 좇아가며 자신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리얼하고 처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많이 보았지만 이 작품은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뿐 아니라 가족, 친구들의 아픔까지 섬세하고 절절하게 그리고 있어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로 대신할까 한다.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 기억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습니다.’


이렇게 여주인공의 기억 속 젊은 날들이 혼동되고 망각되어 점차 사라져 가는 걸 보면서,

나는 조금이라도 기억이 또렷했을 때, 작은 기억이라도 남았을 때 내 살아온 이야기를 부지런히 써놔야겠다 생각했다.


몇해 전 돌아가신 나의 시어머니도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계셨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자신의 얘기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어머니 얘기 속에 등장하는 ‘옥희’라는 사람은 우리에겐 정말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옥희라는 그분은 한때 어머니 국민학교 친구 였다가, 이웃집 새댁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아버님의 세컨드가 되어 어머니 미움을 사고 계셨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분과 어머니가 어떤 인연이었는지, 그 분의 정체를 모른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앞서는 게 사실이다.


우리 애들이 한참 어린 시절, 신랑이 잠깐 자영업을 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나 들어오는 아빠 때문에 무섭고 심심했던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며 긴 밤을 보내곤 했다.

끝말잇기, 시 짓기, 외계인 말하기, 옛날얘기 같은...

그중에서도 우리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내 어릴 적 얘기다.

녀석들은 잠이 서서히 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엄마~ 이제 추억얘기 해줘~” 주문하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보태가며 환상적인 이야기꽃을 피워댔고, 우린 늦은 밤까지 그 시절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이제 둘 다 성인이 된 우리 애들, 얼마 전 딸내미가 묻는다.


“엄마 그때 국민학교 때 뭘 했다고 했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지 말고 어디라도 좀 적어 놔 봐~”


그래 그래야겠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 애들이 손주들에게 할머니 얘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덤으로, 올해 하늘나라로 먼 길 떠나신 친정엄마게도 내 이야기를 보내드리면 환한 미소 지어 보이며,


"울 막둥이. 잘했네..."


칭찬해 주시지 않을까 상상해 보면서 내 이야기를 야심 차게 시작해 본다.


"렛츠 고...."


사진;다음 이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