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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말랑한 마시멜로우
Nov 23. 2023
연탄가스로 생을 달리한 키다리 오빠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 다니다 아버지 혼자서나 기거할 교육연수원(아버지 직장) 관사에 온 식구가
이사를
했다.
하지만 그곳엔 이웃이 없었고 사람들 왕래 또한 드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스친 인연이라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했다.
지금부터는 그때 맺었던 작은 인연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다.
아카시아 꽃잎이 뚝뚝 떨어지던 어느 봄날, 연수원 관사인 우리 집 앞에 갖가지 건축자재가 들어오고 여러 일손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건물 하나가 뚝딱 생겨났다.
이 지역 최초 도서관인 ‘공공도서관’이 세워진 것이다.
큼지막한 간판과 함께 개관식이 열리고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우리의 밍밍한 일상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짙은 쌍꺼풀을 가진 도서관 관장님과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오빠들이 우리의 첫 번째 이웃이 된 것이다.
나는 그들과 마주치는 것이 너무 신
나서 항상 실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들도 그런 나에게 답례하듯 친절하게 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잎이 피고 지기를 여러 해, 나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뒤늦게 공부 부심이 생긴 나는 공부할 방도, 공부할 분위기도 안 되는 우리 집을 피해 도서관 단골 고객이 되었다.
직원 오빠들은 그런 내가 기특하다며 도서관 이용료를 받지 않았고, 사무실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
며 먹을 것도 건네주면서 나만의 지정석도 허락해 주었다.
공부할 맛이 났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실제로 결과도 좋았다.
그 당시 오빠들은 정식 직원이 아닌 임시직으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내 눈에도 형편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고 행색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서 출퇴근하지 않고 도서관 관사에 모여 함께 숙식을 해결하곤 했다.
엄마는 그런 오빠들에게 연수원 식당에서 남은 먹거리를 챙겨다 주었고, 명절 때 집에 가지 않고 관사에 남아있는 오빠들에게 떡국을 한 대접씩 퍼서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들은 엄마에게 깍듯했고 보답처럼 우리 집에 자잘한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손을 보태가며 염치 있게 굴었다.
나는 키가 호리 하게 크고 몸이 마른 오빠와 제일 친했다.
그 오빠는 아주 가끔이지만, 자신의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공부를 많이 못했다"며,
"네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며,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 병을 앓아 일찍 죽어버렸다" 며 덤덤히 말했다.
내가 도서관에 가면
"공부하러 왔냐?" 한마디라도 건네준 오빠가 편해서 난 일부러 그에게 표를 받아 입장했다.
밤새 내렸던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던 어느 겨울날~
나는 아직도 그날의 광경이 흐릿하지만 강하게 남아있다.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이른 새벽녘 공원 위에 낯선 병원차 한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오더니,
사람들이 황급히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축 처진 한 사람이 보였다.
그 뒤로는 두 사람이 어깨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 섬찍해
‘엄마야~’
하고
덥석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는 급히 내 팔목을 잡더니 나를 우리 집 판자 대문 안으로 집어던지듯 밀어 넣었다.
그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며칠이 지난 후 거나하게 한잔하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전해준 그 당시의 상황은 놀라웠다.
연탄으로 방을 데워 추운 겨울을 견뎌야 했던 관사에서 오빠들이 밤새 가스를 맡으며 정신을 잃었다 했다.
다행히 의식이 남아있던 오빠가 도움을 요청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두 명은 회복했지만 축 처진 몸으로 들것에 실려 나온 한 사람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며,
'참 내~ 참 내~' 연신 입술을 부딪치시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의식을 찾지 못했던 한 사람이 그 키다리 오빠였다는 것을.
나는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한동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좀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내 가까운 주변에 처음으로 생을 달리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생경했고, 죽음에 대해 생각 없이 지내왔던 내 일상에 그 사건은 작은 파장이 되어 나를 흔들어 놓았다.
허술하기 그지없었던 도서관 관사는 곧바로 허물어졌다.
정신을 찾은 오빠들은 짐이라도 챙긴다며 그곳에 다녀갔지만, 그 키다리 오빠는 그 누구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의 소지품들은 이리저리 밀쳐지다 결국 불로 태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오빠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그를 기억할 그 어떤 것도 내게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오빠들이 도서관 자리를 메우고 난 또 그들과 자연스럽게 안면을 텄다.
생각보다 빨리 그 사건과 오빠들은 내 일상에서 잊히고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 ‘대한뉘우스’에서 연탄가스 사고 소식이 보도될 때마다 그때 맺었던 작은 인연이 내 뇌리를 스치듯 지나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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