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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Mar 28. 2024

내가 s의 첫사랑이었을까?(1)



내가 과연 s의 첫사랑이었을까?

몇 해 전, 대학동아리 동기모임에서, s와 거짓말처럼 해후하게 되면서, 내가 s의 첫사랑이었으며 지금까지 나를 추억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s는 대학동아리 동기다.

나는 언제 처음 s를 봤는지, 첫인상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내게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었다.

첫 동기 야유회에서 나는 s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겠는데 s는 그때 나에게 첫 마음을 주었다 한다.

내가 기타오빠 짝사랑하랴, 동아리 행사 진행하랴, 단팅(단체미팅)하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s는 조용히 나를 지켜보며 마음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누구에게 신경 쓸 마음도, 웬만한 것은 눈치챌 여력도 없이 혼자서 바빴다.


 s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내 국민학교 동창 J 때문이었다.

그녀는 종종 나를 찾아와 s에 대해  물었고, 나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해오면서 s와 말을 텄다.

그녀는 s에게 전할 말이 있거나 연락이 되지 않을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나는 기꺼이 그녀의 연락책이 되어 주마 했고, 실제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난 그때부터 s만 보면 ‘무슨 남자가 약속도 지키지 않느냐? 지금 어디에서 j가 기다린다’ 매번 닦달하는 모양새로 몰아붙였다.

그럴 때마다 s는 죽을상을 지었고, 나는 이런 무매너인 남자를 j는 왜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충실한 오작교 역할에 열받은  s가 말했다.


"넌 나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

"그건 또 뭔 소리냐?"


그런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속한 동아리 편집부에서는 회원들의 사연, 에피소드 등을 전하는 월보를 발간한다.

원고가 마땅히 채워지지 않을 땐 주로 편집부원들이 궁여지책 메꿔가곤 했는데, 나도 글을 한편 급히 써내야 했다.

나는 딱히 마땅한 글감이 없어 's회원을 찾아온 그녀 j'라는 제목으로 s와 j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맛깔나게 써냈다.

그런데 그 글은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을 가져왔다.

내 글을 본 s가 편집부장 오빠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당사자 의견도 묻지 않고 실명으로 이런 글을 내보내도 되는 거냐며~’

내게 직접 따져 묻지 않아 마땅히 해명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우린 1박 2일 가을수련회를 떠났다.

s는 렌트한 버스 안에서 미안한 마음에 눈도 못 마주치고 앉아있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할 것 없다'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뭐지? 그 난리를 쳐놓고?'


가을 달빛이 머리 위까지 깊숙이 내려앉은 그 수련회 밤, 내 짝사랑 기타오빠가 오롯이 나만을 위해 불러준 해바라기의 '어서 말을 해'는 나를 그렇게나 찾아대는 s 때문에 길게 울려 퍼지진 못했다.

아쉬운 맘을 접어둔 채 1절만 듣고 가보니 s와 철학과 남학생, 그리고 혜지가 계곡 한쪽에 비장하게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또 별일 아니란다.

'뭐냐~ 이렇게 시시하게 굴 거면 기타오빠 노래를 더 들었어도 되는 거잖아?' 억울한 마음 그득인데, 벌겋게 상기된 혜지 표정이 마음에 걸려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들은 그날을 d-day로 정한 날이라 했다.

사실 철학과생은 혜지에게, s는 내게 맘이 있어 그날 밤 함께 고백하기로 했었다 한다. (혼자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둘이 함께 고백하기로 했다는 그들,.. 참 순진무구한 청춘들이다. ㅎ)

내가 기타오빠에게 딱 붙어 있는 바람에 s는 타이밍을 놓쳤고, 혜지는 그날 고백을 받았다.

그 후로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사실을 모른 채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있었다.


겨울 끝자락 즈음, 혜지와 난 앙상한 나무 밑 캠퍼스 벤치에 마주 앉았다.


“사실 s가 너를 좋아하는데 일단 넌 모른 척하고 있어라"

“이잉? s가 나를?  j랑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그 얘기를 들은 뒤부터 나는 여러 생각이 흩어지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혹감과 어색함 그리고 싫지 않는 두근거림과 약간의 설렘? (갑자기?)

이제 어쩌다 s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가  어색스러워 예전과 같이 대해지지가 않았다.

공적인 관계로만 생각한 s가 서서히 스며들어 내 맘속에 들어와 버린 것인가?  


하얀 눈송이처럼 벚꽃잎들이 흩날리기 시작할 무렵의 어느 봄날, 혜지와 내가 캠퍼스를 걷고 있을 때 s가 어디선가 나타나 커피 한잔을 사겠다며 앞장섰다.

난 조금은 짐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s는 엄청 긴장한 듯 여러 말을 숨바꼭질하듯 빙빙 돌리다 드디어 고백이란 걸 했다.

그것도 혜지 앞에서 ㅋ. (지금 생각해 보니 혜지가 눈치껏 좀 빠져줘야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거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하드라?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꽃다방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골목길 다방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씩씩 걸어갔고 s는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인사도 없이 버스에 올라탄 나를 s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왜 그랬을까? s가 싫어서? 부끄러워서? 그게 멋져 보일 것 같아서?....)

     

이제 정식으로 고백이라는 걸 받았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거절하지 않으면 시작인 걸까? 그렇다면  동아리회원에서 우린 어떤 사이가 되는 거지? j는 또 어떡하고?’

혜지커플은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난 확실한 답변을 미룬 채 시간만 질질 끌고 있었다.

내 긴 망설임에도 s는 동아리 모임 때마다 꼭 따로 눈치를 보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음악 감상실에 나란히 앉았을때, 이름 모를 가수의 ‘내게 사랑은 너무 어려워~’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꼭 누구 마음 같다며 s가 나를 놀렸다.

이렇게 우리는 딱히 시작이랄 것도 없는 시작을 했지만 s는 어떻게든 우리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어 내 yes만을 기다렸다.

나도 s가 싫지는 않았지만 동창 j가 있었고 무엇보다 명확한 관계가 된들 동아리사람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차일피일했다.


그러는 사이 s는 내 주변에 얼씬거리는 남자들을 하나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이야기 2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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