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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l 02. 2024

소년원생에게 온 편지 한 통


대학 때 ‘대학생 갱생보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다.

이곳은, 법무부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범죄예방 프로젝트 중 하나로 만들어진 동아리다.

대학생이 가석방된 소년원생과 1:1 결연을 맺어 상담을 통해 재범을 막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시키는 사후지도적 역할을 돕는다.

우리는 지방법원 발족식에 참석해 검사장님이 수여해 준 위촉장을 받고 대학생 보호위원이 되었다.


나의 첫 파트너는 절도와 폭행으로 입소했다 일정 기간 사회에서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고교 자퇴생이었다.

파트너의 범죄기록을 자세히 살펴보고 담당 직원에게 사전교육과 주의사항을 받은 후 첫 상담일자를 잡았다.  


허름하고 오래된 이층집 한 칸에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녀석은 정작 만나기로 한 첫날, 나를 바람 맞혔다.

대신, 작고 마른 체구의 어머니만 홀로 집을 지키며 나를 맞이했다.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하고 내 방문 이유를 밝히니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마치 당신이 죄인인 양 고개먼저 숙이신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불쌍한 애기어요. 영~ 그렇게 몹쓸 놈이 아니어요. 오늘은 뭔 일이 있어서 집에 없는 갑네요"   


첫날부터 약속도 지키지 않는 녀석의 무책임함에 한편으론 언짢았지만, 어머니의 쩔쩔맨 자식변명에 ‘내가 뭐라고 그렇게 까지?’ 민망함도 동시에 들었다.


"아~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 약속 날은 웬일인지 녀석이 어머니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이미 성숙해져 버린 녀석, 밤송이처럼 삐죽삐죽 올라와 있는 머리스타일에서 느껴지는 범상치 않는 기운에 본능적으로 내 몸이 움츠려 들었다.

3살 차밖에 나지 않는 남과 여, 산만한 등치를 상대하기엔 나는 너무 작은 쪼꼬미 여대생이었다.

'나는 뭔 배짱으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이 녀석에게 내가 뭘 할 수 있나? 그만 돌아서 나와버릴까?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쫄고 있는 거지?'

그 짧은 순간 나는 여러 마음들이 오르락내리락, 마른침만 몇 번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쫀 마음을 꽉 붙들어 메고 할 일을 해야 했다.


“반갑다아~. 오늘은 집에 있었네? 내가 왜 왔는지 알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첫 대화부터 말을 까고 목소리에 더 힘을 실으며 속사포처럼 쏟아낸 내 질문폭탄에, 나를 비스듬히 쳐다본 그 녀석 또한 쉽사리 입을 떼지 않았다.

어색한 기운이 한동안 방안을 맴돌자 눈치 빠른 어머니가 부엌에서 미숫가루 한 대접을 돌돌 저어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좀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하시오잉~"  


‘아~ 이렇게 서둘러선 안 되는데, 침착하자...'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가 가진 패를 먼저 꺼내 놓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OOO이다. oo 대학교에 다니고 전공은 oo다. 2남 3녀 중 막내다. 취미는 독서다. 특기는 댄스다. 남친은 아직 없다....."


'뭐지? 미팅할 때 했던 레퍼토리잖아?'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뭐라도 해봐야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무모한 접근이었다.

안전장치도 없이 전과가 있는 녀석에게 내 개인정보를 막 노출하다니, 그리고 같은 방에 마주 앉아 상담을 하다니~ (그 후 난 내 상담일에 꼭 어머니가 집에 계시도록 부탁해 놓았다)


아무튼,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녀석이 띄엄띄엄 질문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지금 많이 반성하고 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겠다. 걱정 마라“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 중이나, 열심히 잘 살겠다“

"검정고시를 보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하고 싶다"

    

뻔하디 뻔한 대답, 그러나 꼭 필요한 대답, 어찌 되었든 처음 걱정과 달리 의의로 고분고분한 태도와 말투에 조금 한숨이 돌려졌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과연 그런 험한 짓을 한 애가 맞나?'는 생각도 잠시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난 나중에 알았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상담 대응방법과 모범답안, 그리고 족보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와의 상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상담이 끝나면 상담일지를 담당부서에 제출해야 했는데, 우리가 작성한 상담내용과 답이 거의 ctrl+c, ctrl+v 여서 완전 황당했다.

아하! 그래서 담당직원이 사전에 '녀석들의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주었구나~


아무튼 나는 그 후의 남은 상담에도 나름 최선을 다했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녀석에게 몇 권의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그 녀석도 나와의 상담에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기간 동안 무탈하게 지내줘 내 임무를 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어느 날, 낯익은 발신자 이름의 편지 한 통이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다.

나의 첫 파트너였던 이름 세 글자~

‘선생님 ’으로 시작한 손편지에는 감사의 마음과 함께 근황과 각오가 편지지 그득 담겨 있었다.    

나는 반가움 대신, 헉~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지? 평생 잊을 수 없겠다니? 혹 찾아오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란 새가슴에 담당직원과 몇몇 회원께 편지얘기를 꺼내니 수신자와 발신자 이름만 다를 뿐 그들도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했다.

감사편지마저도 그들만의 모범답안과 족보가 있었다니~ㅎㅎ


나는 그 후에도 여러 명의 소년원생과 추가로 결연을 맺어 상담을 이어갔고, 소년원에 직접 방문해 모범수를 대상으로 국어와 고전과목 학습지도까지 맡아했다.

참 열정적이며 최선을 다했던 그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고 뭐라도 했던 내 젊은 날의 열정과 성실함은 훗날 내게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 대학생 보호위원으로 선정되어 내 취업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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