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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l 09. 2024

말랑말랑한 인생이야기

                                                       사진: 다음 이미지


새 학교로 자리를 옮기고 적응할 겨를도 없이 여러 일들이 팡팡 터졌다.

설상가상, 우리 반에 온갖 사건사고가 두더지처럼 쑥쑥 올라오며 모두들 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특수교사! 니가 어떻게 한번 해결해 봐~ 그려려고 니가 있는 거잖아? 니가 할 일이고~'     


아무도 그런 말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나의 심적 압박감은 극에 달했다.

    

운전대를 잡고 퇴근하던 길, 갑자기 눈앞이 깜깜하고 숨이 턱 막히며 식은땀이 쭈르륵,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신랑에게 급히 SOS를 쳤다.   

    

"자기야. 나 운전을 못하겠어. 빨리 좀 와줘~"   

  

그때 내 나이 55, 갱년기라는 불청객이 내 몸과 마음을 지멋대로 헤집고 다닐 때 일어난 일이었다.

매번 했던 일이고, 잘해왔고,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고 자만이었다.

나는 온몸과 마음에서 보내온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 과감히 운전대를 놓고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의사 선생님은 연예인의 단골메뉴이자 현대인에게 유행처럼 번진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내 진료차트에 채워 넣었다.

내가 공황이라고? 나처럼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당차고, 노련한 여자가?’     

   

그때쯤이었을까? 정신과 약과 상담, 그리고 명상을 병행하며 미친 듯이 내 이야기를 써대기 시작했다.

뭐라도 말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말랑말랑한 인생이야기' 14 point, A4 250 page 분량, 소제목 25개로 구성된 명색이 자전적 에세이다.

(지금 브런치에 올린 몇 편의 글도 그때 써놓은   다듬어 올린 것이다)

                 

글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나의 고질병인 관종기가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했다.


"글 한번 써 봤어용~, 시간 되면 읽어봐주세용~"


몇몇 지인에게 메일로 전송했다.     

의외로 그들은 각자 인상 깊게 읽은 감동적인 주제가 따로 있은 듯했다.

- 지금부터는 홍보 타임~ 흐흐흐~ 크윽크크~(최대한 음흉스럽게) -


울 신랑은, 내 어릴 적 찌질한 에피소드와 우리 결혼 얘기가 재밌다 했다. (깍두기 무 한 조각 외 / 노처녀 결혼 성공기)

언니들은, 역시나 부모님 얘기에 눈시울을 적셨다 (당신의 이름 / 여자의 일생을 즐겨 부르는 여인 / 친정엄마의 김치국)

친한 샘 몇은, 특수교사 입문기와 내 회사 이야기에 완전 매료되었다. (나는 47살에 특수교사가 되었다 / 80년대, 대기업에서 살아남기)

대학친구 상담가 정숙이는, 내가 잉태되어 600원짜리가 되었던 과정부터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심도 깊게 내 삶을 분석해 주었다. (내 어릴 적 별명은 600원짜리)

울 딸내미는, 엄마의 못다 한 첫사랑 이야기를 완전 궁금해했다. (나를 좋아했던 윤상 (닮은))     

그러나 공통적으로 아프게 읽어 준 이야기는 울 딸내미 떡례 이야기였다 (4번의 헤어짐, 그리고 떡례)

최근에 쓴 신상이지만 나름 핫한 인기글도 있다 ㅍㅎㅎㅎ(나와 하이힐, 나의 첫 제자 형진이, 관계가 틀어질 때, 어머니 '옥희'가 누구예요? 라디오 방송에 사연이 당첨되었다 외)


'말랑말랑한 인생이야기'를 쓰는 동안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쳐 왔다.

그곳엔 다시 마주할 수 없는 내 어린 시절과 청춘이 있었고,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픔과 후회

도 있었다.

다시 한번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은 부모님들이 계셨고, 사랑스러운 우리 꼬맹이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숨가프게 달려온 인생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인데 100미터 단거리처럼 뛰었고,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도전하고 성취하려 했던 삶이었다.


맨 처음 글의 시작은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은 전적으로 99% 나를 위한 글이었다.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흥미진진했던 내 이야기를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나를 알아차리고 되돌아보게 했던 시간, 그 시간을 통해 난 화해와 성찰 그리고 치유를 배웠다.


이제 나는 인생의 중반을 넘어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더는 내 삶에 어떤 도전이 또 있을까?

앞으론 지금에 충실하며 내 주변과 나 자신을 단도리하는 시간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볼까 한다.

지금처럼만 살아간다면 더 바랠 것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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