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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un 03. 2024
나와 하이힐
내 키는 155가 안된다. (상상에 맡긴다. 150~155)
대신, 신랑키는 178이다.
일부러 키 큰 남자를 골랐던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길쭉길쭉한(얼굴 포함) 남자가 내 곁에 왔다.
우리 아이들 키는 대외비다.
하지만 쫌
아쉽다는 것만 살짝 밝혀둔다.
예로부터 ‘작은 고추가 맵다’라든가 ‘키 크고 속없다’는 속담이 있어왔다.
그야말로 옛말이고 작은 사람들의 변 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무조건 커야 한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견은 사양한다)
난 나잇값도 못하고 젊은 남녀 연애프로그램 ‘나는 솔로’ 애시청자다.
여출들 대부분이 키 크고 듬직한 남자를, 남출들은 키 크고 예쁜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고 난리들이다.
'아~ 재수 없어...'
난, 태어날 때부터 작았고, 어린이 때도 작았고, 아가씨 때도, 지금도 여전히 작다.
그러니 평생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겠는가? 없었겠는가?
내 인생의 황금기이며 가장 빛나야 할 아가씨 시절에
작은 키가 내 발목을 잡았다.
50번도 넘게 선을 봤고, 그중 퇴자 맞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자가 키가 좀 작은 것 같아서...’ 였으니.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키 큰 남자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100 퍼 내 10센티 하이힐 덕분이다.
키 큰 사람은 모른다.
그것도 울 신랑처럼 순진하고 여자 경험이 별로 없으면서(?) 키만 큰 남자는,
하이힐 뒤에 감춰진 여자의 진짜 키를 가름
못한다.
좀 아담하다 정도 생각했겠지?
결혼을 약속하고 그의 집에 인사하러 간 날,
하이힐을 벗고 거실에 들어선 내 얼굴이 어느 순간 푹 사라져 버렸다 했다.
있어야 할 위치에 얼굴은 없고 한참 밑을 내려다보니 그곳에 내가 새초롬이 웃고 있더라는 것
.
‘아~ 이렇게 작은 여자였었나?, 집에 까지 와버렸는데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ㅠㅠㅠ'
8
0년대 후반, 내 20대,
회사근무
시절, 공무원 연수원 주관으로 '근로여성을 위한 심신교육' 프로그램에 3박 4일 참가한 적이 있다.
약 100여 명쯤 참가한 여성근로자 중 내가 대표로 '선. 서!'를 외치고, 10개 팀으로 나누어진 조의 조장까지 맡았다.
이제 극기훈련과 정신교육, 예절교육, 각종 게임과
활동에 참가하여
1등 조로 뽑히면 큰 상패와 상품을 수여받게 된다.
난 은근(완전) 승부욕이 있었고, 어떻게든 우리 조가 우승을 해야 했기에 모든 활동에 필사적이었다.
그때 했던 미션 중 하나가 글쓰기 었다.
A4 한 장에
1시간 동안 자유글 형식으로 글을 써서 심사를 받았는데
내가 1등으로 뽑혔고,
영광스럽게도
공무원
홍보
책자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 글을 기억하며 조금 다듬어 여기에 옮겨본다.
제목: 나와 하이힐
나는 오늘도 10센티 하이힐을 신고 회사에 출근한다.
탈의실에서는 그레이색 회사유니폼으로 환복 한 여사원들이 하얀색 간호사 신발로 갈아 신고 각자 일터로 흩어진다.
하지만 난 끝까지 10센티 하이힐을 벗지 않는다.
회사유니폼과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다.
운동장처럼 넓은 공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뜀박질해도 잘할 수 있다.
몇 번이고 꼬구라질 듯한 곡예로 얼마 전 삔 발목이 아직까지 욱신거려도 난 참을 수 있다.
왜냐?
하이힐은 나와 일심동체, 내 자존심이며, 나의 신체 일부다.
그것을 벗은 순간 나는 내가 아니다.
하이힐을 신고 바라보는 세상의 뷰와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아는가?
가슴은 활짝 펴지고, 없던 용기도 생겨나고, 더불어 일의 능률도 팍팍 오른다.
무엇보다 하이힐을 신고 거울 앞에 서있는 내가 왜 그렇게 예뻐 보일까?
나에게 10센티 이하의 신발은 신발도 아니다.
개나 줘버릴 만큼 무용하다.
내 월급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지출품목 중 하나는 단연 수제화 맞춤 하이힐이 1위다.
우리 집 신발장은 오색찬란한 내 10센티 하이힐로 그득하다.
그것만 보고 있으면 배가 고파도 배가 부르고, 우울해도 웃음이 나며, 애인이 없어도 곧 애인이 생길 것만 같다.
나에게 하이힐은 그런 존재다.
왜 그렇게 오버(OVER)냐고?
키 작은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쪽이 팔리는지 아는가?
얼마 전 연구소 김대리님이 내게 소개팅을 해주겠다 한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웬 떡인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난 미장원에 가서 닭벼슬 앞머리로 올리고, 메이커 ’ 논노‘ 매장에서 산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마스카라에 장미향수까지, 그리고 내 마지막 패션의 완성 10센티 하이힐을 신고 소개팅자리로 간다.
남자를 만날 땐 여자가 좀 늦게 나타나는 것이 예의(?)라나 작전(?)이라나~
뭐 그런 게 다 있나? 난 상관하지 않는다.
내 첫인상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고? 이유는 묻지 마라.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다방문이 열리며 김대리님과 함께 훤칠한 남자가 입장한다.
김대리님이 간단하게 이러쿵저러쿵 소개말씀이 있으신 후, 드디어 우리 둘만의 시간.
난 내 최대의 무기인 밝고 명랑, 깨알 말솜씨와 센스로 분위기를 내쪽으로 몰고 온다.
드디어 에프터가 결정되는 순간, 그 남자가 내가 그리도 듣고 싶은 말, 그 말을 한다.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 물론... 되지요...."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가도,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는 그놈 목소리는 도무지 깜깜무소식이다.
'뭐가 잘못된 거지? 바쁜 일이 있나? 내 연락처를 잊어버렸나?'
또 며칠을 기다려 본다.
하지만 내게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마지막 D-DAY라는 것이 있다.
조심스럽게 김대리님에게 다이얼을 돌린다.
“김대리니임... 호옥시,,, 저에 대해 무슨 얘기 없든가요?”
“아~ ooo 씨...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서 전화해 봤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
그냥 솔직히 말할게요..... 아가씨 키가 생각보다 작
다고 하네요”
'이~ 쒸~'
어쩐지 앉아 있을 때 까진 분위기가 훈훈했는데, 다방을 나와 헤어질 때 느껴지는 그 남자의 스켄의 눈초리가 좀
싸~하더라니
...
'아~ 쪽 팔려'
그건 그렇고,
친절한 김대리님은 다 좋은데 입이 얼마나 싼지 그의 사전(辭典)엔 ‘비밀’이란 단어가 없다는데,
그게
또 걱정이다.
이제 한동안 회사에서는, 연수팀 ooo 씨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까인 소문이 정문수위아저씨에게까지 돌고 돌아 다시 내 귀에 들려올 게 분명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음엔 좀 더 높은 하이힐을 신고 도전해 봐야지.
아무튼,,,
난 오늘도 내 자존심의 호위무사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출근길에 나선다. -끄읏-
50을 넘어 60줄이 낼 모레인 나는 더 이상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아니 신지 못한다.
물론 허리와 무릎, 발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내겐 하이힐은 의미 없는 물건이 되었다.
내 신발장엔 10센티 하이힐 대신, 쿠션과 편안함의 대명사 효도신발과 운동화가 신발장에 딱 달라붙어있다.
하이힐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내 젊은 날의 열등과 결핍은, 더 많은 노력과 아픔의 세월을 겪어내면서 조금씩 채워져 갔
다.
자존감이 올라갈수록 하이힐 굽은 낮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이 제일이라는 것을 체감했고,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내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제 난, 효도신발을 신고 바라보는 세상의 뷰와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충분히 알게 되었다.
덧붙임:
난 이 글을 쓰면서 가족톡에 질문 하나를 던져 놓았다.
'패밀리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길쭉이 신랑: 옛날엔
지갑에
현금,
지금은
든든한
체크카드.
딸내미 떡례: 네일아트한 손.
여수탱이 아들: 예쁜 여자친구. (처음 답은 '깔창', "야 야~ 엄마 하이힐과 컨셉이 겹친다. 혹시 다른 것은?" "아~ 그럼 예쁜 여자친구로 하겠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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