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부정적인 대출회사 상담직원이었던 주인공은 매사에 무조건 No를 외치다 하나 남았던 친구마저 잃고 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긍정적인 생활방식으로 무조건 Yes만 외쳐보기로 한다.
그 뒤 인생이 바뀌는 듯 다양한 변화를 이루었지만 진심이 없는 ‘Yes’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성장한다. 누군가 내게 인생은 영화랑 같다고 하였던가 나는 실제로 회사에서 ‘Yes맨’이었고 그 부작용을 체험한 후에 주인공과 같이 달라졌다.
과거 ‘Yes맨’이었던 나는 팀에서 유일한 해결사 역할극에 빠져 있었다.
일을 주면 그걸 무조건 받았고 최대한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으며 마치 비서 내지는 집사인 것처럼 회사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 내 평판은 항상 좋았으며 내가 소속된 센터의 임원들 또한 내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호의로 해주었던 업무들이 내 것이 되었고 늘어만 나는 근무시간에 앞으로 이 생활을 자신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정도 미래가 예상이 되자 업무를 빼려고 했지만 업무는 더하기는 쉬워도 빼기는 매우 힘들기에 그저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매우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직장 선임과 같이 밤을 새우고 주말도 반납하였으며 이를 두 달이 넘게 지속된 뒤에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당시 같이 일한 직장 선임도 고생하였지만 내 건강을 생각한다면 휴식은 필수였고 기존의 업무들까지 병행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결국 타 부서나 잉여 인력에 기존 업무를 넘겨주면서 겨우 해결하였고 그 과정까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직장후배에게 항상 “프로젝트나 힘든 일이 끝나서 짬이 나면 무조건 연차를 쓰던지 대체 휴일을 넣던지 평소에 컨디션 관리를 하세요”라고 하며 몸소 시범을 보여준다.
나는 그렇게 달라졌지만 내가 아는 두 명의 ‘Yes맨’들은 달라지지 않았고 자리에서 굳게 버티지 못했다.
첫 번째 ‘Yes맨’은 중요한 프로젝트에 있어서 쉬는 방법을 몰랐고 연말에 좋은 고과를 받을 가능성이 컸지만 결국 사직서를 꺼내게 되었다. 나중에는 오기로 버티는 것이 눈에 선하였지만 복잡한 일은 이제 본인과 맞지 않는다며 당당히 나가게 되었다.
두 번째 ‘Yes맨’은 나의 예전과 같이 수용가능한 용량 이상으로 일을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중한 일에 치이다 보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으며 디테일을 챙기지 못하였고 큰 사고에 책임을 억울하게 지게 되었다.
거절에 대한 압박감은 항상 주위의 평판을 생각했던 나에게 힘들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성과랑은 멀어지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 스스로를 옥죄어 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는 스스로를 불태워 잠깐의 시간을 밝게 비추는 불쏘시개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거절할 수 있는 용기는 생존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야망이 크다면 ‘Yes맨’으로 살아가는 것은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Yes’를 외치는 나에게는 실속 있는 ‘Yes’가 필요하며 때로는 적당한 ‘No’도 섞어야 내가 열정을 적당히 오래 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마카롱의 꼬끄를 굽는 것과 같다. 오븐의 열이 강하면 꼬끄가 깨지고 열이 적으면 충분히 익지 않아 시트에 들러붙는다. 열정도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욕심이 되고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내리려는 노력도 없이 가만히 지켜만 보게 되면 마치 꼬끄와 같이 언젠가 깨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