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해주신 밥

유년의 기억

by 맑음

브런치에서 브런치*우리가 한식 공모전을 보았다.

여지껏 브런치의 글을 읽기만 했던 평범한 주부인 나는 공모전의 주제를 보는순간

아버지의 집밥이 떠올랐다.

흔히 집밥하면 어머니의 밥 또는 할머니의 밥을 떠올리는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고등학교 시절 해주신 밥이 떠오른다.

보통 집밥을 생각하면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먼저 들게 마련이지만, 나의 뇌리에 드는 첫번째 감정은

아프고 시린 마음이다.

유년시절 우리집은 가정불화가 심한 가정이였다. 소개로 결혼하신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못하셨다.

어머니 아버지는 애정이 없으셨고, 어린 내눈에도 방황하는것 같았던 어머니는 결국 내가 고1

동생이 중 2때 집을 나가셨다.

그래도 어머니가 집에 계셨을 때는 찌개 또는 국에 반찬 몇가지가 집에 있었지만, 어머니가 없는 집은

먹을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빨래나 청소는 좀 밀려도 세탁기와 청소기에 의지해 어찌어찌 했지만, 먹을 밥과 반찬 만드는 일은 정말 막막했다.

결국 아버지께서 식사를 만들기 시작 하셨다. 정말 밥과 반찬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단촐한 집밥.


평일은 밥과 국 그리고 김치.

주말은 평일에 너무 부실하게 먹으니 영양보충해야 한다고 특식으로 한끼는 밥과 불고기 김치.


주변에 도와 줄 만한 친척과 조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모든것을 자급자족 해야 했다.

아버지가 배추 2통을 사와 자르고 소금에 절여서 숨이 죽은 배추를 헹구어 물빼면 옆에서 나는 마늘빻고 고추가루 멸치액젓 부어주는 심부름을 열심히도 했다.

단촐한 집밥이였지만, 배고픈 나는 밥과 국 김치를 수북수북 정말 많이도 먹었다.

내가 고2때부터 학교에서 유상급식이 시행되었고, 고1때는 아버지표 점심도시락,저녁은 분식집

고2,고3때는 아버지표 점심도시락 저녁은 급식을 먹었다.

내가 철이 안들고 못됐었던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심정을 말하자면 정말이지 아버지표 도시락을 친구들 앞에서 꺼내고 먹는건 고역이었다.


하얀쌀밥 그리고 김치찌개에서 건진 김치 매일 똑같은 햄.


점심을 먹기직전 도시락을 꺼내는 순간은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창피했었다.

그러나 마음깊은 곳에선 그것이 애정표현을 전혀 안하시는 아버지의 유일한 사랑표현이라는걸 알았기에,

나는 먹기 싫다고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같이 밥을 먹던 친구들 중 내 반찬을 갖고 뭐라고 했던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친구들이 참 고맙다.

그때는 아버지가 배달도시락 안 시켜주고 학교급식도 다 안내주고 맛없는 도시락을 꾸역꾸역 싸주는

것이 너무 싫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시리고도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집밥이 싫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내가 하는 집밥과 성격이 닮아있다.


김치는 그냥 먹거나 찌개로만 끓이고 주말이 되면 식구들에게 소불고기를 자주 해준다.

밖에 나들이를 갈때도 왠만하면 도시락을 싸서 나가고 배달음식은 거의 먹지를 않는다.


짠돌이 같아서 싫었던 우리 아버지의 집밥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고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정성껏 만드는 집밥은 무뚝뚝한 내가 가족들에게 표현하는 유일한 사랑표현 이다.

이걸 좋은거라 해야되는가 싶다가도 배달음식 안시켜먹고 도시락 싸고 알뜰히 아껴줘서

고맙다고 가끔씩 말해주는 남편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이 너무 아픈것 같지만도 않은것 같기도 하고,

지금에 와서는 약도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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