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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상 Jun 30. 2020

뒷모습에 대한 응시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제목은 두 가지로 읽힌다. 그 중 첫 번째는 영화의 원제 ‘yi yi’처럼 하나에 하나가 더해져 둘이 되는 것으로 읽는 방법으로, 한 명의 개인이 있고 여기에 한 명이 더해져 하나의 관계가 가능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타이베이의 한 대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이야기를 균등하게 다루는 영화는 그들이 다른 인물들과 교차하면서 발생시키는 관계 맺기를 응시한다. NJ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장면에 갑자기 그의 첫사랑이었던 루이가 등장해 만남이 성사된다거나, 리리가 하교하는 길에 팅팅이 골목에서 나와 만나는 것처럼, 영화는 끊임없이 그 세계 속 인물들을 교차시키면서 하나에 하나가 더해지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인물 간의 교차는 단지 관계 맺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영화의 서사를 진행시킨다. 이를테면 영화의 초반부에서 팅팅이 할머니를 모시고 집에 온 다음 NJ도 집에 도착한다. NJ가 팅팅에게 자신은 할 일이 있으니 쓰레기 좀 버려달라고 말하지만 직후의 쇼트에서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시늉하더니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뭘 찾으러 왔더라?” 이 목적성을 상실한 도착과 NJ와 팅팅 둘 사이의 교차는 이후 할머니가 쓰러지는 것에 원인을 제공한다. 할머니는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쓰러졌는데, 그 쓰레기는 왜 집에 왔는지 이유를 망각한 NJ가 팅팅을 볼러내 피로연에 가버렸기 때문에 버려지지 못하고 남겨진 것이다(영화는 할머니가 쓰러진 장면과 그 결정적인 원인을 보여주진 않는다.). 영화는 마치 이 사건을 발생시키기 위해 아무런 이유 없이 NJ를 집으로 이동시킨 것만 같다. 비슷한 사례로 NJ와 루이가 마주치는 장면에서 NJ의 친구가 등장하는데 그 또한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망각하지만 이후에 NJ가 루이와 연락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둘 사이에 영향을 준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인물들 사이에는 비밀이 발생한다. 영화에서 비밀은 오직 두 인물 사이에만 있는 것으로 타인들은 그 비밀로부터 소외된다. NJ와 루이가 도쿄에서 만나는 사실을 NJ의 가족과 친구는 알지 못하며, 팅팅이 패티와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패티의 애인이었던 리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왠지 <하나 그리고 둘>의 제목은 하나와 둘이 삼이라는 구조를 이루는 것처럼 또 다른 방법으로 읽히기도 한다. 인물들은 삼각관계 또는 세 명이서 하나의 집합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집합 안에 있으면서도 그 비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알게 되지 못하는 비밀은 그들로부터 떨어져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붙어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비밀은 양양이 말하는 뒷모습처럼 내게 붙어있지만 못 보는 것이거나, 옆집에서 일어난 불륜처럼 열려진 문 틈새로밖에 볼 수 없는 (그래서 그 문이 닫히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인물들이 비밀을 공유 또는 소외되는 반면, 양양은 그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다. 양양은 카메라를 들고 인물들의 뒷모습을 찍는 것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에 시선을 던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치 <하나 그리고 둘>의 카메라처럼 말이다. 양양처럼 카메라도 영화 속 인물들과 그 이야기를 저만치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특히 인물들이 교차하며 한 화면 안에 존재할 때, 영화는 종종 프레임 안에 한 인물의 앞모습과 다른 인물의 뒷모습을 동시에 포착하는데 이때 인물의 뒷모습은 마치 그 앞에서 말을 거는 인물에 대한 리액션 숏처럼 느껴진다. NJ와 루이가 영화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 루이는 그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만 N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영화에서 보여주는 뒷모습으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같은 순간 양양도 그 곁에서 NJ와 루이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영화에서 NJ와 루이의 관계는 팅팅과 패티의 관계와 공명한다. NJ가 루이와 도쿄에서 만나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팅팅과 패티가 데이트하는 장면이 교차편집처럼 번갈아 등장한다. 이 시퀀스는 마치 NJ와 루이의 과거가 팅팅과 패티의 현재에 반복되는 것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데 두 이야기는 결말마저도 동일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NJ가 루이를 떠났듯이 결국 패티도 팅팅을 떠난다.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두 비밀은 비록 그 주체는 다르지만 그때와 지금에 어떠한 차이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일한 사건의 반복과 그 누적. 영화는 이것을 일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상을 응시하는 <하나 그리고 둘>에는 어떠한 결단도, 그 결단으로 발생할 수 있을 진전과 도약도 없다. 일상의 비밀은 동시에 인물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어머니께 매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민민은 자신의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닫고, NJ는 루이에게 다른 사람은 사랑한 적 없다 말하지만 이 말이 상처가 되어 다음날 루이는 말도 없이 그를 떠난다. 일상의 비밀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은 NJ의 일본인 동업자 오타다. 그는 루이를 만나자마자 그녀가 NJ의 뮤즈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는 NJ와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택해야 현재로부터 나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NJ의 회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아도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NJ와 루이에게 젊은 분들은 자기 갈 길은 알아서 찾아가라고 말하는 오타는 이 영화에서 선지자와도 같은 인물이다.


비밀과 일상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상처에도 영화의 시간은 흘러간다. 인물들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경험을 하지만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온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집 앞을 가로질러 집에 온 팅팅은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말한다. “왜 세상은 우리 생각과 다른 걸까요? 이제 일어나셨으니 한번 보세요. 변한 게 없나요? 지금 이렇게 눈을 감고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요.” 팅팅은 보이는 것과 실재의 차이로 입은 상처와 의문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상처에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의 양양의 말이 위로가 되어준다.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그렇게 영화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타인의 필요성을, 그리고 그 뒷모습을 찍기 위한 카메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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